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hengrin Apr 11. 2023

종교라는 허울을 용광로에 던져라

호모 사피엔스 이래 종교적 갈등과 전쟁은 아직도 유효한 환각으로 작동한다. 지구촌 곳곳이 종교로 분열되어 살상을 벌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다. 2천 년을 넘게 속아 왔음에도 아직도 그 환상을 좇고 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놈은 '책을 한 권만 읽은 놈'이라고 한다. 그것이 어떤 책인지는 굳이 언급 안 해도 다 안다. 그렇다고 해도 기독교인들은 그 책을 코란이나 불교경전일 거라 생각할 것이고 불교인과 이슬람인들은 성경이라고 치부해 버릴 것이다. 편협한 종교가 무서운 이유다.


종교를 글의 화두를 삼는 어리석음을 보일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나 어제저녁에 하도 같잖은 뉴스를 접해서 그렇다. 대구에서 구청 공연장 재개관을 앞두고 시립예술단이 베토벤의 '합창'을 연주하기로 했는데 '합창'이 특정 종교를 찬양한다는 종교 편향을 지적하여 공연이 무산될 거라는 내용이다. 어떤 종교 소속의 위원이 반대를 했는지는 뻔하다. 속물들에게 완장을 채워 놓으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서로 복수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 대구예술제에서 영등굿이 공연되자 반대편에서 반발했고 그전 공연에서도 찬송가가 포함되자 다른 종교에서 들고일어났단다. 그래서 이런 종교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종교화합심의위원회라는 곳이란다. 그런데 그 모양이다. 시대에 뒤떨어져도 한참을 뒤떨어진 종교적 관념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그나마 우리나라는 여러 종교가 한꺼번에 용광로처럼 실존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나라다. 그것도 커다란 표면적 충돌 없이 말이다. 물론 들여다보면 소소한 논쟁이나 다툼들로 점철된 흑역사가 숨어있긴 하지만 서로 상대방을 대규모로 살육했던 그런 나라는 아니다. 아직도 주말이면 광화문을 점령하고 있는 특정 종파가 있어 시끄럽고 불편할지라도 "더러워서 피해 간다"정도로 개무시할 정도다. 종교적 악다구니는 우리 사회에서는 그저 "핏대 세워 목소리 높여봐야 지 목만 아프지" 정도로 치부된다. 이는 그만큼 우리 사회가 다양성을 수용하는 포용력이 크기 때문에 스트레스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종교적 화합을 말하는 것 자체가 금기어이긴 하지만 부활절에 사찰에서 축하 메시지를 보내고 크리스마스 예배에 스님들이 방문하여 함께 하는 모습은 이벤트성이긴 하더라도 훈훈하게 보인다. 상대방을 인정하는 근본정신에서 출발하면 못할 것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가끔 오락프로그램에 목사님, 신부님, 스님이 함께 출현하여 각자의 종교적 시선으로 가감 없이 어떤 현상을 바라보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볼 때가 있다.  종교가 다른 사람들이 한 자리에 있다는 것 자체를 어색하게 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각자의 위치를 인정해 주고 세상 보는 눈의 다양성을 엿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고 본다. 상대를 서로 헐뜯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인정해 주는 것, 어느 신이 우월하네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 훌륭함을 드러내 보이는 것, 그것이 화합이고 통합이고 통섭이다.


종교는 강요할수록 초라해진다. 아우라처럼 존재해야 한다. 오라고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찾게 될 때 진정한 신앙인들이 된다. 나에게도 성직자의 길을 가고 있는 가까운 친구들이 있다. 성공회 신부, 개신교 목사, 조계종 스님을 하고 있는 친구들이다. 내 주변의 성직자들은 모두 사춘기와 대학 시절을 같이 보낸 친구들이다. 그럼에도 한 번도 자기의 종교를 믿으라고 나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서로 다른 종교에서 성직자로 일하고 있지만 같이 만났을 때 자기주장만을 하지 않았다. 질풍노도의 시절, 우리 집에서 같은 이불을 덮고 지금 생각하면 같잖은 종교 설전을 밤새 하기도 했던 친구도 있다. 그렇게 각자의 신앙생활로 삶을 보내고 있지만 경계를 확실히 구분해 서로를 대했다. 그래서 40년이 넘도록 친구들로 남아있는지 모른다.


종교의 힘이 강력함은 부인할 수 없다. 인간의 생각과 관념을 지배하는 언어와 의식(ritual)의 총합이 종교라는 행위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편협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사람들의 외면을 받게 된다. 외면을 받으니 자극적으로 변해가고 사이비가 등장해 자기가 진짜라고 호도한다. 지금의 현상은 반드시 원인이 있었기에 지금 이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상대를 인정해야 한다. 명심해야 할 것은 한 권의 책을 읽은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쉰다는 것은 시계를 보지 않는 일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