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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llyscooter Oct 18. 2021

누텔라 크레이프와 늑대개

ITALY (애완늑대)

이탈리아의 북부 토스카나 지방엔 엘바(Isola d’Elba)라는 섬이 있다. 이곳에 별장을 가지고 있는 이탈리안 친구의 초대를 받아, 우리 커플은 이탈리아에 도착 후 이곳으로 향했다. 인천공항에서 암스테르담을 거쳐, 밀라노 국제 공항에 도착 후, 땅을 밟자마자 또 다시 쉴 새 없이 약 400 킬로 정도를 차로 3시간 정도로 달려와 포르토페라이오(portoferraio) 항구에 도착했다. 그리고 한 시간 동안 페리를 타고 드디어 엘바 섬에 도착했다. 


도착하니 섬 특유의 아기자기함과 평온함이 느껴지는 자연 정취가 느껴진다. 키가 그리 크지 않은 나무에서 핀 핑크빛 꽃들, 바다와 산 그리고 하늘이 함께 보이는 풍경, 그리고 섬에 유독 많은 라운드어바웃 로터리는 내가 섬마을에 도착했구나 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이곳은 유독, 곳곳에서 소나무가 많이 자란다.


한국에서 보는 기품과 특유의 기세가 느껴지는 소나무라기보다는 해를 좋아하는 소나무다. 나무들이 조경사들이 깎아 놓은 것 마냥 브로콜리처럼 둥그스름한 모양을 띄고 있었고, 뾰족뾰족한 입들은 햇살이 비치는 태양을 향해 자라고 있다. 이곳의 소나무는 이탈리아인들처럼 해를 무지하게 좋아하는 것 같다. 농담이 아니다.


이곳은 시칠리아 같은 짙은 향토색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토스카나 인들이 쉬고 싶을 때 찾는 주말 휴양지 느낌이다. 유독 요즘엔 독일인들이 여름휴가를 보내러 많이 찾아온다 한다. 사실 다른 이탈리아 지역보다는 향토적이거나 자극적이거나 즐거움을 주는 요소는 적지만 그 나름대로의 평온한 정취가 느껴진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종종 여행 에세이에서 언급하길, 그 나라의 술은 그 나라 현지에서 먹을 때 가장 잘 어울리며 맛있다고 했는데, 정말이지 사실이다. 술을 아니지만 달콤한 '누텔라'의 고장이 이탈리아 아니었던가. 남편의 친구 아들 9살 라포는 저녁을 먹고 디저트로 누텔라 비스킷을 먹는다.

오늘 밤에도 누텔라 크레이프가 먹고 싶다는 말에 1.2 킬로를 걸어 마을의 크레이프 노상을 찾았다. (어젯밤에도 방문했었다.) 밤 10시가 넘는 시간이었는데 노란색으로 예쁘게 꾸며놓은 카트를 마주한 줄이 꽤 길다. 청소년들 어른들 아이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크레이프를 능숙하게 구워되는 크레이프 아줌마가 말하길 누텔라와 마스카포네 치즈의 조합이 최고로 맛있다고 한다. 듣고 있던 친구 루비나가 맛은 있겠지만 지방이 엄청날 거라고 혀를 찬다. 그 맛이 궁금하긴 했지만 심플하게 누텔라 맛을 골랐다. 전날에는 누텔라와 코코넛을 골랐는데 오늘의 선택이 더 만족스럽다. 바삭하고 따뜻한 삼각형 모양으로 접힌 크레이프 위에 솔솔 뿌려진 아이싱 슈가. 오늘은 안 먹겠다고 선언하고 같이 길동무가 돼주려 걸어왔는데, 어느새 크레이프 만드는 솜씨에 홀려, 두 손 가득 크레이프를 쥐고 우걱우걱 먹고 있다. 유혹에 매우 취약한 타입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뱃살이 튀어 나오더라도 마스카포네 치즈와 누텔라가 담긴 크레이프를 먹어 볼걸 이라는 후회가 든다. 이 누텔라 크레이프는 이 섬에서 즐긴 유일한 유흥이자 일탈이었다. 그만치 조용하고 한가로운 섬이다.

