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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ug 01. 2023

내가 사는 아파트는 안 무너질까?

할 말은 하고 가자. 불안해서 못살겠다.


나는 오늘도 새벽에 버젓이 일어나 칫솔을 물고 베란다에 나와 서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동 건너편에 다른 동 들의 모습이 건너다 보인다. 해는 산등성이를 넘어오지 않은 터라 앞 동 22층까지 불 켜진 집이 몇 집인지 눈에 들어온다. 빤스바람에 서서 내려다보는 아파트 단지의 풍광이 갑자기 불안해 보인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제대로 지어진 것일까?


벽에 금이 가는 정도야 참을 수 있지만 무너질 수 도 있다는 환각으로까지 다가선다. 내가 좀스러운 것일까? 정신지체인가? 성과를 내려고 광분한 정부의 과도한 조사와 발표 때문에 과민반응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저 죽일 놈의 건설업체 새끼들의 부실시공이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일까?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지난 4월 검단 신도시의 지하주차장 지붕층 붕괴사고를 시공한 GS건설의 자이 아파트도 아니고 1월에 광주광역시 화정동에서 시공공사 중 외벽이 붕괴한 아파트를 짓던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이파크도 아니며 대한민국 대부분의 서민 아파트를 시공하는 LH 한국토지주택공사 아파트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파트에 사는 것이 불안한 것은 전적으로 저 놈의 건설업자들 때문이다. 어디 붕괴사고를 낸 저 놈들만 철근 빼먹고 부족한 강도의 콘크리트를 부어 넣고 했을까? 성실하게 아파트를 지은 수많은 다른 업자들이 싸잡아 비난받아도 할 수 없다. 건설업자들의 비리야 이미 세상이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 아니던가?


모두가 아는 비밀을 왜 아직도 까밝혀 내고 고치고 엄단하지 못했을까? 너무 까밝혀져서 비밀이 비밀이 아닌 세상이 되어버리다 보니 그냥 통상적으로 해처 먹던 대로 그렇게 공사하고 했던 것인가? 흔들리기는 해도 무너지지만 않으면 된다는 심사였던가?


공사를 감시하는 감리업체 새끼들은 뭐 하고 있었나? 모두 면허취소하고 감방에 처넣어야 한다. 이런 관행을 오랜 세월 시정하지 못하고 같이 해처 먹은 관리 새끼들도 마찬가지다. 모두 엄단해 처형을 해야 서민들이 발 뻗고 잘 수 있다.


아파트 부실시공으로 인한 붕괴소식들이 전해질 때마다 오버랩되는 현상이 있다. 지진과의 연관성이다. 지난 주말에도 전북 장수군에서 규모 3.5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국민들이 불안해하는 가운데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 시공한 아파트 15곳에서 아파트 주차장 공사 시 철근을 빼먹었다는 국토교통부 발표가 있었다. 어디 이들뿐이겠는가?

올해 2월 튀르키예에서 규모 7.8의 강진이 발생해 건물이 붕괴되어 3만여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하는 참사를 기억하고 있다. 사망자들의 대부분은 무너진 건물 잔해에 깔려 발생했다. 부실건축과 관리들의 부패가 튀르키예의 지진 피해를 키운 것으로 알려지자 튀르키예 정부는 건설업자 79명, 건물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는 74명, 부동산 소유자 13명, 건물을 개조한 18명 등을 구속하고 참사가 가장 심각했던 가지안테프 지역의 시장을 체포해 책임을 묻는 등 여론 무마에 나서기도 했다. 이런 참사의 와중에 단 한 명의 사상자도 발생하지 않고 건물 하나 붕괴하지 않은 튀르키예 도시가 있어 화제였다. 바로 에르진(Erzin) 시다. 인구 4만 2천 명의 에르진은 불법 건축을 허용하지 않은 시장의 결단력 덕분에 시민의 안전을 지켜낼 수 있었다.


불법과 부패의 모습은 위기 시에 반드시 그 더러운 형상을 드러내게 되어있고 근본에 충실했던 선량함과 정도를 지키는 정의도 위기 시에 그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똑같이 위기에 드러나는 모습이지만 진실의 모습으로 발가벗고 서게 되므로 그 창피함과 굴욕의 모습과 빛나는 감사의 모습이 대비되어 보이게 된다.


철근 빼먹고 시멘트 반죽 옅게 하여 남겨서 나눠먹은 공사비로 잘 살고 오래 살 것 같았지만 이렇게 만천하에 그 추한 모습으로 발가벗겨져 보인다. 무너지고 휘어버린 철근의 모습으로 말이다.


1970년 마포구 와우아파트 붕괴 사고를 시작으로 부실시공으로 인한 붕괴 사고는 한국 사회의 만성질환처럼 잊을만하면 하나씩 터져 주위를 환기시켜 줬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가 그랬고 1995년 삼풍 백화점 붕괴사고가 그랬다.  그렇게 경각심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건설업계의 부실시공의 유혹은 여전히 살아남아 아직도 여러 아파트들을 무너트리고 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괜찮은 것일까? 관리사무소에 가서 시방서라도 보여달라고 해서 뒤적여봐야 하나? 건설 건축에 문외한인 내가 들여다본다고 무엇을 알 것이며 콘크리트로 싸발라진 기둥을 두드려본들 철근 개수가 제대로 들어있는지 어찌 알겠는가?


일반 입주민들의 요런 비전문가적 약점을 이용하여 철근 빼 처먹고 했겠지만 그 피해는 앞으로 입주민들이 그대로 떠안고 살아야 한다. 건물만 불안한 게 아니고 입주민들이 항상 불안한 마음을 안고 살아야 한다는 게 더 문제다. 아파트 부녀회 및 동 대표들은 아파트 값 떨어진다고 하자가 발생해도 쉬쉬하고 덮고 넘어가려고들 할 것이다. 적당히 내가 사는 동안 안 무너지고 있다가 얼른 팔고 더 좋은 아파트로 이사 가면 그만이다는 심사다. 그러나 이사 가봐야 그놈의 아파트도 부실 시공한 아파트 일 텐데 말이다. 얄팍한 술수와 부패한 주머니 돈의 유혹에 넘어가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적어도 잠자는 집이 무너지지는 않는다는 편안함은 줘야 할 것이 아닌가? 누워 있으면서도 불안하면 그것이 뭔 집인가 말이다. 괜한 불안감일 수 있으나 작금의 현실이 불안감을 현실로 보여주고 있어 자꾸 의혹이 드는 것이다. 제발 잠 좀 편하게 자자. 무너지는 걱정하지 않고. 


단층집으로 이사를 가야 하나? 그놈의 집도 부실공사로 지어졌으면 어떡하지? 에라 이놈의 불안증세가 언제나 없어지려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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