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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Feb 07. 2023

아이들이 가족여행을 같이 안 가려고 해요

큰 딸아이가 어제 포르투갈로 3주 일정으로 여행을 떠났는데 리스본에 잘 도착해서 호텔 체크인했다고 가족카톡방에 문자가 들어왔습니다. 항공업계 국제선 여객수요가 아직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지 못해 직원들이 돌아가며 한 달씩 휴업을 하는 패턴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딸아이는 이번 2월을 쉬게 되는 스케줄이라 혼자 포르투갈로 갔습니다. 지난해에도 한 달씩 쉬는 근무 패턴이 이어지고 코로나가 서서히 주춤해지면서 해외여행이 조금 자유로워지자 독일과 덴마크 여행으로 한 달을 다녀오고 태국에서도 3주일을 있다가 오기도 했습니다. 재작년에는 제주에서 한 달 살기도 했습니다. 제가 눈치 없이 운전기사를 자청하고 꼽사리를 껴서 같이 갔지만 말입니다.


나이가 서른 살이고 해외를 다니는 것이 직업이긴 하지만 여자아이가 혼자 한 달씩 되는 여러 날을 여행하는 것에 대해 내심 불안한 마음이 있습니다. 아직 저에게 자식은 아이일 뿐입니다. 90세가 넘으신 어머니가 환갑이 넘은 아들이 외출할 때면 차조심하라고 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가족카톡방에 매일매일 사진을 보내 여행모습을 전하게 합니다. 안전하게 잘 다니고 있음을 서로 확인하는 안심제 역할을 하도록 말입니다. 


사실 아이가 여행사진을 가족 카톡방에 업로드하면 저는 구글어스에 접속하여 사진 찍은 곳이 어디인지 위치 확인을 합니다. 제가 사진 속 단서를 통한 공간 위치파악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지라 웬만한 사진이면 구글어스를 통해 금방 어디인지 알아낼 수 있습니다. 대부분 사진 속에는 유명 관광지의 랜드마크나 거리표지판, 맛집 간판등이 담기기 마련인데 그 사진 속 정보들이 딸아이의 위치파악에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감시하는 듯 하기도 하지만 멀리 타국을 혼자 여행하고 있는 딸아이의 안전에 대한 아빠의 걱정이자 염려가 우선합니다. 그렇다고 이동동선을 쫓아가고 있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지켜볼 따름입니다.


딸아이는 혼자 여행하는 걸 좋아합니다. "혼자 다니면 쓸쓸하고 무섭지 않냐?"라고 물어보면 오히려 편하다고 합니다. 자기 혼자 오롯이 시간을 쓸 수 있어 좋답니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다닐 수 있고 먹고 마시고 싶은 것이 있으면 찾아갈 수 있어 편하답니다. 그리고 해외 나가면 자기처럼 혼자 다니는 외국인 친구들이 엄청 많아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다니는 거야 그렇다고 쳐도 문제는 신변의 안전이 제일 걱정입니다. 혹시라도 혼자 다니면 소매치기들의 만만한 표적이 될 수 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행용 캐리어 및 보스턴 백에 번호입력 자물쇠를 서너 개는 더 달고 가긴 합니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면서부터 가족여행을 해외로 1년에 한두 차례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코로나가 오기 전까지 계속 다녔으니 20년 가까이 같이 갔습니다. 그러고 보니 유럽만 10년 넘게 다녀왔네요. 그래서 아이들이 해외에 나가는 거에 망설이거나 두려워하질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어려서부터 학습되어 와서 그런지 큰아이가 대학에 들어가면서는 제가 짜던 해외여행 스케줄을 아이들이 대신해 왔습니다. 호텔 예약에서부터 기차 예약, 관광지 및 박물관 할인 예약, 맛집 검색 및 찾아가기까지 모든 일정을 아이들이 설계하고 저는 왕복항공권 처리와 그저 신용카드 내밀어 결제하는 기계역할만 하는 것으로 역할이 전락했습니다. 그래도 얼마나 편한지 모릅니다. 일일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까요?


사실 네 식구가 열흘정도 움직여도 신경 쓸 것들이 소소하니 엄청나게 많음은 다들 경험적으로 알고 계실 겁니다. 패키지여행을 신청하지 않고 전 일정을 알아서 소화하는 데는 그 여행을 책임지고 있는 가장으로서는 이것저것 세밀히 준비해야 합니다. 한정된 날짜와 시간 속에서 모든 일정이 물 흐르듯 이어져야 하는데 다니다 보면 여러 상황이 그렇게 만만하게 흘러가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혼자 다니면야 쉬었다 가기도 하고 한 끼 건너뛰기도 할 텐데 가족이 움직이면 쉽지 않습니다. 항상 머릿속으로는 다른 대안이 같이 작동하며 돌아갑니다. 휴양지 인피니트 수영장에서 편하게 쉬는 일정이 아니라면 여행 내내 긴장하고 있는 게 가장의 무게일 겁니다. 이런 무게를 아이들이 대학을 간 이후로 나눠져 주니 얼마나 편하겠습니까? 계산할 때 신용카드 내는 역할만으로도 행복해집니다. 


그런데 이런 가족여행의 패턴이 바뀔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코로나 이전까지는 해외 가족여행을 간다면 아이들이 순순히 잘 따라오고 자기들이 가고 싶은 나라를 정하고 일정을 짜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최근에는 아이들이 각자 혼자 다니는 횟수가 잦아졌습니다. 막내 녀석도 방학을 맞아 친구들 몇몇과 일본 오사카 교토여행을 다녀옵니다. 왕복 항공권은 아빠가 끊어준다고 해도 친구들이랑 같이 간다고 저가항공사로 발권을 하고 갑니다. 이번 겨울방학에도 일주일에 4일 정도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으고 있답니다. 다음 학기 방학 때 여행을 갈 계획이랍니다. 그렇게들 자기들의 시간으로 해외여행 계획을 짜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부모들과 해외여행을 하는 것에 슬슬 부담을 느끼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해외로 가족여행을 같이 못 간 것이 3년째 되긴 합니다만 그전에는 여행 일정을 짤 때 아이들이 순순히 따라왔습니다. 그러던 것이 올해 해외여행 계획으로 뉴욕을 갈 예정이라고 하니 자기들은 별로 같이 가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큰아이야 뉴욕을 여러 차례 드나들었지만 가족여행으로는 일부러 남겨놓은 목적지입니다. 큰아이를 가이드 삼아 편하게 다녀올까 했는데 살짝 계획에 차질이 오기 시작합니다.


사실 뉴욕으로의 가족여행은 제가 마지막으로 남겨놓았던 것입니다. 20년 가까이 가족여행을 다니면서 주로 선진 문물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경험하게 하는 일정 위주였습니다. 인류 문명의 정점이 뉴욕이기에 뉴욕을 가족여행의 최종 목적지로 삼았던 것입니다. 올 가을쯤에 미국 동부로 가족여행을 가고자 하는 것은 정해졌습니다. 아이들을 잘 구슬려서 같이 가자고 꼬시는 일만 남았습니다. "여행 전 일정 비용 무료. 몸만 가면 됨"의 조건을 내걸면 혹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도 안 따라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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