이 섬은 한때 나폴레옹의 유배지였다고 한다. 나폴레옹을 이 섬에 보낸 후, 그를 이 섬의 ‘왕’이라 칭호 했지만 사실상 유배였다. 나폴레옹은 6개월 만에 이 섬을 탈출하였고 그 뒤 워털루 전투를 이끌었지만 전쟁에서 패배했다. 그때 당시 지어진 건축들이 아직 항구 근처에 남아 있다.


그렇게 누텔라 크레이프를 먹고 다시 1.2 킬로미터를 터벅터벅 걸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내 앞에서 두 마리의 큰 개와 함께 걸어가는 커플이 보인다. 라뽀가 외친다.


“오! 늑대다.”. 늑대라니… 목줄을 하고 걸어가는 늑대가 있나라는 생각에 나는 “허스키 종류 아니야? “라고 말했다. 그러자 라뽀의 아빠인 마이클이 “아니야, 쟤네 정말 늑대야.”라고 말한다. 믿을 수 없다. 분명 장난기 넘치는 이탈리아인들이 나에게 하는 농담이겠지. 내가 또 속을까 봐? 근데 마이클은 그런 농담하는 스타일의 친구는 아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정말 크기가 꽤 큰 허스키 종류와는 좀 더 야생의 것으로 보이는 더 날렵해 보이는 실루엣의 늑대가 보인다. 이것은 나에게는 문화 충격이었다. 늑대를 애완용으로 기르다니…


알아본 즉, 체코슬로바키아 울프독이라는 종으로, 늑대와 쉐퍼드 개를 혼합한 종이다. 외모는 늑대지만 성격은 온순하며, 거의 개와 행동이 흡사하여 훈련이 가능하다. 또한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며, 집에서 가축화가 가능하다. 그래도 늑대개라니… 사진을 찍어 둘까 했는데 이때는 용기 내지 못했다.


그 후 이탈리아의 남부 사르데냐 섬에서 늑대와 걸어가는 금발의 예쁜 아가씨를 만났다. 늑대가 잔디에 구부려서 소변도 보고, 목줄에 묶여 강아지처럼 주인 옆에서 살랑살랑 걸어간다. “혹시 실례지만, 이 동물이 늑대가 맞나요? “ 하니 “맞다” 고 대답이 돌아온다. “믿을 수가 없어요. 너무 신기해요.”라고 말하니 “개와 똑같아요.”라고 늑대 주인이 대답한다.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찍었다. 늑대가 얼굴을 도리도리 움직여 사진이 아쉽게도 살짝 흔들렸다.


이 얘기를 한국의 지인들에게 전하니, 그중 재밌는 나의 친구가 로마의 건국 신화를 언급하며 이탈리아인들이 그래서 늑대를 좋아하는 게 아닐까?라고 말한다. 다시 늑대를 키우는 이탈리아인들의 이야기로 돌아와, 친구의 추론은 아무 생각 없이 들으면 제법 그럴듯한 이론이다. 그런데 한번 더 생각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곰을 좋아했었나? 라며 갸우뚱하게 된다. (단군 건국 신화를 생각하며..)

(간추린 이야기)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에는 늑대 젖을 먹는 쌍둥이 형제 동상이 있다. 이들의 이름은 로물루스 (Romulus)와 레뮤스 (Remus). 누미터 (Numiter) 왕의 딸이었던 레아 실비아(Rhea Silvia) 공주와 Mars  사이에서 태어난 자손이다. 왕이 죽자 왕좌는 선친 왕의 형제에게 돌아갔고,  새로운 왕은 미래 위협이  거라 생각되는 주요 인물들을 모두 처단한다. 갓난아이인 로물루스와 레뮤스 쌍둥이 형제도 죽일 작정으로 강가에 버려지게 된다. 양치기에게 발견될 때까지, 늑대가 젖을 먹여 이들을 키워 냈다. 후에 이들은 우여곡절 끝에 로마를 건국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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