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십이월의 문턱을 넘었다. 온몸으로 맞이한 이 계절의 공기도 몹시 차가워졌다. 분명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시간이 멈춘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는데, 이렇게 금방 다가온 걸 보니 시간도, 계절도, 삶도 그 모든 게 배려가 없어 보였다. 언제나 그랬다는 걸 금세 잊게 만들 정도로 말이다.
새로운 달을 맞이했다는 이유로 또 마음만 주야장천 앞선다. 마음만은 저기 멀리 보이는 산꼭대기까지 올라가 있다. 그러면 안 되는데,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나에 대한 이놈의 기대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져만 갔다.
난 나를 바라볼 때 수없이 냉정하고 차가운 순간이 대부분이었다. 나를 감싸 안는 방법도 몰랐고, 나를 지키는 방법은 더 몰랐다. 그래서 많은 날들이 내게 다가올수록 더욱더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멀리서만 바라볼 뿐이었다. 입 밖으로 내뱉는 말은 언제나 쉬워서, 가끔은 그 시간에 머무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습관처럼 내뱉었던 것 같다. 내가 던진 그 말은 내게 많은 환상을 가져다주고 안겨다 줬다. 부풀대로 부풀어버린 이 환상들은 내게 수많은 박탈감을 건네주기도, 잠깐의 회의감을 만들어주기도 했었지만, 그것마저 없었더라면 난 이 세상을 살아가기가 지금보다 더 겁이 났을지도 모른다.
내가 지나온 날들을 기록하고 차곡차곡 쌓아갈수록 난 나를 더 미워했다. 별일 아닌 일에 눈물을 흘리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 상처를 받고, 상처 받은 모습을 숨기지도 못하고, 그로 인해 사람에 대한 적대심만 늘어가던 내가 너무 나약해 보여서. 나를 안아주는 법도, 지키는 법도 몰랐던 나는 이런 일이 늘 허다했다. 그래서 누군가가 건네주던 따뜻한 말 하나에도 쉽게 반응하고, 더 쉽게 마음을 건네줬던 것 같다. 어느덧 한순간에 나를 증오하고 의심하고 불쌍하게 생각했다. 나의 삶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실은 매일매일이 나락 같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온전하지 않은 삶에 온전한 내가 존재할 리가 없었다. 삶이 평탄할 때도 있어야 하는데, 그냥 좀 버틸 만큼만 살게 해 달라는데, 그것조차도 잘 안됐다. 난 끊임없이 나를 의심했고 나라는 사람을 믿지 못했으니까. 그래도 가끔은 생각한다. 그래도, 그럼에도 내가 지금 여기서 버티고 있다는 건 조금이라도 나를 안아주고 싶단 의미가 아니었을까, 하고. 여태껏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나를 인정하고 감싸주던 적이 없었던 나였지만, 가끔은 내가 너무나 가엾고 안타깝고 그런 나에게 늘 미안해했을지도 모르겠다.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혹은 다가온 현재를 두려워하는 것도 어쩌면 내가 살아가는 삶의 일부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그때보다 편했다. 더 이상 나를 편협한 모습으로 보지 않아도 되니까. 그때보다 조금은 너그러워져도 되니까. 한 번쯤은 내게 관대해질 필요도 있으니까.
어쩌면 나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미워했을 때 내게 가장 필요했던 건, 나를 믿는 용기였을지도 모른다. 삶이 회의하고 까마득할 때 잘하고 있다고, 잘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적절한 용기. 그러한 용기를 보태어주는 것. 어쩌면 그거야말로 가장 필요했던 위로가 아니었을까.
앞으로도 살아갈 나의 삶이 또 한 번 나락으로 떨어질지라도 나는 내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리의 삶에 또 다른 용기를 보태어주고 싶다. 충분히 잘 해왔고, 여전히 잘하고 있으니까 결코 그 사실을 의심하지 않길 바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