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연재
“나도 무언가를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고 싶어.”
친구는 빈 컵을 만지작거리며 쓸쓸한 눈빛으로 말한다. 무언가를 드러내지 않는 사람? 그게 뭘까 생각하다 불현듯 지난날의 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느 봄날의 난 무척이나 자기감정에 솔직한 사람이었다. 적절하지도 않고, 보통이라 할 수도 없는… 모든 표정과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사람. 그런 점들이 오히려 내게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던 것 같다. 나에게 솔직할 수 있다는 게, 어쩌면 나에게나, 우리에게나 좋은 거라고 생각했을 테지. 이제는 그 표현이 남들에게 약점으로 잡힐 수 있다는 것을 알아버렸지만.
내가 모두에게 너무나 솔직하게 대했을 땐, 아마 그 말을 가장 많이 들어왔지 않을까 싶다.
“넌 아무리 봐도 너무 냉정한 사람 같아.”
난 그 말이 아직까지도 생생히 기억난다. 냉정하다는 기준이 어떤 것이었는진 잘 모르겠지만, 아마 그들에게는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하는 모습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곤 그가 툭 던진 말 한마디에 며칠을 사로잡혀있었다. 내가 취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그 문장이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이렇게 행동해도 날 냉정하다 생각하겠지? 혹시 지금도? 지금도 그렇겠지?
솔직한 게 좋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엔 그게 독이 되기도 했다. 내 성격이기도 했었지만 누군가는 그런 내 모습이 차갑게 느껴졌을 테고, 멀게만 느껴졌을 테니까. 아마 그 이후로 점점 더 나를 숨겨왔던 것 같다. 혹여나 또 그런 말을 듣게 될까 봐, 사로잡히게 될까 봐 내내 마음 졸이면서.
그렇게 언젠가부터 나를 속여왔다. 싫다고 말하는 것보단, 차라리 좋다고 말하는 게 더 평온할 수 있을 거라고, 나를 그들이 더 좋아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떤 이가 그런 내 모습을 보고 꽤 괜찮은 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 참 많이도 노력해왔다는 것이 눈에 보일 만큼. 애쓰고, 또 애쓰면서 나를 매일매일 속여왔다.
결국 내게 돌아온 건 아무 말도 못 하게 생겼을 거란 답이었다. 열심히 애써 나를 바꿔놨더니 이제는 그게 약점이 됐다. 누군가에게 주장도 못 내밀고 대답만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것도 정말 한순간에.
봄날의 나는, 너무 냉정하고 차가운 사람 같다며 미움받았다. 그저 싫은 건 싫다고, 아닌 건 아니라고 솔직하게 표현했을 뿐이었는데. 그들이 정한 기준은 지금도 참 이상해 보였다.
시간이 흘러 맞이했던 가을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내성적인 아이처럼 보인다고 했다. 나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쓰고 또 애쓰며 여기까지 온 것뿐이었는데. 오히려 나를 더 작아지게 만들었다.
쓸쓸한 눈빛으로 빈 컵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던 친구의 말을 기억한다. 그런 그에게 이 말을 꼭 전해주려 한다.
나도 무언가를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 어쩌면 그게 너무나 간절했었어.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알겠더라. 그 사람들의 말에 내가 얼마나 많이 휘둘려왔었는지. 그들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유난히도 애써왔지만 결국 더 외로워질 뿐이었어. 혹시 아직도 네가 헤매고 있다면, 중간 정도만 해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 드러낼 때는 드러낼 줄도 아는 사람, 숨길 때는 숨길 줄도 아는 사람. 그럼에도 네가 원한다면 딱 그 중간만 하라고 정말 말해주고 싶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