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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Nov 14. 2023

짧은 동영상에 빠져 바보가 되다

요즘은 "한 달에 책을 몇 권 읽으세요?"라고 물으면 바보 된단다. 아직도 책을 읽는 사람이 있냐고 반문한단다. "휴대폰으로 검색하면 다 있는데 그런 고리타분한 질문을 하냐?"라고 오히려 핀잔을 듣는단다. 세상에나 ㅠㅠ


뭐 물을 필요도 없다. 출퇴근하며 전철에서 보는 풍경만으로도 지레짐작할 수 있다. 앉아있는 사람이나 서있는 사람이나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휴대폰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전철이 흔들려서 책 읽기가 힘들다."는 핑계는 애교다. 정말 요즘은 하다못해 내일모레가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데도 전철에서 시험공부하느라 공책을 펼치고 보는 학생을 본 적이 없다. 


종이가 외면받는 시대인지라 오히려 자연친화적인가? 책 만드느라 베어내지 않아도 되는 나무들로 인하여 공기도 정화되고 온 천지가 푸르게 푸르게 되어야 할 텐데 그런 소식은 아직 들려오지 않는다. 종이가 휴대폰으로 들어온 지가 최근이어서 아직 그 자연적 효과가 나타나지 않아서 그런가?


책을 읽지 않는 행위는 짧은 보상(reward)에 중독된 때문이다. 웬만한 책 한 권을 손에 잡으면 짧게는 대여섯 시간을 몰입해서 읽어내거나 아니면 여러 날에 걸쳐 읽으며 음미하게 된다. 요즘같이 속도에 예민한 시대에는 맞지 않는 정보 습득법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미 우리 사회는 짧은 시간에 재미를 느끼고 중독되어 가는 시각적 변태로 전락해 있다. 남들 탓하고 주변을 탓할 필요도 없다. 나 자신도 그 부류에 함몰되어 있음을 보고 깜짝 놀라고 화들짝 부끄러울 뿐이다. 휴대폰 속에서 펼쳐지는 짧은 동영상, 숏폼이나 릴스는 한번 보기 시작하면 눈을 뗄 수가 없다. 재미와 웃음이 있고 생각할 필요도 없이 쏟아붓는 동영상의 시각의 현란함에 주의를 빼앗겨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내가 스스로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재미있는 내용을 찾아 이리저리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 그냥 재미가 쏟아진다. 어찌 외면하고 피해 갈 수 있겠는가? 쉽지 않다. 그렇게 중독되어 가고 생각을 잃어가고 쾌감과 쾌락에 함몰되어 가는 것이다.


여러분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숏폼 영상을 한번 보기 시작하면 30분에서 1시간 정도의 시간은 우습게 지나갈 정도로 몰입해 있었을 것이다. 시간을 소비하는데 이처럼 최적의 도구가 또 있을까?

이런 짧은 동영상에 중독되면 놓치는 것이 있다. 바로 주체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의 저하다. 짧은 동영상은 쾌락의 마력을 즉각적으로 보상해 준다. 보면 재미있고 즐겁다. 재미없으면 다음 화면으로 휙 넘기면 되니 상관없고 1분 이내로 짧으니 생각할 필요도 없다. 이 즉각적 보상이 바로 중독에 빠져드는 통로다.


단적으로 마약과 도박이 그렇고 스포츠가 그렇다. 도박이나 마약의 즉각성이야 언급할 필요도 없다. 스포츠도 결과가 즉각적으로 나온다. 결과가 이기고 지고 숫자로 확실히 표시된다. 스포츠는 중독의 긍정적 변형의 한 형태에 불과할 뿐이다. 개인의 체력 증진을 위해서 하는 운동도 마찬가지다. 운동을 하면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난다. 


이 보상을 획득하는 시간을 지연시킬 수 있느냐가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와 연결되어 있다. 즉각적 쾌락과 쾌감은 본능이다. 죽고 사는 본능적 감각이다. 이 감각을 늦춰 보상을 지연시킬 수 있는 능력을 발달시켜 문화를 만들었다.


보상을 지연시키기 위해서는 생각을 해야 한다. 당장의 쾌감과 쾌락을 늦추었을 때 나중에 더 큰 행복이 올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쾌감을 지연시키는 지연 보상의 과정이다. 다 읽고 나야 전체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고 그 읽는 과정과 시간 속에서 자기 본연의 생각과 경험이 복합적으로 녹아들어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낸다. 짧은 동영상에 시선을 빼앗겨서는 도저히 이루어낼 수 없는 창의성의 과정이다.


"감각적 쾌락에 빠지기는 쉬우나 인과적 지연 결과를 기다리기는 어렵다" 단편적 즉각적 쾌락은 주변에 널려있고 일상이 되어 있다. 가까이는 술과 담배가 그렇고 섹스가 그렇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다.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중독이 나쁜 것은 상한치가 없다는 데 있다. 계속 강도가 세어져야 쾌감을 유지할 수 있다. 점점 더 세게, 점점 더 자극적으로 가야 보상을 받는 게 문제다.


이 중독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그 행위에 대해 본인의 경험으로 측정한 결과치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담배를 피웠더니 냄새뿐만 아니라 이런 이런 부작용이 있다는 것을 본인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이는 수많은 경우의 수를 모아 정보화한 다음에야 인과적으로 담배 끊는 행위와 연결할 수 있다. 줄여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함의 결과가 분명히 나올 때라야 중독과 단절시킬 수 있게 된다.


짧은 동영상에 매몰된 시선을 창밖으로 돌려보자. 가을의 끝자락을 넘어 겨울의 초입에 들어서느라 이파리의 색을 바꾼 가로수들의 앙상함을 들여다보자. 자연의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그 안에 공생하는 자신의 몸뚱이는 잘 보전하고 있는지를 들여다보자. 세상의 창이 이렇게 넓은데 10센티미터도 안 되는 휴대폰 화면에 눈멀고 귀 멀어 , 생각도 머는 어리석음을 떨쳐내야 한다. 휴대폰 대신 책을 한 권 집어 들자. 짧은 쾌락은 뜬 구름같이 허무함을 깨달아야 한다. 계속 뜬 구름들을 모으고 헤매다 보면 회색빛 비구름으로 바뀌고 천둥 번개와 함께 폭풍우처럼 사라지는 것이 쾌감이다. 그 쾌감과 쾌락이 휩쓸고 지나간 폭풍우의 뒤끝은 허탈함의 진수일 것이다. 짧은 동영상에 현혹되어 버려질 시간 되찾기 운동이라도 펼쳐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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