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세라 Mar 28. 2017

반디와의 10년

5. 이사


5. 이사 (1)


  살다보면 잊을 수 없는 날이 있다. 시간이 지나도 그 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릿하다. 그러나 생을 통 털어 그런 날은 사실 그리 많지 않다. 대개 나쁜 일이 있으면 의도적으로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후 아무것도 아닌 일이 아니라 그 일로 인해 오래도록 아파야 한다면 그 날은 잊지 못할 날로 남는다. 

  4학년이 끝나갈 무렵 엄마아빠가 자동차 사고로 떠나던 그 날이 나에게 그렇다. 이모는 그날 이 되면 나를 데리고 성당에 간다.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이모는 손수건을 꺼냈다 넣었다 하다가 성당 언덕을 내려오면서 엄마아빠와 좋았던 추억을 자주 오래도록 기억해야 한다고 조용히 말하며 내 손을 꼭 잡는다.

나에게 그 날보다 더 잊을 수 없는 날은 없다. 아직 많이 살지 않아서 그럴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그보다 더 잊을 수 없는 일이 없어서일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덜하지만 가슴이 아릿한 기억을 하나 더 갖게 된 날이 찾아왔다. 

  행복한 가족에게 일어날 수 있는 나쁜 일은 오래전부터 파국의 전조를 알려주면서 서서히 다가왔지만 어려울수록 괜찮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이모와 피터는 내색하지 않았다. 그 일을 길고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그저 피터가 너무 좋은 사람이고 다른 사람에 대한 신뢰가 많았다는 정도로 해두고 싶다.

  피터는 엄청나게 많은 돈을 잃었다. 돈을 가져간 사람들은 다 가까운 사람들로 모두 5명이다. 이모와 피터는 그들을 미워하지 않기 위해 독수리 5형제라고 이름 붙였다.

그즈음 이모와 피터는 늦은 밤에 식탁에 앉아 계산을 자주했다. 전자계산기가 있었지만 피터는 자꾸 빈 종이에 연필로 쓰면서 계산을 했다. 피터의 손을 떨렸고 얼굴빛은 창백했으며 그럴수록 이모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다.

  이모네는 사실 가진 게 많지 않았다. 이모와 피터는 다 부모님이 돌아가셨고 이모에게는 단 하나의 언니인 나의 엄마가 있었지만 세상에 없다. 이모는 가난하게 자랐으므로 물려받은 재산 같은게 없고, 피터는 도시의 한 옆 언덕 중간에 있는 작은 이층상가를 물려받았다. 

  그곳은 도시의 탄생과 더불어 있던 오래된 상가였다. 피터는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피터의 부모님은 젊은 시절부터 돌아가실 때 까지 1층에서 양복점을 하셨고 2층에서 살았다. 늦은 나이에 피터를 낳은 두 분은 소박한 양복점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피터를 키우셨고 그 상가를 유산으로 남기고 돌아가셨다.

그러나 그곳은 도무지 상업성이라고는 없는 자리에 있었으므로 임대료는 쥐꼬리만 해도 재산목록에 들어가 세금만 꼬박고박 물고 있는 애물단지 같은 거였다. 그러나 피터에게 그 상가는 부모님의 유물이자 어린 시절의 추억이었으므로 처분하지 않았다. 

이모와 피터는 결혼하기 전까지 각자 대학 때 융자받은 학자금을 갚았으며 결혼과 동시에 제로에서 시작했다. 

  피터는 계산을 하다가 잠시 손을 멈추고 이모에게 이럴줄 알았으면 명품 가방이라도 하나 사줄걸 그랬다고 말했다. 그때 피터의 눈에 물기가 고이는 것을 본 이모는 얼른 현실적인 화제로 바꾸었다. 

이미 일은 벌어졌고 수습이 남았으며 수습은 빨리 끝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으므로 지금 살고 있는 집을 팔고 적금을 깨서 현금으로 만들어 해결하기로 결정했다. 그런 종류의 일들은 피터가 다른 사람보다 더 빨리 할 수 있으니 잘 진행 될 것이다.

  이모는 잃은 것에 대해 미련을 갖는 것은 가장 못난 짓이라고 했다. 누구나 살면서 곤경에 처할 수 있으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한데 거기엔 조건이 있다고 했다.

아무런 투쟁이나 원망을 빼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반디와의 10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