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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보리 Oct 09. 2021

나를 위한 시공간 구축

그게 2년이 걸렸네요.

짬이 날 때마다 글을 쓰고 싶었는데 쓰고 나면 흔해 빠진 이야기 같다. 그래서 영 속도가 나지 않는다. 조금 썼다가 지우기를 몇 번 해보고 턱을 괴고 가만히 생각해본다. 


나는 가슴속에 무언가 있으면 그걸 실타래 풀어내 듯 글을 썼던 것이다. 쓰고 나면 내 마음이 정리가 됐다. 그럴 때는 자판에 올라가 있는 손가락이 춤을 추고 눈동자는 힘이 빡 들어간 체 하얀 화면을 또렷이 응시하며 글자를 문장, 문단 단위로 빡빡 시원하게 박아 넣는다. 

소위 그런 힘이 없다. 요즘 큰 문제없고 무탈하게 소소한 행복을 먹고 잘 살고 있는 덕분에. 그렇담 힘을 뺀 글쓰기를 해볼까. 행복할 때 조금은 나른할 때 쓰는 글. 세상을 내려다보는 듯 한 그런 멋있어 보이는 글 말고 새벽 1시쯤 나올법한 달달하고 쑥스러운 그러나 담담한 그런 글. 


잘 될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처럼 겸손이 미덕이라 여기는 문화에서 자랐기 때문인지 부정적인 감정에는 목소리를 키우곤 했지만 긍정적인 감정은 겸손하게도 혼자 조용히 즐겼던 것 같다. 잘난 척과 나대기는 금물이니까. 


2019년, 2년 전


글을 쓰는 건 사진 찍히는 것보다 쑥스러운 일이다. 왜냐면 거기서 내 민낯이 보이는 것 같아서. 드러내지 않았는데 '동그라미', '짝대기', '점', '획' 이런 것들의 조합으로 '문장'이 되고 '글'이 되고 그 안에서 내가 발가벗겨지는 느낌. 그런 사람이 또 온라인으로 모르는 사람들에게 풀어놓는다. 아주 아이러니하다. 봐주는 사람이 없으면 안도가 되지만 또 서운하다. 관종이라고 매도되기도 하는 그건, 사실 단순하고 건강한 것이다. '관심' '소통' '#살아있다' 어쩌면 방구석에서 달팽이마냥 처박혀있어도 그걸로 들판에 나갈 수도 있고 그저 굶어 죽거나 밟혀 죽거나 할 수도 있는 것. 


실생활에서는 말이 많은 게 그렇게 싫다. 특히 달변은 싫다. 말이 긴 것도 싫다. 어느새 브런치의 글들이 그렇게 느껴졌다. 글은 말이랑 다른데 글들이 좀 보기 싫어진 것이다. 그래서 앱을 지우고 글쓰기를 멀리 하고 2년 전에 말했듯이 힘을 빼고 행복할 때 하는 인스타그램에서 열심히 놀았다. 가볍고 즐겁고 사랑스럽게. 그런데 자꾸 갈수록 인스타그램의 글들도 무거워지고 있다. 다시 글을 좀 써볼 수 있을 것 같다. 그 사이, 내 책상도 컴퓨터도 생겼다. 집 밖으로 나가보려고 드디어 회사에 출근하는 일도 몇 개 지원해보았다. 떨어졌다. 


대학을 졸업하고 얼마나 간절하게 구직활동을 했었던가. 일자리를 탐내는 것은 적절치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림도 그려보았다. 그 길로 나가려 영국에서 그림 공부를 해볼까도 생각했다. 창고에 가짜 고흐 그림을 걸고 미디어 아트로 자포니즘을 보여주는 것 같은 고흐 전시관을 갔다. 정말 인생을 갈아 넣어야 하는 게 그림인데 날로 먹으려 하는 것인가 생각했다. 그림은 또 공간이 필요하다. 책상 한 개 갖고는 턱없이 모자란다. 그림은 누군가의 가르침도 있어야 한다. 고분고분 남의 말 들을 때도 지났다. 그러려고 해도 삐쭉거리고 하기 싫은 나는 계속 튀어나올 것이다. 


브런치가 갑자기 왜 생각났을까. 통번역 공부를 해볼까. 관련 코스를 찾아볼까. 하다가 어떤 분의 글을 보고 만나고 싶지는 않지만 또 만난 것 같은 안도감이 있었다. 굳이 만나서 친해지는 사교 타임을 갖고 싶진 않지만 '동그라미', '짝대기', '점', '획' 이걸로 소통한 느낌. 그거면 됐다. 그거면 살아갈 수 있다. 딱 내가 원하는 사회생활이 거기까지구나. 그분의 글이 브런치에 있었고 내 계정을 살려서 들어와 봤다. 그동안 모르는 몇 분이 더 구독을 해주었다. 그게 뭐라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세상은 많은 게 있어서 살아가는 게 아니다. 단 한 개라도 내 것이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 


밥 굶고 살 걱정은 안 해도 되잖아, 나만의 책상과 컴퓨터가 생겼잖아. 그동안 글 쓰는 것도 참아왔잖아. 맘 편히 여유 있게 다시 아무 글이나 써보자.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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