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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pr 12. 2023

맞선 명소였던 호텔 커피숍

이른 아침, 소공동 롯데호텔을 다녀왔다. 로비에 청소하는 로봇이 지나다니는 곁을 지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3층으로 간다. 한 언론사가 주최하는 '창의적 커뮤니케이션 조찬 포럼'이다. 포럼 주제는 '개인의 창의성을 극대화시키는 마법'이다. 제목만으로도 관심을 확 끈다. 강연자는 요즘 유튜브에 34만 구독자를 끌어모으고 조회수 200만 회를 넘는 홍보 동영상을 여럿 만들어낸 충주시청 김선태 주무관이다. 젊은 홍보맨의 패기와 기발한 아이디어를 접목하여 유튜브 동영상을 통한 지자체 홍보에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는 당사자다.


유튜브에서 인기를 끌다 보니 최근에는 tvN에서 유재석 조세호가 진행을 하는 '유퀴즈온더블럭' 프로그램에도 나오고, SBS '이상한 나라의 지옥법정'이라는 프로그램에도 충주시장과 함께 출연하기도 했다.


( 공무원이 축하해야 할까? 겸손맨의 낮은 자세 토크 URL : https://www.youtube.com/watch?v=_cr-8jK3ZMQ )


홍보업계는 아이디어의 전쟁터다. 빨리 떴다 빨리 사라지는 늪의 현장이다. 아이디어가 매일 매번 샘솟는 것이 아니기에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항상 피를 말리는 작업을 하게 된다. 반짝 스타가 아닌 지속가능한 홍보맨으로 살아남길 응원해 본다.


오늘은 포럼 참석차 행사장에 들어가다가 우연히 왼쪽 창으로 로비 라운지 '페닌슐라'의 전경이 내려다 보인다. 다가가 본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오픈하지도 않은 모양이다. 모닝커피를 마시는 손님은 한 명도 없다. 문득 이곳이 80-90년대 '맞선 명소'였음이 떠올랐다.


서울 호텔 라운지 커피숍 중에 소문난 '맞선 명소'들이 몇몇 있었다. 대부분 사대문 안에 있는 호텔들이었는데 롯데호텔이 그렇고 플라자호텔, 코리아나호텔 커피숍이 그랬다. 서울의 중심부에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만남을 주선하기에 편한 위치일 테니 말이다. 그러다 심지어는 "어느 호텔 커피숍에서 맞선을 보면 반드시 결혼에 골인한다더라"라는 루머까지 등장했다.

요즘은 중매결혼이라는 단어 자체가 사라지는 고어가 되어가는 느낌이지만 30-40년 전만 해도 중매로 결혼하는 커플들이 제법 있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마담뚜' 중매쟁이였다. 상류층 사람들을 인맥으로 연결하여 맞선을 보게 하는 특수 직업(?)이 존재했다. 지금은 중매라는 용어가 소개팅 정도로 순치된 듯하다. 뭐 아예 듀오니 가연이니 하는 결혼중매회사가 그 역할을 하고 있지만 말이다.


예전에 이들 호텔 커피숍에 주말에 앉아 있을라치면 라운지 직원들이 사람이름이 쓰인 팻말을 들고 라운지를 한 바퀴 돈다. 팻말 아래에는 작은 종이 달려 있어 딸랑딸랑 소리를 내며 팻말의 주인공을 찾는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의 풍경이다. 대부분 맞선 상대를 찾는 모습이다.


요즘이야 휴대폰으로 서로의 사진도 보내고 하여 맞선을 보기 전에 대충 인상착의는 알고 가기에 두리번거리지 않는다. 혹시 잘못 찾으면 전화를 하여 바로 상대방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휴대폰이 없던 시절의 만남은 제임스본드 접선하듯이 상대를 만나야 했다. 그렇게 호텔 로비 라운지는 '맞선 장소'로 인기를 구가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다. 요즘도 결혼 상대를 만나기 위한 첫 장소로 호텔 커피 라운지 등을 이용하나? 멋지고 예쁜 식당과 뷰 맛집들이 즐비하니 굳이 호텔 커피숍을 찾을 필요까지는 없겠다. 세대가 바뀌어 감에 따라 맞선의 장소도 변해가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아니 맞선이라는 행위 자체가 사라지는 터라 자연스럽게 없어지는 모습일 것이다.


결혼을 전제로 한 상대방을 만나는 첫 만남 장소가 어디냐는 것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꼭 중매가 아니어도,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만남이 아니어도, 처음 보는 사람의 인상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분위기라는 것이다. 80-90년대 호텔 로비 라운지가 갖는 이미지는 그랬다. 고급스러움의 대명사로 통했다. 아직도 그렇긴 하다. 시대가 바뀌고 결혼 풍속도도 따라 변했다. 잠시 머물며 커피 한잔과 담소를 나누는 고급스러운 장소로써의 기능은 아직도 살아있다. 유명 작가들이 출근하듯이 들러 차를 마시고 글을 쓰는 장소로까지 발전했다는 소문은 들리지 않는다. 아직 역사가 일천하여 그런 듯하다. 그렇게 호텔 커피숍도 역사를 쌓고 있는 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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