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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Nov 15. 2023

연락 안 한 지 1년 이상되는 사람은 버려라

산다는 것의 출발은 '함께' 산다는데 의의가 있습니다. 더불어 함께 살지 않으면 산다는 의미는 통용되지 않습니다. 세상에 유아독존이라는 것은 상상 속의 상징일 뿐입니다. 주변에 나와 인연 맺지 않고 사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더불어 돌아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아침 무사히 사무실에 출근을 한 것도 누군가 첫새벽에 전철을 운전해 줬기에 가능했고 또 누군가 석탄먼지 뒤집에 쓰며 뜨거운 불구덩이 앞에서 물을 끓여 터빈을 돌리고 전기를 만들어 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깨끗하게 정돈된 사무실 풍경조차 사실은 검은 어둠을 뚫고 출근해 청소를 마다하지 않으신 분들이 계셨기에 펼쳐질 수 있는 상큼함입니다. 감히 그들과 아무 인연이 없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애써 무시하고 당연한 것인 량 누리고 있을 뿐입니다. 죄송하게도.


그렇게 우리는 세상 모든 사람들과 연결 연결된 인연의 고리 속에 살고 있습니다. 어느 고리 하나 귀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누군가 나를 대신해 힘들고 험한 일을 해주고 있기에 근심걱정 안 하는 일상을 살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첫새벽을 여는 어둠 속에 있어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가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평범한 일상이 돌아가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오며 가며 스치는 사람일지라도 눈웃음 한번, 짧은 인사라도 건넬 일입니다.


"친절이나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로 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문장입니다. 자기 것만 챙기고 타인의 시간 뺏김과 피해와 손해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입니다.


멀리 깊게 생각해 볼 것도 없습니다. 주변에서 몇 년 만에 전화를 걸어오거나 문자를 보내오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사람마다 삶을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인연들과 관계를 가지고 있을까요? 학연, 지연, 혈연 등등을 비롯하여 사회 생활하면서 오며 가며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명함이 휴대폰 안에 수북이 쌓여 있을 겁니다. 그중에서 정말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아니 일 년에 한 번이라도 안부를 묻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요?


그중에 정말 몇 년 만에 띵똥! 하고 문자를 보내는 사람도 섞여 있습니다. 그런 문자나 전화를 받으면 어떤 심정이 드시나요? 


몇 년 만에 "잘 살고 있습니까?"라고 문자를 보내는 사람이 정말 안부가 궁금해서 일까요?


천만의 말씀일 겁니다. 십중팔구 무슨 부탁이 있거나 어떤 일에 대해 문의를 하고 싶거나 하는 이유가 반드시 있기 때문일 겁니다. 즉 자기의 필요에 의해 문자나 전화를 했을 가능성이 100%입니다. 이런 문자나 전화에 회신을 하고 답신을 해야 할까요?

까놓고 말해서 이런 전화나 문자를 보면 짜증부터 납니다. 물론 아주 오랜만에 문자나 전화가 와도 반가운 사람의 부류가 있긴 합니다. 바로 내가 먼저 전화하거나 문자를 보냈어야 할 대상으로부터 오는 경우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은 이미 가끔 연락을 해서 안부를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자기의 용건과 필요에 의해 정말 오랜만에 자기가 필요한 것만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통화를 하거나 문자를 보내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또다시 몇 년간 동면에 들어갑니다. 당장은 고맙다는 문자나 인사말로 끝내지만 전혀 고맙게 들리지 않습니다. 인간 말종으로 보일 뿐입니다.


이런 자기 편의 위주의 행동을 하는 사람의 부류들을 보면 의외로 젊은 층일 경우가 많음을 보게 됩니다. 자기가 필요한 정보가 있을 때만 아는 체하고 들이댑니다. 이런 부류들을 염치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부류들은 자기가 염치없음을 모르는 듯합니다.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사람과의 인연은 만들어가고 유지해야 합니다. 상호 호혜평등해야 관계가 유지되고 오래갈 수 있습니다. 세상에 공짜 점심 없다고 하는 소리가 그래서 나옵니다. 특히 비즈니스 관계에서 만난 사람이면 더욱 그렇습니다.


사실은, 부탁받을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영향력의 관계를 떠나 인간적인 유대관계가 먼저입니다. 이 유대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전화하고 문자를 보내 안부를 묻고 근황을 물어야 합니다. 내가 필요할 때만 전화하고 문자 하는 사람으로 인식되면 그 사람은 사회생활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사람마다 다를 거라고요?"


당연합니다. "당신에게 어쩌다 전화하는 이유는 정보가 필요해서 일 텐데 그 사람과의 인연은 당신이 거기까지이기 때문이야"라고 지적해도 맞습니다. 


나의 시각과 시선으로 상대를 보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관계의 격차입니다. 어쩌다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나의 존재는 그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섭섭하게 느껴졌다면 그나마 내가 생각하는 그 사람의 존재가 조금 더 크게 남아있기 때문일 겁니다.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그저 무미건조하게 대하면 됩니다. 알고 있는 내용이 있으면 전해주면 됩니다. 괜히 오랜만에 미안하니까 문자 보내서 묻는데 모른 척하는 것도 오히려 이상하고 옹졸해 보입니다.


대인이 되어야 합니다. 나에게 문의하고 알아보는 것조차 그것을 알고 있을 거라 상대방이 생각하고 있기에 묻는 것임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십 년 만에 전화가 오면 어떻습니까? 반갑게 응대할 일입니다. 내심 재수 없더라도 그렇거니 하고 흘려버리면 됩니다. 쓸데없는 시간낭비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래 오랜만에 기억을 되살릴 수 있어 치매 예방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 고맙다"라고 생각해 버리면 됩니다.


그래도 전화번호부에서 지워버리기 전에 자주 연락합시다. 카톡방에 이모티콘 하나라도 보내줘야 합니다. 잊지 않고 있다는 최소한의 예의이자 관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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