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시간은 숫자로 표시되고 자연의 시간은 온도로 전해집니다.
인간의 시간은 철저히 디지털이지만 자연의 시간은 아날로그입니다. 두 시간이 같은 점은 멈추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뒤로 가지도 않습니다. 뒤와 과거가 있다는 것은 압니다. 그 뒤와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가 있음도 압니다. 그렇지만 물리적으로 과거는 없는 것과 같습니다. 오직 현재의 시간만이 의미를 갖습니다. 현재의 시간이 의미가 있어야 미래의 시간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시간은 철저한 약속입니다. 그렇게 하자고 정해놓고 맞춰 살고 있을 뿐입니다. 효율성입니다. 인간의 시간은 시계로 재는 것이고 시계에 표시된 숫자이고 시곗바늘이 가리키고 있는 숫자가 전부입니다. 인간에게 숫자가 아닌 시간은 감성의 영역으로 넘어갑니다. 자연의 시간에 살짝 맞닿아 있습니다.
하지만 교만한 인간들은 자연의 시간에도 인간의 숫자를 덧씌워 놓는 놀라운 창의력을 발휘합니다. 초 단위로 쪼개어 자연을 분리해 냅니다. 해 뜨는 시간과 비 내리는 시간, 바닷물이 밀려왔다 밀려가는 것 까지도 숫자로 표시를 하여 패턴을 읽어 냅니다. 자연의 시간이 인간의 머릿속으로 들어와 버렸습니다.
자연의 시간은 풀이 자라는 속도이며 해가 떠서 햇살로 천지만물의 밝기를 조절하는 스펙트럼 마술사의 다른 표현이어서 석양의 황혼 색깔을 결정해내기도 합니다. 자연의 시간은 가로수 잎을 연초록에서 진초록으로, 그리고 갈색으로 바꾸고 기어이 대지로 돌려보내 자연의 양분으로 회귀시키는 환원론자가 되기도 하고 드레스룸을 뒤져 긴팔 옷들을 꺼내놓게 하는 코디네이터이기도 합니다.
자연의 시간은 숫자로 표시되지 않아도 알아챕니다. 가장 쉬운 알아채기가 온도입니다.
자연의 시간인 온도는 지구 생명을 지배하는 가장 큰 변수입니다.
그런데 이 자연의 시간인 온도가 인간의 편리하고자 하는 오만함으로 인하여 오류를 뱉어내고 혼란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화석연료를 꺼내 쓰면서 지구 기온을 마구 올려놓고 있습니다. 지구 표면 평균 온도를 측정하기 시작한 1880년도 보다 1.5도 높아지지 않도록 하자고 했음에도 이미 이 마지노선을 넘어서 버렸습니다. 당장의 편안함과 편리함을 위해 미래의 시간을 당겨 써버린 것입니다. 다 같이 죽으러 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당장 내 눈에 안 보이기에, 당장 나는 아침에 샤워할 수 있고 당장 나는 에어컨 아래에서 시원하게 근무할 수 있고 당장 나는 자동차 히터를 켜고 운전대 열선과 엉덩이 열선을 켜고 따뜻해 할 수 있기 때문에 100년 후를 못 보고 있을 따름입니다.
남극빙붕이 녹아 펭귄의 생태계가 파괴되고 북극 빙하가 줄어들어 북극곰의 사냥터가 점점 사라져 가고 사하라 사막의 모래 폭풍이 점점 도시로 밀려들어온다고 아무리 온갖 언론 매체에서 보여주고 알려주어도 '남의 일'로 치부되고 있습니다. 그저 "심각한가 보군" 정도의 한 마디만 내뱉을 뿐입니다.
내 눈에 보이고 내 피부에 와닿고 내 손발에 폭풍우의 빗줄기와 작렬하는 태양볕의 뜨거움을 감지하고 나서야 "앗 뜨거워라" 합니다.
닥치고 아는 것은 하수의 전형입니다. 그나마 아는 게 다행일 수 있습니다. 알면 그나마 늦기는 하지만 대처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닥쳐도 이게 왜 왔는지를 모르면 앉아서 당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 자연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처럼 숫자의 더하기로 가지 않습니다. 자연의 시간 범위에는 초단위 분단위 시간단위가 없습니다. 그냥 쓸고 가고 그냥 날려 가고 그냥 뒤집어 놓고 그냥 붙여 놓습니다. 자연의 시간 패턴을 혼선을 가하는 인간의 변수가 추가되면 그렇습니다.
자연의 시간, 고유의 패턴에 따라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우리는 지난 한여름 폭염의 고통으로 체험했습니다. 다시 풀벌레 소리, 빗물이 처마밑 물통을 타고 흘러내리는 소리가 자연의 시간을 원래대로 돌려놓고 있습니다. 이 모든 자연의 시간이 23.5도 기울어진 지구의 자전축과 공전과 자전의 천체 움직임에 지나지 않을 뿐이지만 그 안에 살고 있는 생명에게는 찰나의 시간을 누리는 행운의 순간을 만들어냅니다.
시간을 안다는 것은 그렇게 자연의 시간에 인간이 숫자를 부여하여 의미로 재해석하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지금 비를 만들어 뿌리고 있는 저 비구름 뒤편의 찬란한 푸른 하늘이 있음을 알고 또 그 청푸른 하늘 뒤로는 검은 암흑의 진공의 공간이 감싸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자연의 시간은 그렇게 웅장하게 만들어지지만 소박하게 우리 곁에 와 있고 인간의 시간은 그 안에 세 들어 살며 그 시간에 감탄할 뿐입니다. 산다는 것은 참으로 아무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 시간을 눈치채며 살아가고 살아내는 것인데 말입니다.
나에게 지금 시간은 몇 시일까요? 숫자로 표시될까요? 아니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