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가장 겁내는 것 중의 하나가 폭력에 노출되는 것이다. 폭력에도 종류가 다양하겠지만 그냥 신체적 가해를 가장 두려워하지 않나 싶다. 폭력은 즉각적인 두려움이기 때문이다.
폭력(暴力 ; violence)의 원천은 물리적 힘이다. 이 힘은 상대적이다. 물리적으로 힘이 센지 아닌지는 보면 안다. 일반적으로 덩치가 크거나 근육질의 몸을 가진 놈이 힘이 셀 것이 틀림없다. 힘이 조금 더 세면 뭐가 좋을까? 남들보다 무거운 물건을 한 번에 들 수 있어 효율성이 높다. 어떤 물리적 위험이 닥쳤을 때 버텨낼 에너지를 더 많이 가졌으므로 살아날 확률도 높다. 힘으로 얻을 수 있고 소유할 수 있는 것들이, 힘이 없을 때보다 당연히 많이 진다. 사는 게 편해진다. 감히 함부로 시비 걸거나 건드리는 놈이 없다. 가끔 객기라도 한번 부려보면 다들 슬슬 피한다. 자기가 최고인 줄 안다. 동네 깡패, 양아치의 전형이다.
힘이 약한 놈이 강한 놈을 상대할 때는 깨갱하고 엎드리거나 아니면 도구를 써서 제압할 기회를 노리는 수밖에 없다. 도구나 무기를 쓴다고 해서 약자가 이긴다는 보장을 담보할 수 없다. 그래서 약자가 강자에게 도구를 써서 대들 때 가장 잔인해지는 것이다. 내가 이기지 못하면 죽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에 물불안가리고 난도질을 하게 된다.
생물의 세계는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원초적 힘의 세계다. 힘센 놈이 장땡이라는 소리다. 특히나 동물의 왕국으로 들어가면 철저히 힘이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세계다.
인간의 세계로 오면 힘은, 더욱 처절하고 살벌하게 쓰인다. 인류가 전쟁의 시대를 아직도 끊어내지 못하고 죽고 죽이는 현장을 답습하고 있다. 모여사는 사회성의 이면을 지배하는 것도 폭력성을 얼마나 감추고 있는가에 달려있다. 상대의 폭력을 제어하기 위해 나의 폭력성을 키우는 일을 군사력이라고 한다.
폭력을 폭력으로 맞설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고, 인간의 속 좁은 폭력성과 우매함을 드러내는 일이라 낯 뜨겁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우크라이나에서, 팔레스타인에서, 그리고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수많은 경계선에서 서로 팽팽한 힘의 대치를 하고 있다. 애당초 더불어 살 수 있는 종족들이 아니었나?를 되묻게 된다.
절대 권력의 폭력이 횡횡하던 전제군주와 제국주의 시대를 넘어 힘을 분산시킨 공화정의 시대로 들어와 봐도 폭력은 제도와 공권력을 동원하여 시민들의 자유와 행동을 억압하는 형태로 모습을 바꾼다. 많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도 투표와 선거를 통해 공인된 국가 권력을 특정 정당이나 사람에게 한시적으로 위임해 주는 제도를 통해 폭력을 통제한다. 그런데 이 권력 위임이 묘하게 악용되고 있는 사례들을 수없이 목도하게 된다. 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였던 것이다.
권력은 무소불위(無所不爲)가 되기보다는 유소불위(有所不爲)의 수단이 되는 것이 더 맞는 듯하다. '무소불위'는 "하지 못하는 것이 어디에도 없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힘"으로 작동할 때 붙이는 권력의 표현형이지만 '유소불위'는 "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절제의 표현형이다. 힘은 한 번에 다 쓰는 것보다. 있으되 다 쓰지 않고 남겨두는 여유가 더 무서운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위정자들은 시대를 막론하고 이 두 표현형을 모두 악용하여 쓰는 최악의 표본형을 보여준다. 무소불위의 힘으로 법과 제도를 합법적 폭력으로 활용하여 쓰고, 유소불위의 힘은 아무것도 안 하는 폭력의 형태로 사용한다. 참 대단한 활용법이 아닐 수 없다.
권력은 그 자체만으로도 위엄을 가지고 있다. 칼을 뽑아야 칼이 있는 줄 아는 것은 하수의 눈치다. 상수는 칼집만 보고도 서슬 퍼런 칼날이 들어있음을 알아챈다. 서슬퍼린 칼날을 알아채고 '알아서 기는' 권력 밑의 추종자 부류들도 항상 있어 왔다. 사실 권력자보다 '알아서 기는' 하수인들이 더 무섭다. 언제든 내쳐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폭력성을 강화시키고 자기 합리화를 증폭시켜 충성심의 원천으로 삼는다. 밖에서 보면 한심하게 보이지만 그들은 자리보전을 위해 물불안가리고 골몰하며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는 것이다. 측은하지만 할 수 없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운명을 위로해줘야 한다.
영화 '암살'에서 염석진이 "해방될지 몰랐으니까, 알면 그랬겠나"라는 대사가 가슴을 후벼 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