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할머니의 방문기

한국 며느리와 손주와의 4박

by 박보리

부릉부릉부릉


시어머니 차가 집에 도착할 때쯤 나가서 문을 열어주기로 했는데 어느새 문 앞에 차전조등 불빛이 유리를 뚫고 들어와 깜박깜박거리고 있다. 주차된 그녀의 차 범퍼 아래는 보도블록에 닿이고 나서야 멈춘 듯 맞닿아 있었고 언제나 그렇듯 경쾌한 그녀의 목소리가 도착을 알렸다. 아들은 같은 날 점심때쯤 인도로 출장을 떠났고 어느덧 8개월 차 임산부가 된 부인이 걱정된 아들은 시어머니를 콜 했다. 언제든 부르면 마다하고 와줄 것 같은 친정엄마- 이것도 이제 딸의 환상인지라 친정엄마는 이제 필요하다고 해서 쉽게 와주시지 않는다. 딸이 서울 살아도 그랬을까 싶지만 큰 차이 없었으리라- 와는 달리 시어머니의 달력은 각종 경조사 및 행사 등의 스케줄로 빡빡하여 출장 날짜가 정해지기 훨씬 전부터 미리 말해놓고 맞춰본 듯하다.


며느리와 시어머니는 반가운 포옹을 하고 며느리는 손주를 데리러 시어머니는 짐을 내리러 차로 돌아갔다. 까만 대형 쓰레기봉투 몇 개에 침구류와 배게가 담겨서 옮겨지고 접이식 침대 하나, 먹거리가 든 대나무 바구니, 재킷 몇 벌, 여행가방 두어 개, 손주 티세트 선물이 내려졌고 마지막으로 하얗고 보란 꽃이 핀 조그마한 화분이 나왔다. 아 시골에서 사 온 계란! 며느리는 임신 후 유난히 한국음식만 먹었는데 시댁 식구들이랑 함께 밥 먹을 때 그나마 손이 많이 가는 게 에그 샐러드, 에그 샌드위치, 계란 프라이 이런 것들이었다. 그 이후 시어머니는 동네 시골닭들이 낳은 신선한 달걀을 꼭 사 오신다. 아마도 각종 다양한 고기를 참 자주 많이 먹는 시댁 식구들은 며느리가 계란 정도는 먹는 채식주의자로 생각하는 듯하다.


시어미니가 오기 3주 전쯤인가 손님방 벽에 물이 새더니 집주인과 드라마틱한 밀당을 거쳐 그녀가 도착하기 이틀 전에 페인트칠, 하루 전에 카펫 청소가 끝났다. 국제이사센터를 통해 홍콩에서 옮겨온 쾌쾌하게 젖은 이케아 침대는 해당 자치구에 의뢰하여 특별 수거되갔다. 며느리는 재빨리 에어비앤비를 검색했고 운 좋게 집 근처에 괜찮아 보이는 방 하나를 찾아서 예약해두었다. 몇 년 전에 홍콩에 친정엄마가 방문할 때 에어비앤비 집을 예약해두었다가 친정엄마가 서운해하는 바람에 크게 한바탕 싸우고 울었던 게 생각났었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해야 어른들은 서운해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기도 했고, 밤에는 서로 좀 신경 안 쓰고 쉬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으로 3일 밤만 우선 예약을 했다. 맘에 안 든다면 호텔로 가시게 하리라 마음을 먹고. 당연히 번거롭고 무겁게 간이침대를 가져오시지 말라고 미리 말도 해두었지만 시어머니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첫째 날은 늦기도 했던지라 시어머니는 가져온 간이침대에서 잤고 23개월 손주는 아빠와 똑같은 방식으로 놀아주는 할머니의 등장에 즐거워 보였다. 특히 할머니가 가져온 영국식 도트무늬 티세트를 가지고 어찌나 소꿉장난처럼 잘 노는지. 영국 할머니에게 티 에티켓도 제대로 배워서 인형을 차례로 옆에다 손님처럼 앉혀 놓고 찻잔을 세팅해 주고 차를 따라주고 조그만 손으로 꼼지락꼼지락거리며 마시는 척하는데 엄마도 괜히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아들이 마지막에 찻잔을 높이 들어 올려 입에 털어 넣는 듯한 모습을 보일 때에는 풋 하고 웃음이 나기도 하였다. 꼬맹이 때부터 물을 마실 때에도 건배하고 배우는 한국인의 피가 흐르기는 하는가 보다 하면서.


