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저녁 약속이 없는지라 집에서 7시 정도 식사를 했다. 저녁식사를 하는 와중에 틀어 놓은 TV에서 '시골에 귀촌한 부부이야기'를 한다. '생생정보' '6시 내 고향' 등등 레거시 방송이 주로 내보내는 프로그램에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소재다. 그런가 보다 하고 TV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식사를 하는데, 남자가 귀촌하게 된 이야기를 한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시절, 빚보증 서준 것이 잘못되어 자신이 모두 변제해주느라 사업까지 접어야 했단다. 그러고 나니 "왜 남의 일 때문에 내가 고통받아야 하는지 회의가 들고 사람까지 싫어져 첩첩산중 시골로 내려갔다"라고 한다.
빚보증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내 머릿속에도 잊혔던 보증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지금 50~60대 사람 치고 주변에 대출보증이든 인보증이든 한 번씩은 다 해봤을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2008년에 제1금융권과 제2금융권의 대출 연대보증이 폐지되고 보증보험으로 대체되었으니 말이다. 그전에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때는 거의 예외 없이 보증이나 연대보증인을 세워야 했고 취업을 할 때도 사람을 보증인으로 세우는 서류를 제출해야 했다.
이 빚보증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던 시기가 97년 IMF 외환위기 시절이었다. 대출금을 못 갚는 사람들이 속출하자 은행권에서는 연대보증인들에게 대출원리금 납입 독촉장을 보내고 법적 절차 착수예정 통보서까지 보내 연체대출금을 회수하려고 혈안이 되었다. 보증인중에 직장인이 있다면 직장으로 급여 압류가 들어온다. 은행들이 가장 쉽게 대출금을 회수하는 방식이지만 직장인에게 청천벽력 같은 통보다. IMF 당시만 해도 회사로 급여 압류가 들어오면 거의 회사를 그만두어야 하는 분위기였다. 어떻게든 대신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 상황으로 몰리게 된다.
나도 97년 IMF 당시 대학 1년 선배의 대출보증을 서 주었다가 대출원리금 납입 독촉장을 받았다. 지금은 스탠더드 차터드 은행으로 바뀐 제일은행이다. 선배가 94년에 1천만 원 은행 대출을 받는데 보증을 섰던 건이다. 4년이 지났는데 원금 상환이 전혀 안돼 이자까지 불어 있고 IMF가 터지자 연대보증인을 쪼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보증을 설 때 이 정도는 선배한테 문제가 생겨도 내가 감당해주겠다는 각오를 했다. 다들 알겠지만 "빚보증은 가족이라도 해주지 말라"는 이야기가 팽배할 정도로 빚보증의 문제가 사회에 심각했던 시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배의 성실성과 인간성을 봐왔던 터라 떼어먹고 튈 사람은 아니라고 봤고 그 정도의 액수는 어떻게든 감당할 수 있을듯하여 망설인 끝에 은행을 함께 가서 보증인란에 이름을 쓰고 도장을 찍어줬다. 그것이 화근이 됐다. 1천만 원에 이자가 붙은 독촉장이 보증선 내게 날아온 것이다.
당시 나도 33평 아파트를 신규 분양받아 중도금을 내고 있던 상황이라 1천만 원이 넘는 돈을 융통할 방법이 없었다. 할 수 없이 개인연금신탁을 들고 있던 예금을 깨서 대신 갚았다. 아직까지 와이프도 모르는 사실이다. 그것이 보증의 마지막인 줄 알았다.
그런데 또 있었다. 같은 선배의 다른 대출 1천만 원짜리가 또 있었는데 오래되어서 보증을 서주었는지조차 까먹고 있었다. 하나은행이다. 여기는 더 집요하게 대출금 대위변제 독촉장을 날리고 법적 절차를 착수하겠다고 예정 통보서를 보내오는 등 피를 말리는 겁주기를 진행했다. 이때는 도저히 더 이상 깰 예금도 없는지라 정말 난감했고 회사로 급여 압류 통보라도 받는 날에는 회사까지 그만두어야 한다는 피해망상까지 겹쳐졌다. 할 수 없이 와이프한테 보증 사실을 고백했다. 다만 이미 변제한 1천만 원은 숨기고 하나은행 보증 1천만 원만 있다고 알렸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하나은행 건은 나 말고 선배의 다른 친구를 연대보증인으로 같이 세워놓은 바람에 대신 갚아야 하는 사람이 나 말고도 한 명 더 있는 것을 알았다. 은행에서야 연대보증이라 한 놈한테만 상환 통보를 해도 상관없겠지만 같이 보증을 섰던 사람의 연락처를 은행으로부터 받아서 같이 변제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상의를 하고 반반씩 부담하여 대위변제를 했다.
독촉장을 받고 대신 변제를 해주기까지 3개월가량은 정말 피 말리는 스트레스를 견뎌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2천만 원 정도의 액수 가지고"라고 할 수 도 있겠지만 월급쟁이 과장 시절의 상황에서 한꺼번에 상환을 하기에는 엄청난 무리가 왔다. IMF 시절에는 기업들의 부도가 속출하고 문 닫는 회사들이 연이을 때였다. 우리 사회의 큰 변화를 가져왔던 사건의 시기인지라 그 위기의 순간을 무사히 넘긴 사람들은 정말 천운을 만난 경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시절이었다.
아직도 내 책상 서랍에는 그 당시 대위변제 독촉장 및 대위변제 증서가 들어있는 봉투가 남아있다. 언젠가 그 선배를 만날 수 있으면 빚 갚으라고 할 수 도 있는 근거로 쓰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벌써 세월이 30년 가까이 되어간다. 아마 민사소송 시효조차 지났을 터다. 사실 그 선배는 그 이후 통 연락처를 모른다. 주변에 암만 수소문해봐도 종적을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냥 잊고 산 지가 30년이 됐다.
가끔 빚보증으로 파산해 시골에 묻혀 살고 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과거의 악몽이 안개 피듯 되살아난다. '이 또한 지나가리!'이지만 기억에서 쉽게 지나가고 잊히지 않고 가끔은 스멀스멀 검은 연기로 기억 속을 헤집고 등장한다. 그래도 가끔은 그 선배가 잘 살고는 있는지 궁금하다. 아직까지 찾아오지 않는 것을 보면 성공하지는 못한 것 같은데 --- 마음 한편에 무거운 무게추가 달린다. 잘 사셨으면 좋을 텐데, 잘 이겨내셨으면 좋을 텐데, 이제는 007 가방에 돈을 가득 들고 나타나 고마웠다고 턱 내놓을 정도가 되었으면 좋을 텐데 --- 헛된 망상을 꾸고 있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