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해보면 두 번은 쉬워진다

일간 연재

by 오혜원

내게도 쿨하지 못한 순간이 있었나? 함부로 시도하기 어려웠던 순간이 있었나? 천장을 바라보며 한참을 생각해보니 두리뭉실 몇 가지씩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러곤 여차여차 숨겨두기에 바빴던 기억을 끄집어낸다. 그때는 무척 기분 나빴지만 그럼에도 넘어갈 수밖에 없었던 일들,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들, 해보지 않아서 망설였던 일들. 쿨하고 싶었지만 막상 그러지 못해서 마음 졸였던 일들. 그 순간이 내게 다가온다면 난 분명 피해 갈 수 있을 거라고 장담했지만, 막상 내게 다가오니 짊어져야 할 무게가 큰 것들 뿐이었음을, 나라고 마냥 피해 갈 수 없었음을.


배가 불러 못 먹고 남겨진 반찬을 억지로 다시 먹은 것, 상대가 툭 던진 말에 기분 나빴지만 제대로 표현할 줄 모른 것, 자기 땅도 아닌데 자기 땅이라 우기며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던 아줌마에게 멋쩍은 듯 그냥 웃어버린 것, 잘못된 일이 아닌데도 나 스스로를 굴레에 가둬버린 것, 아닌 것에 아니라고 말할 줄 모른 것, 갑과 을 관계에 을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부정하기만 한 것, 사랑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 사람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 생각했던 것... 여기서 더 끄적인다면 아마 이것들보다 더 많은 기억들이 나열될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때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더 나은 상황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우리에게 더 나은 순간을 안겨주는 것이 침묵일 것이라고. 서로에게 부딪히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것이, 스스로 알아서 잘 판단을 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생각했으리라.


음식 앞에서도 쿨하지 못했던 나에게 혜경은 말한다.
“다 못 먹으면 남겨도 돼.
굳이 그럴 필요 없어. 그냥 쿨해져 버려”

그 이후 함부로 시도하기 애매했던 순간들을 종종 떠올렸다. 머릿속에 훅 들어왔던 혜경의 말을 내내 기억하면서, ‘그래도’에서 ‘그래’라고 답할 수 있을 때까지. 한 번 옳다고 생각했던 일은 꼭 그러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고 바꿔놓기엔 많은 힘을 필요로 할 것 같았다. 쉽게 바꿀 수 있는 거였다면 진작에 시도하고도 남지 않았을까 하는 오만한 감정을 가지고서. 헛웃음을 치며 안타깝게 바라본다. 시도하는 것조차 망설여져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당시 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일까.

상황을 용납할 수 없다면 그에 대한 반발을 내미는 것도 필요했다. 정말 친한 친구지만 도를 넘는 장난을 했다거나, 근거가 없는 의견을 주장하며 고집만 부리는 사람들이 있다거나, 내가 떠날 수도 있다는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거나. 아니라고 말하는 것을 늘 망설이던 나였지만 이제는 시도라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막상 해보면 이것도 별거 아니었구나, 내가 괜히 망설였던 거구나 라는 생각이 곁에 가득 채워질 만큼. 도전한 만큼의 성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마주한 결과에 쿨해지는 마음을 먹을 때까지 열심히. 그중 아직도 시도하지 못한 일이 있다면, 그들에게 내가 언젠가라도 떠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지 못한 것. 곁에 머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아 달라고 얘기하지 못한 것. 아직까진 준비 상태에 맴돌고 있지만 늦더라도 언젠가 이 목소리를 꼭 전하고 싶다.


순간을 지나 다시 그려내 보니 그때 결정했던 결과와는 많이 달라졌다. 그때의 내가 정말 최선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지, 그냥 그럴 거라고 믿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

우리는 사람에 쿨해지는 것보다, 상황에 쿨해지는 것이 필요하다. 그럴 수 있는 날이 오도록 많이 경험하고 시도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저 기다리기보다, 먼저 실천해 나아가는 사람이 되도록. 누군가의 도전에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무거운 감정에도 많이 흔들리지 않도록. 사람보단 상황에 쿨해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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