둘째 날 아침 드디어 에어비앤비 집에 가서 호스트와 인사를 했다. 매우 정갈히 머리를 넘긴 여인이 그녀답게 깨끗하고 예쁜 집에 시어머니가 묵을 방을 소개해주었다. 그녀는 본인 소유의 집인데 방 두 개는 손님을 받고 있다고 하였다. 호스트의 구역은 비밀의 문과 현관 벨로 정확히 나누어져 있는 듯했다. 며느리는 한국에 혼자 살고 있는 이모가 떠올랐다. 그녀가 영국에 있다면 저런 모습이었을 것 같다고 그랬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날 밤부터 하루를 더 연장한 3일 밤을 시어머니는 에어비앤비에 묵으며 며느리 집으로 출퇴근하였다. 시어머니는 에어비앤비의 조그마한 샤워부스가 불편하다고 하였고 기억을 더듬어보니 일본의 캡슐호텔마냥 정말 작았던 것이 며느리는 생각났다. 특히 시어머니에게는 작았으리라. 좀 둔한 며느리는 이렇게 뭔가 하나씩 놓치고 좋은 것만 기억하는 비상한 능력이 있었다.


셋째 날 손주의 짐보리 수업을 함께 가본 할머니는 꽤 맘에 들어하셨다. 짐보리를 가는 길은 그녀가 젊은 시절 런던에서 회사생활을 할 때 동료와 함께 묵었던 집이 있던 곳이기도 했다. 이 집이 그 때도 있었고 여기는 비어있었고 저쯤에 회사 소유의 큰 집이 있어 행사나 다이닝을 할 때 모였다고 했다. 도로 쪽으로 창이 난 그녀가 살던 방은 햇살이 따사롭게 비추고 있었고 마침 그 옆으로 현대식 낮은 지붕이 꽤 넓게 빼꼼히 올라와있었는데 시어머니는 예전에 거기 무엇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였다. 그 길을 며느리와 시어머니와 유모차에 탄 손주가 걸었다. 앉았다 일어났다 수없이 해야 하는 아이의 수업은 인공관절에다가 바닥에 앉는 것은 요가 운동시간에나 하는 걸로 아는 시어머니에게는 힘들었다. 조금 멀찍이 떨어져서 소프트 블록에 앉아서 보고 있는 할머니를 손주는 기특하게도 가끔 달려가서 안아주고 손을 당기곤 하였다.


넷째 날 한국에서 시어머니가 오셨을 때 며느리가 배달음식을 시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둔한 며느리는 한국에서도 또 본인 좋을 대로 하고 욕먹지 않았을까. 시어머니가 온 이래 딜리버루라는 배달앱을 통해서 저녁을 시켜먹었었다. 것도 한 이태리 식당에서만. 며느리가 봉골레 링귀니를 시켰을 때 시어머니는 그게 무엇인지 궁금해하셨고,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시킨 밀라노식 치킨 커틀렛을 처음 먹으면서 다음에 시켜먹어야겠다 생각했다. 어느 날은 며느리가 아들 목욕을 시키는 동안 시어머니는 오믈렛을 해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각종 야채를 넣은 밥 없는 오믈렛에 며느리는 밥을 따로 두 그릇을 퍼다가 케첩을 찍어 맛있게 먹었다. 참고로 시댁 식구들은 케첩을 먹지 않는다. 마지막 날 밤 손주에게 줄 치킨을 만들어주겠다던 할머니는 요리를 하다 화재경보기를 작동시키고 말았다. 손주 목욕시키던 며느리는 놀람과 경계의 눈빛으로 내려왔고 혼자 당황하였을 시어머니는 주방 문을 닫고 혼자 처리하려다 연기가 꽉 차서 그렇게 된 듯 천장의 경보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마지막 날이 왔고 보행자 연석에 꽉 끼어있던 그녀의 차 범퍼는 성공적인 미션 수행을 늠름히 알리며 끽끽 대며 후진 후 빠져나갔다. 매일매일 전화하여 안부를 묻던 아들이나 시아버지의 염려는 다행히도 무사히 넘겼다. 수시로 할머니와 티타임을 하던 손주도 즐거웠고, 독박 육아의 부담도 덜었던 며느리도 비상시에는 언제든 달려올 시어머니가 곁에 있다는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간 후 라면을 끓여 김치와 함께 후후 불어 원샷을 했지만 시어머니와 있는 동안 김치도 한번 꺼내먹고 라면 생각은 한 번도 나지 않고 지냈으니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했다. 천장에 달린 화재경보기는 오늘은 이상 없음 푸른빛을 깜박깜박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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