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집 고찰
난방 파이프가 깔리고 시멘트가 덮인 바닥에 마루를 깔꺼나 장판을 깔린 방에서 자랐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는 힘도 그 따끈한 방구들에 등과 유독 차갑게 느껴지던 손과 발을 깔고 지지면 몸이 노곤 노곤해지면서 단잠에 빠져들기 때문이었다. 가끔 너무 아랫목에 자리를 잡거나 난방이 너무 센 날은 거의 오징어처럼 구워지다가 새벽녂쯤에는 이불을 발로 뻥뻥 차내고 자지만 말이다. 그런 날은 흔치 않았을 것이다. 손님이 오거나 내가 어딘가 손님으로 갔을 때 그 뜨거운 바닥난방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영국에 오니 바닥난방이 웬 말인가. 비도 많이 오고 스산한 섬나라인데 그 효율적인 바닥난방을 쓰지 않는다. 그나마 최근 현대식으로 지은 집에는 더러 바닥난방이 되어 있거나 부분적으로 부엌이나 화장실에 바닥난방이 되어 있는 경우를 본다. 허나 그것은 집을 지은자가 바닥난방을 알고 있거나 더불어 얼마나 좋은 지도 알았아야 가능한 일이다. 거기다 그만큼 춥다고 느낄 섬세한 감각과 최신 기술을 이용한 난방비용을 기꺼이 쓸 여유도. 하지만 내가 보고 느낀 영국인들은 거의 잘 추위를 타지 않는다. 또한 흔하지도 않은 난방시설을 굳이 설치하고 유지할 돈으로 정원이 딸린 더 큰집에 살고 다른 부분에 더 신경을 쓸 수도 있다.
그래, 홍콩에 5년 살다가 런던으로 넘어와서 그런가 이제 바닥난방이 없는 집에 대해서는 불평할 생각이 별로 안 든다. 홍콩이야 더운 나라니까 당연히 바닥난방이 필요 없지만, 그래도 겨울이 되면 집안 공기가 싸아한 게 혼자 살 때라 그런지 이불 밖 공기는 너무나 춥고 차갑고 시려 한국의 실내 난방을 그리워 안 할 수 없었다.
이제 런던에 살면서 바닥난방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은 바로 삐그덕거리는 바닥이다. 어릴 때 들었던 돼지삼형제가 짚단, 나무, 벽돌로 집을 각각 짓고 결국 벽돌집만 늑대의 공격으로부터 무너지지 않고 남았더라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난 꼭 그 늑대 입김에 날아간 나무로 만든 집에 사는 기분이다. 온도와 습도 차이에 집안 여기저기 쓰인 나무들은 가끔 꾸드득꾸드득 소리를 낸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 어디가 아픈지 삐그덕 뻐구덕, 2층에 있는 아이 방에서 놀 때 또 꾸덕꾸덕 밟은 곳마다 소리가 난다. 유난히 힘차게 걷는 옆집 사람이 계단을 오르내릴 때면 군인이 행진이라도 하는 듯 쩌렁쩌렁 쿵쿵 소리가 우리 집에도 울린다.
내가 제일 이해하지 못하는 해외 영화나 TV 속의 장면은 누군가의 집을 몰래 들어간 사람을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화면이 들키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계단을 오르는 신발 신은 발을 비추는 장면일 때! 전통 영국의 집은 누가 움직일 때 아무 소리가 나지 않을 수가 없다. 또 영국인들은 일부러라도 소리를 내며 뒤꿈치로 쿵쿵 걷는 것 같다.
그러면 집에 생명이라도 있는 듯 어디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꾸역꾸역 소리를 내는 게 영국 집이다. 아니면 병에 담긴 개구리가 결국에는 더 높이 뛰지 못하는 것처럼 영국 사람들은 집에서 나는 웬만한 소리에는 무감각해진 것일까. 문 쾅쾅 닫고 다니지 말고 뒤꿈치로 꽝꽝거리지 않고 다니던 나에게 연신 여기저기 삐그덕 소리를 내는 런던의 3층짜리 나무 바닥 집은 한걸음 한걸음 걸을 때마다 참으로 신경 쓰이는 집이다.
밖에서 보면 예쁜 유러피안 3층 집들이지만, 거기 사는 나는 오늘 밤도 한 손에는 물 잔을 한 손에는 핸드폰을 잡고 층별로 설치한 Stairgate를 열고 닫고 잠그며 아이가 깨지 않게 까치발로 1층부터 3층 계단을 조심스럽게 올라가 본다. 최소한의 삐그덕거림으로 애가 깨지 않고 3층에 오른 그 안도감과 희열을 느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