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여행지 사진이 줄어든 것을 보니 여름휴가 시즌이 끝나가는 모양입니다. 예전처럼 칠말팔초에 몰아서 휴가를 쓰던 패턴에서 많이 벗어났다고 하지만 그래도 휴가 하면 가장 더울 때, 가장 추울 때 다녀오는 것이 정설이긴 합니다. 어떠셨나요? 다들 여름휴가들은 편히 쉬시고 어디 가까운 곳이라도 다녀오셨나요?
코로나가 다시 득세를 하는 모양새이긴 하지만 여행 후 격리 규제가 해제된 덕에 간간히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사람들의 사진도 SNS에 많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멋진 풍광의 사진들과 그 속에 내가 아는 사람의 모습이 함께 있으니 보기 좋습니다.
SNS에 올리는 사진을 보면 특징들이 있습니다. 바로 여러 장의 사진 중에 한 장에는 반드시 자신의 모습이 들어 있다는 겁니다. 바로 인증사진입니다. '그곳에 내가 있었다'는 것이 사진의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풍광만 있는 사진은 작가가 찍은 것을 퍼온 것인지 알 수 없기에 반드시 본인의 모습이 들어간 사진으로 증거를 남기는 행위입니다. 증명사진 같은 앞모습이 민망하면 뒷모습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사실 SNS에 사진을 올리는 행위는 자랑질이 근본입니다. '나 여기 가봤어! 부럽지!'가 기본입니다. '이렇게 멋지고 이렇게 맛있는 것을 먹고 있어'를 통해 존재감을 과시하는 것입니다. 자랑질의 본질은 자존심이기도 합니다. 자존심은 "남에게 굽히지 않고 자신의 품위나 위신을 지키려는 마음"이므로 남에게 나의 잘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여행사진의 훌륭한 배경은 나의 잘난 모습이 투영된 것일 뿐입니다. 수많은 여행사진을 보여주는 것은 그저 그중에 나의 모습이 담긴 한 장의 사진을 돋보이게 하는 들러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행사진 뒤에서 셔터를 누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진짜 모습입니다.
여행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봐야 합니다. 왜 그렇게 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지에 대해 말입니다. '나는 가봤는데 너는 못 가봤지?'의 자랑질이 본질이라면 너무 짜치지 않을까요?
사실 여행의 목적은 다행하게 정의 내릴 수 있을 겁니다. 어떤 이유로 여행을 떠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이유가 달라붙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학교 다닐 때 수학여행도 있을 테고 탐사여행도 있을 테고 가족여행도 있고 친구들과의 우정의 여행도 있을 테고 누구랑 어떤 사유로 떠났는지, 무엇을 배우고 싶어 갔는지 쉬러 갔는지에 따라서도 여행의 행로가 달라집니다. 여러 목적이 복합적일 수 도 있을 겁니다. 가족끼리 아이들의 견문을 넓혀주기 위해 선진 문물의 나라들을 찾아다니며 박물관과 미술관을 찾아다닐 수 도 있습니다. 그저 호캉스처럼 한적한 리조트에서 하루 종일 쉬다가 해가 뉘엿뉘엿 질 즈음 테라스 카페에 앉아 와인을 마시며 감바스를 먹는 여유도 여행을 떠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될 수 도 있습니다.
어떤 여행이 됐든 사실은 여행의 본질은 '관점의 변화'에 있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의 높이를 높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일상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것을 여행을 통해 보고자 하고 체험하고자 하는 겁니다. 그래서 세상을 보는 다양성을 키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자랑질의 본질은 그다음입니다.
또한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여행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알고 가야 합니다. 모르고 갔더라도 갔으면 가서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맛집과 풍광이 멋진 곳만 검색할 것이 아니고 그 지역에 대한 사회 문화 역사 지리에 대한 공부를 함께 하고 가야 합니다. 공부가 되어 있지 않으면 그저 사진 올리기에 급급합니다. 오로지 '멋있지' '맛있겠지'의 두 단어만을 양산하는 수준에 머물고 맙니다.
완물상지(玩物喪志 ; 쓸데없는 물건을 가지고 노는데 정신이 팔려 소중한 자기의 본마음을 잃어버리는 일)의 우를 범하는 여행이 되면 안 됩니다. 소중한 시간과 많은 비용을 들여 떠난 여행인데 허투루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계획하고 준비된 여행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여행을 떠났을 때보다 떠나기 전에 준비하는 과정이 더 설레고 기쁜 것입니다.
여름휴가철도 끝나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함이 지배하는 시간입니다. 일상에 충실할 시간입니다. 또다시 틈틈이 한겨울 휴가를 준비하며 미소 지을 시간입니다. 그때가 오면 정말 제대로 준비된 여행이 될 수 있도록 차근차근 계획을 짜 봅시다. 여행은 현장을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땅의 역사와 인문의 역사를 손에 들고 찾아가서 들여다보는 일입니다. 중세 유럽의 그랜드 투어까지는 아닐지라도 인증사진을 누르는 손과 다른 쪽 손에는 책이 한 권 같이 들려져 있어야겠습니다. 그래야 여행에 투자한 비용과 시간의 효율성을 저울질했을 때 균형을 맞출 수 있을 것입니다. 돈 써서 아깝고 시간 뺏겨 안타까운 여행이 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