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슬픔은 마치 폭포 같았지

일간 연재

by 오혜원

꿈에서 깼다. 고요함이 깃든 새벽이 이토록 소란스러울 때가 있었던가. 전혀 믿기지 않았다. 끓어오르던 욕망이 무게를 견디지 못한 듯 보기 흉하지 않을 만큼만 흘러내렸다. 불현듯 찾아온 슬픔이 웅덩이에 들어가 한참 동안 요동을 치고 나면 투명했던 우물은 어느새 뒤섞이고 난 뒤였다. 내게 잠시라도 안도감을 가지지 말라는 듯, 미리 경고를 하는 걸까나. 도통 알 수가 없다. 그저 흩날리는 잎에 몸을 맡기고 싶을 뿐이다. 언젠가 자유로운 비행을 떠날 수 있을 것이란 막연함을 안고서.

구석 진 숲의 깊은 우물에 혼자 갇힌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함, 고독하고 애태우기만 하는 여정이 지속될 것 같다는 초조함, 계속되는 삶의 굴레에서 도망치려는 발길을 기어코 붙잡는 여러 시선들... 평생 원해왔던 것들이 내게 득이 되는 순간에도 편한 마음을 가질 수는 없었다. 그러기엔 내 것을 탐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그것을 지키기엔 내가 지닌 힘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인간들은 그럴 때마다 나약하고 자기 것 하나 지킬 줄 모르는 사람으로 취급했던 것 같다. 스스로 감당하지 못할 슬픔이 차올랐을 때쯤 눈물 같은 게 뺨을 타고 거침없이 흘러내렸지만 바로 닦아내야 했다. 억제되지 않은 슬픔이 나약함이 되는 곳, 숨겨진 치부를 알고 싶어 하는 세상, 삶을 담그는 바로 이곳이 줄곧 그래왔으니까.

어릴 적부터 슬픔을 억제하라고 배웠다. 모두에게 선행을 베푸는 동경의 인물이 되도록 말이다. 그럴수록 더더욱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되며 약해진 모습을 비추는 일은 없어야 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정한 모토가 언젠가 내게 빛이 될 거라며 위하는 듯이 말했지만 그것이 일종의 강요였다는 것을 알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면서도 몹시 짧았지만 그 시간 동안 강요로 이루어지고 억압되었던 일들이 너무나도 많다. 어쩌면 지나치게 지겹고 흘러가는 시간이 안타까울 정도였다. 그들은 내게 쉴 새 없이 말하고 또 말하고 강요했다. 차오르는 눈물도 참을 줄 아는 강한 사람이 되라고. 긴 생을 걸어오면서도 그들은 내가 원하는 말을 한 번도 해주지 않았던 것 같다. 어릴 적 그 어린아이에게 밝은 희망 하나를 걸어주지 않았던 것처럼. 겉이 화려해 강해 보이는 사람보다, 감정을 숨길 순 없을지라도 속이 단단한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해줄 순 없었을까.

뭐, 그들이 내게 그러한 억압들을 주입시켰다고 해도 그들로 인해 내 인생 모토가 바뀌었다거나, 많은 영향을 끼쳤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여전히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감정을 추스를 줄 모르는 사람이다. 하지만 늘 감정에 동요할 때마다 그때 들었던 말들이 생각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보다. 큰 슬픔이 찾아와도,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차올라도 울어서는 안 된다고 마음이 강요하는 일은.

찬란한 삶에 발 들이기 위해 더 착실히 살아야 했다. 상처가 깃든 모든 기억들을 앗아갈 모래사장의 파도를 기다렸던 것처럼. 가끔은 그날이 그립다. 우리의 적막과 슬픔까지 사랑할 수 있었던 그때가.

우리의 슬픔은 마치 폭포 같았지. 원래부터 정해져 있었다는 것처럼 익숙했고 겉잡을 엄두조차 나지 않았으니까. 냉랭한 표정으로 바라볼 때면 그것을 이해할 것들이 필요했어. 마음이 호수 같을 순 없을까 생각했지. 정해진 물결 따라 연거푸 흐르는 폭포는 우리의 마음을 지나치곤 했거든. 날밤 새며 시선을 주고받았던 밤을 모른 체할 수 있는 눈빛이 있었으니까. 배려 없는 폭포에 쏟아냈던 것들을 다시 주워 담아야 했을 때 그것보다 더 초라해지고 망가져야 했어. 아마 그날 밤은 슬픔을 경계에 정해 두진 말자고 말했던 것 같아. 검게 물든 공간을 쏟아낼 게 필요했거든.

금방이라도 얼 것 같은 깊은 웅덩이를 바라보면 그 온도를 읽을 수 있는 것들이 그리웠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슬픔을 덮어줄 무언가가 절실했어. 강물 깊이에 빠지지 않으려면, 폭포에 잠기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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