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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llyscooter Apr 04. 2022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아사도.

ARGENTINA (소고기 천국 아르헨티나)

이탈리안계 아르헨티나인 남편과 함께 여행을 할 때면 '웨어 아유 프롬?' 남편의 국적을 사람들이 물어보곤 한다. 이들에게 남편이 '아이 엠 프롬 아르헨티나'라고 답을 하고 나면 상대방의 국적을 불문하고 그 이후의 대화는 상당히 비슷하게 흘러간다. 가장 먼저 상대방이 내뱉는 단어는 '오 메씨!! 아르헨티나는 리오넬 메씨 축구 선수가 유명하지' 다. 예상이 되겠지만, 30년 전에는 마라도나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고 한다.


아르헨티나엔 축구 말고도 유명한게 있는데 바로 소고기다. 아르헨티나는 그야말로 소고기 천국이다. 인구 한 명당 소고기가 두 마리 꼴이라 말할 정도로 소가 넘쳐 난다. 그리고 소고기를 정말 많이 소비한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교외로 드라이브를 하다 보면, 끝없이 이어지는 넓은 평원에서 소들이 자유롭게 풀을 뜯어먹고 있는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예전에 서울에서 남편과 함께 소고기 구이를 먹으러 간 적이 있다. 맛있게 숙성시킨 한우를 판매하는 곳인데, 우리는 소고기 2인분, 약 500 그램 정도를 주문했다. 1인분에 4만 5천 원 정도 하는 터라, 계속 시키다 보면 계산서의 금액이 무섭게 올라간다. 2인분을 시키고 양이 살짝 모자라 차돌 덮박과 된장찌개를 시켰었다. 남편이 처음 고기를 굽기 전, 손바닥만 한 1인분의 한우를 보더니, '나 이거 12 덩어리는 더 먹을 수 있어. 아르헨티나 가서 실컷 먹어야지'라고 말했다. 그때는 '웬 허풍'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르헨티나에 남편과 함께 방문 후, 그때 남편이 했던 말이 허풍이 아니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아르헨티나의 소고기 바베큐는 '아사도'라고 불린다. 이들은 소고기에 정말 진심이다. 식사를 하기 3시간 전부터, 마른 나뭇가지와 나무, 그리고 숯에 불을 붙이기 시작한다. (아르헨티나 친구 뿌삐는 길거리에 널부러져 있는 두툼한 나뭇가지만 보아도 '아사도'를 떠올리며 집으로 가져간다.) 뜨겁게 재로 변해가는 이 숯덩이와 나뭇가지에서 나는 열기로, 커다란 고기 덩어리를 그릴에 굽기 시작한다. 


한국에선 200 그램에서 250그램의 스테이크 형식으로 소고기를 먹는 것 익숙한데, 이곳에선 어림없다. 최소 2킬로가 넘는 고깃 덩어리를 통째로 익히기 시작한다. 굽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갈비 부위와, 초리소를 먼저 그릴에 올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한시간 정도가 지나면 립아이와 실루안 부위를 그릴에 올려 서서히 굽기 시작한다. 마지막은 엔뜨라냐라는 우리로 치면 '토싯살' 부위를 그릴에 올려 굽는다.

(좌) 장작과 숯이 타고 있는 모습      (우) 초리소
(좌) 친구 집 다이닝 룸에 설치된 빠리샤 & 아사도 하는 날의 모습


이렇게 천천히 정성을 들여 나무 장작의 열로 고기를 구워내니 맛이 없을 리가 없다. 잘 구워낸 초리소는 입안에 넣으면 이에 닿는 순간 바삭하게 구워진 겉 부분이 톡 터지며, 육즙이 입안으로 흘러내린다. 짭조르만 이 초리소의 소세지 맛은 아사도의 시작을 알리며 애피타이저 역활을 톡톡히 한다. 입맛이 확 동한다. 그 다음엔 토싯살을 먹는다.


개인적으로는 이 엔뜨라냐 부위가 너무 맛있다. 퍽퍽한 고기 대신 쫄깃한 고기 식감인데 이 엔뜨라냐도 육즙이 기가 막히다. 예전엔 아르헨티나에선 이 부위는 먹지 않고, 그들이 키우던 개들에게 줬던 부위라고 한다. 아니 이 맛있는걸, 개들만 먹였다니... 현재는 이 엔뜨라냐의 소비도 늘어나서, 꽤 인기 있는 부위로 자리 잡았다. 한 번은 오후 늦게 정육점을 찾았더니, 엔뜨라냐는 품절되고 없다고 한다. 소 하나당 한정된 분량이 나오니 이제는 서두르지 않으면 먹기 어려운 인기 부위가 되었다. 그 다음은 갈빗살, 실루안, 립아이 순서로 먹는다. 한국도 부위 가리지 않고 곱창을 포함한 소고기 곳곳을 먹는 편인데, 이곳에선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소고기 부위를 먹게 된다.


