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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May 23. 2024

여름의 단어가 더 어울리는 시간

오늘 아침 신체 일기 예보를 중계합니다.


아침 기상 알람은 5시 반에 맞춰져 있는데, 이번주 들어서는 1시간 정도 먼저 눈이 떠집니다. 전날 저녁,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12시 전후로 거의 동일함에도 눈이 떠지는 시간이 빨라진 것입니다. 4일째 지켜보고 있는데 이 현상은 쭉 이어지고 있습니다. 딸아이 결혼식 치르느라 신체 호르몬에 약간의 변화가 있었던 걸까요? 아니면 나이가 들었다는 꼰대의 증상이 드디어 발현되는 걸까요? 며칠 더 지켜보기로 합니다.


눈 떠진 김에 일어나 천천히 조기 출근 준비를 합니다. 지난 저녁 피트니스센터에서 운동하고 샤워를 했음에도 아침 샤워를 또 합니다. 결벽증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침 샤워는 그저 평생 루틴으로 하고 있는 습관이라 그냥 하게 됩니다. 샤워 중 수도꼭지가 중립에서 찬물 쪽으로 약간 틀어져 있는 것을 눈치채게 됩니다. 바깥 기온에 따른 신체 기능의 세밀한 조정이 맞춰져 가고 있음을 불현듯 깨닫습니다. 아침의 눈뜸도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의 양과 관계있음을 알아채게 됩니다. 오늘 저녁은 블라인드 커튼을 치고 잠을 청해봐야겠습니다.


출근용 옷을 고릅니다. 오늘도 어제에 이어 양복을 입을 예정입니다. 긴팔 셔츠에 넥타이는 매지 않기로 합니다. 지난 주말 여식 혼사에 귀한 걸음 왕림해 주신 분들께 인사도 드릴 겸 찾아뵐 때 예의를 갖추기 위한 기본 복장입니다. 복장이 양복인 관계로 백팩을 메는 대신 브리프백을 듭니다.


6시도 안 된 시간임에도 해가 이미 동천에 올라서 있습니다. 시청역 플랫폼은 지하 3층에 있습니다. 층고가 조금 높아 일반 건물 5층 높이 정도 됩니다. 35년을 이 계단을 오르내렸는데 이상하게도 매일 허벅지가 뻐근합니다. 근력이라는 놈의 힘은 적응해서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근력은 강제로 키워야 함을 알게 됩니다. 아침에 이 정도 계단 오르고 회사 건물로 들어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이 있는 8층에 도착하여 재킷을 벗어 걸고 책상 앞에 앉습니다. 셔츠에 땀이 살짝 뱁니다. 노트북 부팅 스위치를 누르며 옆에 있는 선풍기의 버튼도 함께 누릅니다.

책상 위 선풍기는 어제 서랍에서 꺼내 놓았습니다. 책상 위 선풍기는 밖에서 사무실로 들어왔을 때 잠시 땀을 식히는 용도로는 아주 제격입니다. 선풍기는 아침에 잠깐, 5분여 가동하면 역할이 끝납니다. 잠시 아침기온을 체크합니다. 7시 현재 날씨 맑음, 영상 16도, 습도 83%입니다. 쾌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단 몇 개 층 올라왔다고 신체는 예열을 하고 바깥 기온에 맞춰 체온 조절을 할 준비를 합니다. 그 중거를 땀으로 시현해 냅니다. 신체 온도의 항상성은 그만큼 엄밀한 것입니다. 지구표층에서 태양빛을 에너지원으로 존재를 유지하고 사는 생명체들의 숙명을 인간은 한치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오늘 아침 일기예보에도 낮 기온이 25도 이상 오르고 경상도 내륙지방은 30도까지 오르겠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날씨 예보를 검색하다 보니 이상한 문구도 보입니다. "올해 들어 가장 높은 기온을 보이며 초여름처럼 더워질 것"이라는 문구입니다. 아니 여름의 정점으로 가는 시간인데 당연히 매일매일 온도는 어제보다 높아질 텐데 말입니다. 저 문장은 매일매일 써먹을 수 있는 치트키(cheat key)로 활용되는 듯합니다. 데이터를 비교 분석하지 않고 그냥 대충 때려잡는 문과식 해석으로 날씨를 보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그런데 많은 매체에서 이런 표현들을 씁니다. 데이터를 거르고 종합 편집하는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데이터를 판단하는 능력이 부재한데 어떻게든 시간 때우고 지면 채워야 하기에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더운 여름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할 시간입니다. 이제는 봄보다 여름의 단어가 더 어울리는 시간이기에 그렇습니다. 여름은 생명의 절정을 오르는 오르가슴의 시간입니다. 에너지 충만한 시간입니다. 더위와 땀은 그 생명의 에너지를 교환하는 자연의 물물거래 현장입니다. 초록은 더욱 짙게 하고 파랑은 더욱 강해져 검게 포화되기도 합니다. 바깥 기온에 몸의 온도를 맞추고자 하는 스멀스멀 땀을 내는 세포들의 웅장한 작업소리에 귀를 기울여 들어봐야 합니다. 혈관 속에 물이 흐르고 심장의 펌프에 밀려 손톱 끝, 발가락 끝까지 내달리는 산소의 박동을 느껴야 합니다. 그래야 여름이 더위가 아닌, 에너지 충만한 계절임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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