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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Mar 18. 2024

비관적으로 보긴 쉬워도 낙관적으로 보긴 어렵다

세상을 보는 창을 두 개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긍정적으로 보는 시선이요, 다른 하나는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다.


어느 시선으로 세상을 볼 것이냐에 따라 세상은 하늘과 땅 차이로 갈라진다. 물과 기름처럼 두 시선을 나눌 수밖에 없을까?


하지만 세상사 그렇게 두부 자르듯 나눠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특히나 이 시선 자체가 인간의 인식체계에 대한 분류일 뿐이다. 낙관과 비관, 긍정과 부정은 인간 생명체 속에서 혼합되어 있다. 어떤 것을 더 많이 표출할 것인지에 따라 억지로 나눌 뿐이다. 즉 어떤 때는 긍정적이었다가 또 어떤 때는 부정적이 된다. 어떤 상황과 마주 하느냐에 따라, 그 상황일 때 내가 어떤 몸 상태, 마음 상태였느냐에 따라 드러내는 성향이 달라진다. 당신은 부정적이야, 당신은 긍정적이야라고 단정할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범주화로 묶고 단정 지워 놓아야 편해짐을 안다. 역시 에너지를 덜 쓰는 에너지최소화 법칙을 철저히 따른다. 성격이 낙관적인 사람, 비관적인 사람으로 분류를 해놓아야 쉽고 빠르게 그 사람을 판단하는 근거가 된다. 세밀하게 뜯어보고 관찰할 필요가 없다. 어떤 사람인지 자세하게 알아보려면 에너지가 든다. 그럴 필요 없이 간단하게 두 부류로 나눠놓고 보면 쉽게 대강 어떤 사람인지 판단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판단은 경험적으로 대충 맞아떨어진다. 과학이라고 우기고, 확률이라고 우기는 사주팔자가 그렇고 관상, 손금, 오늘의 운세 등이 그렇다. 그럴듯하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속아 넘어가면서도 믿게 되는 마술이 숨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창문을 어느 쪽으로 내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달라짐은 부인할 수 없다. 긍정과 낙관의 창을 내면 세상이 밝게 보이고 부정과 비관의 창을 내면 세상은 어둡게 보일 뿐이다. 


그렇지만 두 시선 모두 생존에 필요한 창이다. 어느 한쪽의 창문으로만 세상을 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두 시선의 조화가 필요하다. 너무 낙관적이면 브레이크 없는 폭주기관차가 될 가능성이 있으며 너무 비관적이면 침몰하는 배가 될 수 있다. 적절한 조화,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다. 참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세상사는 것이 그만큼 힘들게 느껴지는 것이다.

시선의 창에 대한 사례를 들어보자.


근래 한국사회와 경제를 볼 때 "단군이래 최대의 호황과 평화를 누리고 있다"라는 시선과 "대한민국의 영광은 여기까지인가 보오!"라는 시선이 공존한다. 국가와 경제 단위로 범위가 확장되면 너무나 많은 변수들이 개입되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이거다 저거다라고 단정 지어 판단하기 애매해진다. 어떤 변수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보는 시선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시선 모두 중요하다.


긍정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면 삶에 지속적으로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고 부정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것은 후퇴를 경계하고자 함이니 이 또한 나쁘게 볼 것만은 아니다. 세상을 바라본 그다음 순서가 중요하다. 행동으로 옮기는 실행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시선을 따라 방향이 정해지고 행동이 나오는데 그 첫 발걸음이 존재의 방향을 정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비관적이고 부정적으로 보기는 쉽다. 이는 자기 보호 본능의 발호다. 에너지를 적게 쓰기 위한 방편이다. 안될 것임을 예고하고 확신하면 행동을 축소하고 하던 일도 줄인다. 에너지를 비축하는 행위다. 반면 낙관적으로 긍정적으로 보면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고 실행을 한다. 에너지가 든다. 그래서 처음 접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본능적으로 주저하게 된다. 아무리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사람도 주춤주춤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비관과 부정보다는, 낙관과 긍정으로 세상을 보는 시선의 비율이 더 커야 함은 자명하다. 비관과 부정은 경계를 하고자 함이고 낙관과 긍정은 실행을 하고자 함이다. 실행을 하는 것은 움직인다는 것이다. 움직여야 변화가 있고 적응이 있고 진화가 된다. 하지 않고 움츠려 있으면 변하지 않는다. 변하지 않으면 도태된다. 세상을 보는 시선의 창은 이만큼 엄중하다. 긍정과 낙관의 창을 조금 더 크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한정된 시간을 살 수밖에 없는 존재가 살아가는 최선의 길이다. 세상을 밝게 보는 자에게, 세상은 밝고 맑게 보일 수밖에 없다. 어렵지만 세상을 보는 창을 맑고 밝은 푸른 창으로 바꾸고 넓혀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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