모셰하 라는 부위인데, 몰시샤 라는 부위와 이름이 헷갈린다. 모셰하는 심장 옆에 위치한 부위인데 사전을 찾아보니 한국어로는 '이자'라고 한다. 처음 듣는 부위이다. 뽀얗게 흰색을 띠는 이 부위는 닭가슴살 그릴에 구워내듯 겉을 갈색 자국이 남게 바삭하게 구워내고 그 위에 레몬을 뿌려 먹는다. 겉은 바삭하고, 안은 버터를 구워낸 듯 부드러우며 기름진 그런 맛이다. 너무 맛있어서 처음엔 계속 먹었다. 그런데 먹다 보니 이 기름지게 부드러운 맛은.. 콜레스테롤이 틀림없다.. 곱창을 먹을 때 느껴지는 그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과 비슷하다. 남편에게 '이 모셰하 혹시 콜레스톨이 많이 함유돼있어?'라고 물어보니 '응 콜레스테롤 덩어리야'라고 남편이 무심하게 답한다.. 어이쿠.. 다음부터는 조금씩 먹어야지..라고 다짐한다. 그 다음부터는 건강이 염려되어 조금씩만 먹기 시작했다.


그와 이름이 비슷한 몰시샤는 우리로 치면 순대와 비슷한 컨셉인데, 소의 피와 지방부위를 넣고 만든 검붉은 보랏빛을 띠는 소세지다. 텍스쳐는 질퍽이고 쫀득되는 무스 같다. 이 몰시샤도 아사도의 인기 메뉴다. 매번 아사도 때마다 이 몰시샤(Morcilla)를 항상 같이 굽는다.


아르헨티나 인들에겐 이 아사도는 영혼의 음식과 같다. 집집마다 이 거대한 그릴이 그들의 정원에 혹은 부엌 안에 자리 잡고 있다. 한국에 김치 냉장고 한 대씩 두듯, 이들 집에는 벽돌로 지은 '빠리샤' 그릴이 빠짐없이 한편에 크게 자리 잡고 있다. 나의 두 팔을 활짝 벌렸을 때의 길이만큼 큰 그릴이다. 아르헨티나에 일 년에 한 번씩 도착하면, 도착한 날 가족들이 우리를 위해 아사도를 만든다. 그리고 그 다음날 남편의 베스트 프렌드 집을 찾으면, 이 날을 맞아 남편 친구들은 아사도를 만든다.


일 년에 한 번 부에노스를 방문하는 탓에, 남편의 모든 친구들도 이때 만난다. 초등학교 동창 모임, 고등학교 동창 모임, 럭비를 함께 했던 친구들과의 모임. 여러 명이 한자리에 모이는 날엔 아사도 만큼 만들기 편한 음식이 또 없다. 장작이 타닥타닥 들어가는 시간 동안 그 주변에 모여, 와인을 마시며 다 함께 대화를 나눈다. 오늘도 내일도 아사도를 먹는다. 이렇게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선 소고기를 질리도록 먹게 된다. 이건 한 치의 보탬이 없다. 30일 동안 어떨 때는 매일매일, 어떨 때는 3일에 한 번은 꼴로 아사도를 먹는데 10번 정도 먹은 거 같다.


처음 방문한 해에는 일주일 넘게 소고기를 먹다 보면 소고기에 질려, 샐러드를 찾곤 했다. 심지어 나는 고기를 좋아해 평소에 샐러드를 메뉴로 시키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부에노스 아이레스에만 오면 샐러드를 찾기 시작한다. 쌈장도 없고, 참기름도 없고, 간장으로 양념한 것도 아니고, 소금과 후추를 쳐 그릴로 구워낸 맛이라 한국인인 내겐 아무리 맛있는 소고기라도 삼일에 한 번꼴로 먹다 보면 물리게 된다. 올해는 아르헨티나 시댁으로의 여섯 번째 방문인지라, 나름 나만의 취향을 터득해 매일 먹어도 계속 먹을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다.


건강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난 퍽퍽한 고깃살 보다는 기름기가 있는 부위가 고소해서 잘 먹혔다. 그래서 초리소와 갈비, 그리고 유독 고소하고 쫀득하게 씹히는 맛이 있는 토싯살을 주로 많이 먹었다. 그리고 소스를 곁들이고 싶을 때면, '지미추리'를 조금 고기에 올려 함께 먹는다. 지미추리는 오레가노와 고추 가루, 양파, 마늘 그리고 올리브 오일, 식초를 섞어 만드는 양념인데 매콤하고 살짝 시큼한 맛이 난다. 매콤한 맛이 더해지면 훨씬 먹기가 수월해진다.


