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부터 호주에서는 직장인들이 근무시간 외에 회사나 상사로부터 오는 불합리한 전화나 이메일, 문자를 받지 않아도 되는 '연결해제권리(Right to Disconnect)'가 시행됐다. 그렇다고 고용주가 근무시간 이후에 근로자에게 연락하는 것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 직장인들이 부당하다고 간주되는 것에 답변하지 않아도 되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다.
고용주와 근로자 사이에 '연결해제권리'로 분쟁이 생겼을 때는 호주공정노동위원회가 중재에 나서고 법령 준수 명령을 내릴 수 있는데 그래도 지켜지지 않으면 회사는 최대 9만 4천 호주달러(약 8,400만 원), 연락을 취한 상사 개인도 최대 1만 9천 호주달러(약 1,700만 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이러한 업무시간 외 회사로부터 '단절될 권리'는 유럽권 국가를 중심으로 이미 일반적인 근로자보호법으로 발효 중이다. 유럽의회는 2003년에 근로자들의 근무시간과 작업 안전 및 건강보호를 위한 지침을 내렸고 독일과 프랑스는 선제적으로 이 법을 인정하고 2016년부터 시행 적용하고 있기도 하다.
호주연구소(Australia Institute)의 지난해 정시퇴근 보고서(Go home on time)에 따르면 "호주 근로자는 주당 평균 5.4시간, 연간 281시간의 무임금 추가근무를 했고 연차가 낮은 근로자일수록 무임금 추가근무시간이 커서 30세 미만 근로자의 경우 주당 평균 7.4시간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떤가? 근로자의 사생활 침해와 국민의 기본권 보장 취지로 국회에서 2016년 '업무 카톡 금지법'을 추진하고 지난해 근로기준법 일부 개정이 발의됐지만 국회의 벽을 넘지 못했다. 사유는 "입법 취지는 타당하지만 업무시간 외라도 긴급한 연락이 필요한 경우가 있을 뿐만 아니라 업종별로 여건 차이가 크기 때문에 법률로 일괄해 금지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근로자들에게는 아직 요원한 '연결해제 권리'인 듯하다.
사실 50-60대에 해당하는 꼰대 세대들이 지나온 기업 환경의 시각에서 볼 때 '연결해제권리'는 말도 안 되는 주장으로 들릴 것이다. 당연히 새벽출근해 해가 지고 달이 떠야 퇴근하는 게 일상이었고 당연한 일이었다. 퇴근 후에 회사에서 전화라도 걸려오면 당연히 뛰쳐나가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했다.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렇게 일을 해왔다. 그것이 대한민국을 선진경제의 초입에 들어서게 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고 그 많은 시간을 업무에만 매진하며 보냈는가?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하는 일 없이 앉아서 책상 지키고 있는 경우도 많았다.
업무 효율성을 따질 시기가 됐다. 세상이 점점 실적위주로 바뀌고 근로자들의 복지도 향상되는 시절을 지나오며 법으로 근로시간을 제한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무임금 초과근무시간이 눈에 안 보이게 섞여있다. 일이라는 게 칼로 무 베듯이 싹둑 잘라지는 게 아니다 보니 근무시간이라고 정해놔도 그게 칼로 물 베기가 되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나 원격근무도 늘어나고, 당장 카톡방에 '부서업무방' '팀별업무방' '프로젝트 매니저방' 등이 있고 이메일과 기타 SNS를 통해 업무지시와 보고, 정보 전달이 가능하다 보니 '연결해제권리'를 주장하기가 쉽지 않음을 안다. 업무시간 외에라도 답변 문자나 회신이 늦으면 눈치 보이기 십상인 것이 현실이다.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현주소다.
하지만 우리는 이 '답변하지 않을 권리'를 엉뚱한 곳에서 많이 듣게 된다. 바로 청문회에 나오는 많은 고위공직 지명자들의 입을 통해서다. "그 질문에는 답변하지 않겠습니다" "그 사안은 개인적 의견을 말하기 적절치 않아하지 않겠습니다" 등등
한국에서는 엉뚱한 곳에서 답변하지 않을 권리가 남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갸우뚱하게 된다. 입을 찢어서라도 진실을 말하게 해야 하지만 그것도 권리하고 하니 그럴 수 도 없어, 보고 있으면 답답하고 열받아서 그냥 혈압만 오르는 형국이다. 청문회 선서도 안 한다. 진실을 말할 수 없으니 일말의 양심에 계륵처럼 걸려서 그런가? 아니다. 뒤가 구려서 그럴 것이 틀림없다. 연루된 놈들이 여럿 있는 카르텔이라면 혼자 불기 쉽지 않다. 죄수의 딜레마로 끌려들어 가지 않기 위한 최선의 선택으로 묵비권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업무시간 외 직장과 단절할 수 있는 권리는 일과 삶의 균형을 찾으려고 하는 워라벨(work-life balance)의 방편이다. 주어진 일에 몰입하여 일의 성과와 실적을 내고 그다음이 균형이다. 실적도 없고 성과도 없으면 회사를 그만두는 게 맞다. 아니면 실적을 달성할 때까지 밤늦게 까지 일을 하던지. "실적을 높게 잡고 매일 쪼며 못살게 군다고?" 그게 직장이다. 직장인은 적어도 자기가 받는 급여의 3배 정도의 실적과 성과는 내는 게 맞다. 그래야 회사가 굴러간다. 직장에 나와 시간만 때우고 있는 사람은 누군가의 노력에 편승에 기생하고 있는 것이다. 시스템의 수레바퀴 속에서 단물만 빠는 것이다.
나는 퇴근하고 '업무 연결 해제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가? 그러지 못할 듯하다. 나는 퇴근 후에도 전화를 받아야 한다. 받을 수밖에 없다. 그게 35년 직장생활을 버틴 신조이며 생활이었음을 시인한다. 은퇴를 앞둔 직장인의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