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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Nov 30. 2023

패러다임과 프레임을 이끌 수 있어야 선진국이다

넘쳐나는 휴대폰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어떻게 헤엄치고 계십니까? 대부분 사람들이 빠져들고 있는 짧은 동영상들은 말 그대로 시간을 소비하게 하는 재미와 흥미 위주의 제작물들이다. 30초에서 1분 이내에 무언가를 보여주고 휴대폰 사용자의 손가락을 멈추게 하려면 자극적이어야 하고 흥미진진해야 함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인간의 호기심과 훔쳐보기 심리를 편집기술로 활용한 교묘한 상술도 두드러진다. 짧은 동영상 하나 보려다가 10개 20개 동영상은 그냥 게눈 감추듯 보게 된다. 보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오랫동안 빠져 있는 줄 모를 정도다.


포탈 기업들이 만든 알고리즘에 갇혀 있음을 모르고 현란한 재미와 웃음을 주는 동영상에 흠뻑 빠져든다. 자기가 검색했던 콘텐츠나, 지속적으로 시청했던 동영상 유형이 계속 뒤이어 보인다. 검색하고 오래 시청했다는 것은 관심 있다는 것이고 이것을 포탈기업들이 놓칠 턱이 없다. 못 빠져나가게 덫을 놓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아직은 비슷한 콘텐츠 올리기 경쟁이 붙은 관계로 무료로 동영상을 올리게 하여 사람들이 못 빠져나가게 붙잡고 있는 형국이지만 어느 정도 독자층이 형성되었다고 하면 동영상 올리는 것이 유료로 전환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아니면 불편하게 광고 동영상을 중간중간 시청해줘야 할 것이다.


이런 패턴은 이미 유튜브에서 광고 없이 시청할 수 있는 프리미엄 서비스를 통해 경험했고 다른 많은 포털 사이트들이 사용하고 있는 마케팅 수법이기도 하다. 포탈 기업 입장에서는 시청자들을 중독자들을 만들어야 사업에 유리하기에 끊임없이 붙잡아둘 아이디어들을 동원한다. 콘텐츠를 시청자 스스로 만들어 올리게 하는 사업 아이디어는 정말 천재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공짜로 볼 수 있다고 절대 공짜가 아니다. 공짜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중독자의 고통이다.


자극적 동영상이 넘쳐나는 릴스나 숏폼 영상 속에서 정말 가끔은 진주를 캐내기도 한다. 많이 봐야 건질 수 있는 건가?라는 합리적 의심이 들기도 하지만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 항상 어디에는 길목이 있고 이 길목을 지키는 파수꾼들이 있다. 콘텐츠가 홍수처럼 쏟아져 흘러가도 반드시 거름망처럼 걸러주는 존재가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주변에 SNS 친구를 잘 두어야 한다. 이런 거름망 역할을 하는 친구말이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속에 연결되어 있는 수많은 지인 중에도 자기가 보고 인사이트가 있었던 콘텐츠를 공유해 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있다. 물론 서로의 관심이 다르기에 나와 코드가 맞는 콘텐츠를 올리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도 하지만 그렇더라도 많은 경우 공감할 수 있는 공통분모가 있다. 관심이 다른 분야라 할지라도 타인의 관심이 이런데에도 있구나를 감지하게 하는 더듬이 역할을 해주기에 고마울 따름이다.

며칠 전 가까운 지인의 페이스북에 올려진 짧은 동영상(https://www.facebook.com/reel/986547675745009 )을 봤다. 건축가 유현준 교수가 어느 인터뷰에서 말하는 내용을 중간 편집해 놓은 릴스였다. 내용은 "넷플릭스에서 오징어 게임이 1위를 하고 BTS가 빌보드 차트에서 1위를 하는 것에 열광하고 있는데 이보다는 우리가 넷플릭스와 빌보드 차트의 틀을 만드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 다른 나라가 만들어 놓은 틀을 따라가서 1등 하는데 열광하고 가치를 두는데 이보다는 자기만의 라이프스타일과 룰을 만드는 사람들이 선진국 소리를 듣는 거다"라는 지적이었다. 참으로 옳은 견해가 아닐 수 없다.


글로벌 사회에 끼어들기 위해 발버둥 치는데 급급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했다. 선진국의 문턱을 넘었다고 자화자찬하지만 유현준 교수의 시각으로 보면 우리가 만들어 놓은 틀을 세계화시킨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는 콘텐츠의 종류를 이야기하고 만들고 하는데 온갖 노력을 쏟아 붙지만 정작 그 콘텐츠를 올릴 프레임은 사용료를 내고 쓰고 있는 형국이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서커스회사가 버는 꼴이다.


곰은 몸을 내던져 공연을 하지만 근근이 먹고사는 수준이다. 가끔 더운밥, 고기반찬 나오면 감지덕지한다. 그렇게 평생을 살아왔기에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사고하는 프레임을 바꾸고 아예 사회가 움직이는 틀을 만든다는 것이 그만큼 무서운 일이다.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의 문화적 종속뿐만이 아니다. 2020년부터 전 세계적으로 기업의 책임을 강조하는 ESG(Envirornmental, Social, Governance) 개념만 해도 그렇다. 환경오염과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 지역사회와의 협력에 대한 책임, 기업 윤리와 투자에 대한 책임 등에 대한 기준을 만들어 기업을 평가하고 있다. 전 세계 기업을 ESG 평가 잣대로 등급을 매기고 줄 세우고 있는 것이다. ESG 경영이 바람직하다 아니다의 가치판단은 차치하고 이런 틀을 만들어 세계의 패러다임을 끌고 가는 거대 담론의 현장을 누가 만들고 누가 따라가고 있는가를 들여다봐야 한다. 


ESG 개념이 전 세계기업의 방향을 휘어잡기 전에도 지속가능 경영, 사회공헌이라는 명목이 주도했었고 ISO라는 국제표준화기구에서 내놓는 수많은 분야별 품질경영시스템인증(ISO 9001)도 있고 아직도 유효하다. 이런 품질인증과정을 통과하지 못하거나 기준을 유지하지 못하면 글로벌 기업에 끼지도 못한다. 지금은 ESG 개념이 모든 걸 통합한 듯하다.


이슈와 패러다임을 만들고 그것을 프레임으로 전환해서 모든 관련 기업과 국가, 사회, 국민이 움직이게 만드는 힘, 그것을 주도하는 것이 선진국 가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 속에서 지지고 볶고 자화자찬해 봐야 딱 그 수준일 뿐이다. 넘사벽을 만나면 벽을 부수고 나갈 용기와 지혜와 힘이 필요하다. 우린 그런 프레임의 힘을 기르고 있는가? 아직은 아닌 듯하다. 2030년 국제박람회 유치 실패를 두고도 온갖 비난의 말들이 난무한다. 졌으면 깨끗이 모자랐다고 승복해야 한다. 오일머니에 졌다고 볼멘소리 해봐야 바보 같은 짓이다. 돈도 능력이고 힘이다. 그다음에는 무엇이 부족했고 접근을 잘못한 것은 무엇인지 디브리핑을 해서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비난만 해서는 똑같은 꼴을 영원히 면할 수 없다. 프레임을 못 바꾸는데 콘텐츠만 열심히 바꾼다고 되는 게 아니다. 그래서 유현준 교수의 관점은 옳다. 알쓸신잡 프로그램에 나왔을 때도 신선한 관점과 통찰적 시각에 매료되었었다. 앞으로도 가끔씩 일침을 가하는 통찰력을 보여주시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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