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소중한 당신 안녕
그녀와는 언제 처음 만났더라.
영국에 넘어와서 제일 먼저 했던 게 집안일 도와주는 분을 찾는 거였다. 카펫이 깔린 영국집에서 안 하던 집안일을 풀타임으로 하면서 애를 키울 생각에 오매불망 그 생각뿐이었다. 오기도 전부터 인터넷 검색부터 했는데 몇 달 먼저 건너가서 살던 남편이 내가 연락해보라고 준 곳은 나이 드신 여자 한 분이 전화기 한대 딸랑 놓고 줄담배 피우면서 인력을 연결해주는 곳이라고 했다. 여하튼 도착해서 단지 관리인을 통해 소개받게 되었고, 이마저도 너무 바빠 또 아는 사람을 소개하여준 것이 그녀와의 인연이었다. 너무 바빴던 그분은 말이 청산유수인 게 오히려 영국 초짜인 내게는 부담스러웠다.
그렇게 소개에 소개를 받은 사람은 나보다 덩치가 컸는데 위층에서 청소를 할 때마다 집이 무너질 듯이 삐걱거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맨 손톱이거나 벗겨진 매니큐어가 발라진 내 손에 대비해 그녀의 손톱은 잘 정리되어서 강렬한 색으로 반짝거렸다. 물론 나는 임신 중이라 손톱관리나 매니큐어를 바르는 것도 삼가긴 했지만. 그녀는 집안일을 도와주는 사람치곤 손이 고왔고 반대로 그녀가 정리하고 간 주방식기들은 기름기가 혹은 음식찌꺼기가 그대로 묻어있곤 했다.
손설거지가 필요할까 봐 그녀의 손에 맞게 큰 사이즈의 고무장갑을 준비했음에도 그녀는 한 번도 쓰지 않았던 듯하다. 그릇, 냄비, 도마 모든 것은 식기세척기에 다 구겨 넣고, 그야말로 구겨 넣었다, 기계가 설거지를 끝내면 그대로 선반 위로 정리해 넣었다. 문득 학창 시절에 '가정'이란 과목을 배웠던 게 떠올랐다. 그런 과목이 유럽에 있었을까 싶었다. 그녀는 폴란드에서 왔다. 폴란드에는 있었을까. 하긴 '가정'이란 과목에서 설거지하는 법을 배우진 않았다. 그저 엄마한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기를 설거지는 기름진 그릇과 아닌 것으로 나눠서 거품으로 충분히 씻은 후, 헹굴 때에는 깨끗한 수세미로 따로 뽀득뽀득하게 역시 충분히 헹궈준다. 이후에는 주변에 물기 하나 없게 행주로 닦아 꼭 짜 놓고 배수구에 쌓인 음식 쓰레기까지 싹 치워야 끝나느 거라고. 가끔 팔팔 끓는 물에 한다는 소독은 말해 무엇하랴.
반대로 시댁에 처음 가서 놀란 것은 설거지였다. 설거지 기계가 있지만 따로 손설거지를 한 냄비나 국자 등은 거품을 특별히 걷어내지 않았다. 즉 헹구기에 참으로 야박했다. 아주 뜨거운 물로 한번 스윽 헹구고 마른 타월로 거품을 닦아내는 정도의 느낌. 그래 설거지 문화가 다른가보다 했다. 가끔 내가 다시 더러운 식기나 집기 등을 다시 꺼내서 다시 설거지하곤 했다.
빨래는 탁탁 털어서 공기가 통하는 길을 만들어주면서 너는 거라고 배웠다. 그런데 그녀의 빨래는 때론 숨 뭉치같이 턱턱 빨래걸이에 걸터있거나 침대보 같은 경우는 몇 겹으로 접어서 말려있었다. 실내가 건조한 영국이라 그런지 그러고도 잘 말랐다. 역시 가끔 내가 따로 보일러실에 덜어서 걸어놓거나 접히지 않게 펴서 다시 널곤 했다. '한 번도 집안일해본 것 같지 않은 사람처럼 집안일을 하는' 남편도 그녀의 식기세척기 사용방법에 경악했고, 한국에서 왔던 친정엄마는 말해서 무엇하리, 하물며 최근에 묵고 간 시어머니조차도 나 없이 손주와 귀가했을때 그녀가 노래를 듣고 있었다고 속삭였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아무리 고상한 일도 직업이 되는 순간 남들은 모르는 각자의 고뇌가 시작되는 법이다.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남겨두라는 말이 있듯이. 미용실에 가면 온전히 맡기는 편이다. 서비스 직종이 그래서 어려울 것이다. 보이지 않는 상대의 마음을 읽어서 필요한 것을 주어진 시간 내에 최상의 결과로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그녀는 남편과 사별하고 싱글맘으로 십 대가 된 딸이 있었다. 평생을 온갖 궂은일을 하며 나를 지원해 준 엄마를 떠올렸다. 맘 속에는 언제나 이직을 꿈꾸며 꾸역꾸역 일하던 내 과거를 떠올렸다. 더구나 가끔 아이를 맡아주지 않는가. 아이가 끼면 약자가 된다.
그러던 그녀와 오늘 작별을 고했다. 더 길게 끌었다가는 나도 언젠가 곧 심한 말을 하게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소위 갑질 같은 거 하고 싶지 않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애엄마로서 연대하며 서로 윈윈하는 돕는 관계가 되고 싶었다. 개인사야 어떨지 몰라도 되도록이면 웃고 담배로 고달픔을 위로하지 않고 내 아이를 좋아해 주는 그녀를 응원했었다. 각종 집안일이라는 업무를 분담해주는 그 일의 소중함에 내 번역 감수 작업만큼의 시급을 가져가는 그녀를 존중했다. 이제는 그 관계를 종료하려 한다. 한동안 온전히 내 손길만 닿을 집안에 행운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