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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Oct 12. 2023

스트레스, 미래의 시간을 당겨와 사는 원죄

"먹고사는데 근심 걱정 없었으면 좋겠다." "직장 생활하면서 스트레스 안 받고 다니는 방법이 있을까?" "사회가 이렇게 불안해서 살겠어? 중동은 또 전쟁의 극한으로 빠져들 것 같다며?"


살아있다는 자체가 걱정이고 스트레스고 불안의 연속일까? 산다는 것이, 태어난다는 처음의 시작에서부터 죽는다는 마지막 끝이 예정되어 있는 어느 시간대 동안 특정한 에너지를 가두어 놓는 현상임을 알기에 벌어지는 당연한 현상임에도 거기에 매몰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태어남과 죽음 사이의 시간만을 살 수 있다는 유한성이 있음을 인식한다면 크게 걱정할 필요도 없고 스트레스받을 일도 없으며 불안하지도 않을 텐데 왜 걱정하고 스트레스받고 불안해할까?


그 이유를 들여다보면 의외로 간단하다.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브레인은 예측할 수 있는 사건 사고보다 '불확실성'을 더 싫어한다. 불확실성은 뭔가? 모른다는 것이다. 어떻게 전개되고 펼쳐져서 어떻게 상황이 바뀌고 변해서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예측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상황을 예측해 내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많이 든다. 머리를 많이 굴리고 신경을 써야 한다. 많은 지식을 섭렵해야 하며 경험도 많아야 한다. 그래야 미래에 대한 오차와 편차를 줄일 수 있고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범위조차도 예측하고 판단하기 애매하기에 항상 불안하고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걱정과 스트레스와 불안은 바로 불확실하고 알 수 없는 미래를 현재로 끌어들여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의 원죄이자 족쇄였던 것이다.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고 의연히 이겨내야 하고 맞서서 버텨내야 하는 것이 걱정이고 스트레스이고 불안이다.


미래의 불확실성을 어떻게 맞서고 이겨내고 버텨낼 것인지 방법론을 찾는 것이 산다는 것이고 살아낸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현재를 산다고 착각한다. 2차원적 수평의 세계의 선을 그어놓고 한 발자국씩 걸어가고 있는 것을 현재라고 표현하고 '지금 현재 바로 여기'를 강조한다. 현재를 잘 사는 것이 스트레스와 근심 걱정을 없애는 길이라고 방법론을 제시한다.


하지만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은 없다. 미래의 시간을 당겨 쓰고 있는 시간을 현재라고 명명할 뿐이다. 현재는 찰나의 순간일 뿐, 실존의 시간이 아니다. 시간이라는 것을 존재로 인식할 수 있는가? 실물로 볼 수 있는가? 내가 발을 딛고 있는 대지가 돌아가며 낮과 밤을 만들고 계절을 만들고 주기적으로 되돌아오는 현상에 시간이라는 이름표를 붙였을 뿐이다. 선을 그을 수 도 없고 공간에 가두어 놓을 수 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의 주기성에 숫자를 붙여 시간을 만들어냈다.

자연의 흐름에 반기를 든 유일한 종이 호모 사피엔스다. 편하고자 만들어놓은 틀이지만 갇혀버렸다. 시간이라는 측정도구가 세상 흐름의 기본이 되어버렸다. 불확실한 미래를 당겨와서 시간을 살게 됨에 따라 불안과 스트레스와 걱정은 당연한 부산물이다. 시간에 갇힌 유일한 종이 되어 버렸다. 인간을 제외하고 시계를 보는 생물은 우주 전체에 아직까지 발견된 적이 없다. 지구의 생명은 지구의 회전에 순응하며 생존하며 진화할 뿐이다. 인간 이외에 생물은 스트레스와 근심, 걱정이 없다. 시간을 살지 않기 때문이다. 미래를 당겨와 산다는 불확실성을 모르기 때문이다. 산다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냥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도 그냥 살면 아무 근심 걱정 없고 스트레스와 불안이 없을 수 있을까? 인간은 안된다. 이미 시간이라는 멍에를 짊어지고 있음을 알아버렸기에 선악과의 원죄를 먹어버렸다.


결국 걱정과 불안과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잘 사는 길의 첩경이다. 어떻게 최소화할 수 있을까? 받아들이고 맞서야 한다. 결국 행동이다. 불안과 맞서고 스트레스와 마주해야 한다. 불안과 스트레스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불확실하기에 다가오는 괜한 불안과 걱정이 아무것도 아닌 것임을 알아챌 수 있다. 불안과 스트레스의 주변을 배회하면 할수록 그 크기만 더 키울 뿐이다. 불안과 스트레스의 원인 안으로 들어가면 그 안에 길이 있다. 들어가야 길이 보인다. 들어가지 않으면 오리무중일 뿐이다. 스트레스와 불안, 걱정의 아이러니다. 


물론 개인의 역량으로 모든 스트레스와 걱정, 불안을 없애기에는 역부족일 때가 더 많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집단 지성이 필요하고 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멘토가 필요하고 경험으로 이미 그 시간을 보냈던 사람들의 선행 지식과 지혜가 필요하다. 내 주변에 좋은 사람을 많이 둬야 하는 이유다.


개인적으로는 자기 나름대로의 스트레스 해소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스트레스 해소의 가장 기본이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스포츠 운동이 되었든 등산, 낚시가 되었든, 악기 연주가 되었든 몸을 써야 한다. 몸을 쓴다는 것은 불안에 휩싸인 스트레스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일이다. 불안을 옅게 만드는 희석 과정에서 제일 효과적인 방법이다. 아예 인생에서 불안과 스트레스와 걱정이라는 단어를 지워버리는 것도 방법이다. 그냥 닥치면 하는 것이다. 어떤 상황이 전개되든, 마주 서는 일이다. 그때그때 해결해 버리고 미련을 남기지 않으면 된다.


말하기 쉽고 글로 표현하기 좋을 뿐, 사실 근심 걱정 스트레스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매몰되어 침체된 일상을 살 수 만은 없다. 현장으로 뛰어들어 받아들이고 하나씩 하나씩 해결해 나가고 풀어나갈 수밖에 없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지만 피할 수 없다면 맞닥트려 보는 것이다. 싸우다 보면 전술도 익히게 되고 그러다 보면 빠져나갈 방법도 터득하게 된다. 싸워봐야 이기는 기술도 느는 것이다. 자 덤벼! 덤벼! 이놈의 스트레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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