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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ug 24. 2022

정치는 사회의 얼굴이라 부끄러움은 시민의 몫이다

정의(正義, Justice)와 공정(公正, Fair)과 자유(自由, Liberty)를 말하는 이유는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정의롭고 공정하고 자유롭다면 굳이 외치고 말하지 않아도 된다. 그럼에도 인류사에 있어 끊임없이 회자되어 왔고 아직도 유효한 외침으로 작동하고 있다. 사실은 절대 이루어질 수 없고 그저 그쪽을 향하여 간다는 방향의 등대 역할만 할 뿐이기에 묵묵히 따라가는 것일 수 있다. 그것이 절대적 옳음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상상이 물이 되고 공기가 되는 일은 실현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발을 디디고 살고 있는 이 사회도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민주공화국으로 세워져 있고 그 틀 안에서 진보하고 있다. 공동체 사회의 틀을 정의(定義, Definition) 내리는 일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 사회 주류의 물꼬가 그 개념 하에 방향을 잡고 흘러가며 주변을 물들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헌법 제1조 1항으로 규정해 놓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의 틀로 굴러가고 있다. 공화제(Republic)가 뜻하는 '국가를 시민들이 협의하여 공동으로 소유하는 체제',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을 위한 정치가 이루어지는 민주주의(Democracy)를 실현하는 체제의 국가 형태 속에 살고 있다.


이 체제가 어느 날 뚝딱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한반도의 유구한 역사와 그 속에 살아왔던 선인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흐름이다. 지금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숨을 쉬고 있는 것과 같이 선인들이 이루어놓은 흐름에 담겨 당연한 것으로 여길뿐이다.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의 형태를 규정하는 틀은 자본주의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자본이 이끄는 시장은 태생부터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시장은 돈의 힘이 좌우하는 세계다. 기본적으로 차별을 전제로 한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조화 속에 이익을 추구해 나가는 구조다. 시장의 세계로 들어가면 정의와 공정과 자유는 사라지고 약육강식의 정글이다. 그래서 이 정글에 정치와 권력의 힘을 강제로 부여하여 기울어진 운동장을 최대한 제어하고자 하는 것이다. 공인된 폭력을 어떻게 잘 사용하느냐가 그 사회의 성숙도를 나타내는 지표다. 지금 우리 사회의 지표가 바닥을 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정치를 무시하면 안 된다. 서로 의견이 다르다고, 입장이 다르다고 정치 이야기를 함께 하는 것을 금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어떤 모임이든,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손사래를 치고 그만하자고 한다. 정치 이야기해봐야 결국 논쟁으로 가고 얼굴만 붉히게 되는 막장 드라마로 가기 때문이다. 정치혐오를 일부러 조장하여 정치에 무관심하도록 하는 전략도 정치인들의 고도의 전략 중 하나다. 시민들이 무관심해야 지들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론 없는 정치 논쟁은 피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정치권에 대한 관심을 놓지 말고 감시의 눈을 부릅떠야 하는 이유다.


정치는 사회의 모든 분야가 융합되어 표출되는 종합 예술의 용광로다. 지금 우리 사회가 보고 있는 정치 현실이 곧 우리 사회의 수준을 이야기하는 잣대다. 우리 국민이 선택한 사람들이 그 짓거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누가 누굴 욕할 수 도 없다. "나는 그런 사람 선택한 일이 없다고?" 그건 핑계일 뿐이다. 우리 사회 정당정치 수준이 이 정도이고 사람을 키우지 않는 병폐의 표출을 보고 있을 뿐이다.


하버드대학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 교수는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에서 "사회가 정의로운지를 묻는 것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이를테면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 등을 어떻게 배분하는지 묻는 것이다. 정의로운 사회는 이것들을 올바르게 배분한다. 재화 배분을 이해하는 3가지 방식은 행복, 자유, 미덕이 그것이다."라고 주장한다. 근본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어떻게 균형을 맞출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결국 가진 자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로, 사회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도덕성을 요구한다. 곳간에서 인심 나는 법이다. 태어나는 것은 평등하나 어디에서 태어나느냐는 불공평하다. 그것을 불공평하다고 불평을 해봐야 소용이 없다. 그 불공평이 현실이다. 너무 염세주의적이고 패배주의적이라고 몰아세울 수 있겠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불공정한 판을 제어하고 규제하는 정치 행정이 바로 가야 하는 이유다. 엉뚱한데 힘을 쓰고 있지는 않은지 회초리를 들고 엄중히 꾸짖고 바로 가도록 하는 것도 시민의 역할이다. 정치가 어려운 이유다. 얽히고설킨 갈등으로 뭉쳐져 있는데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풀 수 있는 방법을 찾기가 요원하다. 알렉산더와 같이 지도자를 잘 뽑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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