아사도를 하는 날이면, 그날 요리를 하는 담당한 아사도르(*아사도 담당, 그릴 앞에서 고기를 굽는 사람)는 아침부터 들뜬다. 혼자 혹은 친구들과 함께 정육점을 찾는다. 본인이 원하는 부위 중 가장 좋은 질 좋은 고기를 가져오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정육점을 찾아가 고기를 산다. 재밌는 건 각자마다 본인들이 선호하는 정육점이 있고, 심지어 모든 고기를 한곳에서 사지 않는다. 초리소는 본인이 아는 초리소 장인 집으로 찾아가 따로 구매한다. 집집마다 아사도를 하는 방식은 비슷하지만 아사도르의 능력에 따라 혹은 고기의 질에 따라 맛이 조금씩 다 다르다. 마치 와인병을 따며 와인의 맛을 코멘트하는 것처럼, 나름 고기를 평가하는 나만의 입맛이 생긴다.


아사도는 남성이 주로 요리하는 음식이다. 지난 8년간 여자 호스트가 그릴 앞에서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굽는 모습은 보지는 못했다. 불 앞에서 3시간에서 4시간 동안 요리하고, 서빙까지 아사도르가 도맡아 한다. 맛있게 먹는 손님들의 모습을 보며 뿌듯해하고, 손님들은 식사 후 맛있다고 다 같이 박수를 쳐 준다. 라틴문화의 사람들이라 감정을 표현할 때는 아낌이 없다. 박수를 받은 아사도르 얼굴에는 미소가 번진다. 집에서도 아사도를 먹지만, 레스토랑에 가서도 소고기를 먹는 게 또 아르헨티나 인들이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소고기 맛집 '돈 훌리오(DON JULIO)'를 찾았다. 이곳은 2대째 스테이크 레스토랑을 하는 레스토랑인데, 맛집으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특히 독인 전 수상인 '안젤라 메르켈'이 다녀간 후 더 유명해졌다고 한다. 레스토랑 안에는 품위 있고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흐르고, 그 안에는 거대한 그릴 위에서 소고기와 야채들이 이글이글 익어가고 있다. 이곳에서 립아이를 먹었는데, 고기는 포크의 면으로 힘을 들이지 않아도  썰릴 만큼 부드러웠다. 그에 더해 입안에 퍼지는 육즙도 환상적이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내에 위치한, 돈 훌리오 레스토랑


내가 아는 훌륭한 아사도르 중 한 명은 전편의 글에도 등장한 남편의 베스트 프랜드 뿌삐다. 뿌삐는 길거리에서 가지치기를 해서 잘려나간 무성한 나뭇가지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굵은 가지들을 보면 직접 들고 와 집으로 들고 간다. 한 번은 다른 친구들 집에 함께 방문하기로 했는데, 1미터 50센티 정도 되는 꽤 굵은 나뭇가지를 그 친구 집으로 들고 왔다. 그 모습을 본 우리는 한바탕 웃는다. '뿌비, 그렇다고 이 큰 나뭇가지를 그냥 집으로 들고 오면 어떡해.'라고 말해도 뿌삐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 나뭇가지가 얼마나 유용한데, 아사도 할 때 넣으면 맛이 차원이 다르다고.' 라며 답한다. 며칠 동안 우리는 그 나뭇가지를 가지고 뿌삐를 놀렸는데, 나뭇가지를 선물 받은 친구는 정작 바베큐를 하지 않은 탓에, 그 기다란 나뭇가지가 그들의 정원 한편에 널브러져 있었다. 며칠 후 뿌삐는 그 나뭇가지를 다시 1킬로 정도 떨어진 본인의 집으로 다시 들고 가 아사도를 할 때 사용했다.


뿌삐의 아사도  제일 기가 막힌  '초리소'. 본인이 알고 있는 초리조 장인 집에 가서 초리소만 구매해 오는데, 고기 외에도 지방과 매콤한 고춧가루가 환상적으로 섞여 매콤 짭짜름한 환상적인 소세지의 맛이다. 초리소는 집집마다 돼지고기로 만들기도 하고, 혹은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반반 섞어 만들기도 한다. 뿌삐가  오는 초리소는 돼지고기와 지방으로 만든다. 내가 방문했던 여러 집의 아사도와,  훌리오까지 통틀어, 뿌삐가 구워낸  초리소가 항상  맛이 좋았다.  초리소는 빵을 반으로 갈라 안에 넣어 먹어도 맛있는데, 이것을 초리빤이라 부른다. 뿌삐는 우리가 머무르는  달간 5번의 아사도를 만들어 주었다. 삐의 환상적인 아사도를 먹은  우리는 ' 훌리앙(DON JULIEN)'이라고 뿌삐에게  다른 별명을 부쳐주었다. 뿌삐의 본명은 '훌리앙'이다. 프랑스어로는 '줄리앙' 스페인식으로 훌리앙이라 발음한다.


초리소를 생각하다 보니, 입에 군침이 돌기 시작한다. 뿌삐가 구워낸 초리소를 먹으려면 다음번 아르헨티나를 방문하는 크리스마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아사도는 내가 아르헨티나에 갈 때 신나는 이유 중 하나다. 라틴친구들과 다 함께 정원에 둘러앉아, 장작 타는 소리를 들으며 먹는 이 아사도가 벌써 그립다.


집집마다 조금씩 다르게 생기는 빠리샤 그릴 & 이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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