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발걸음

일간 연재

by 오혜원

시간의 문턱에서 쫓기며 살아왔던 이천십구 년의 날들도 어느덧 끝이 났다. 새해의 설렘 대신, 앞으로의 날들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가득 안고 맞이했지만 난 여전히 순간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갈구하는 것처럼 보였다. 한 해가 바뀐 것처럼 내게 존재하는 또 다른 무언가도 바뀌어 있길, 그럼에도 달라져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작은 육체에서 툭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 마음과는 달리 나태해진 내가 존재했다. 쉬고 있음에도 더 쉬고 싶어 했고 해야 할 일을 충분히 알면서도 함부로 손대지 못했다. 어쩌면 반복되는 일상에서 많이 지쳤던 것이, 도망가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이가 더 늘어날수록 무언가를 이루고, 꽉 붙잡은 것은 놓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이 더 커졌다. 이루지 못할 수도 혹은 놓아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랬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결국 나를 믿지 못해서였다. 무언가를 얻고 시도하기 위해서는 나를 향한 믿음이 그만큼 필요했는데, 내겐 그마저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남들이 달릴 때 똑같이 달려야 했다.

남들 다 달려가는데 너 혼자 걸을 시간이 어디 있어? 너도 달려야지, 너도 그래야지.

이렇듯 나를 옥죄이는 말들에 내내 쫓기며 살아야 했다. 오직 그 말만을 떠올리며 앞서 달리는 그들을 따라야 했던 지난 어느 날의 나였다. 쉬지 않고 달려왔던 내게 돌아온 것은 그것에 대한 보상이 아닌 허무함이었다. 남들이 다 그러니까 나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겠노라 다짐했던 것에 대한 허무함.


모든 것을 다 얻었노라 생각했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은 겉보기에만 충족할 수 있는 것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조차도 만족할 수 없었던 길고도 긴 이 릴레이는 여기서 잠시 멈췄다. 이것은 결코 나를 위한 릴레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다시 뛰기보단 천천히 걸었다. 남들의 발걸음에 맞춰 달리라던 그들의 채찍 대신, 그 발걸음은 스스로 만들어 갈 수도, 때로는 멈출 수도, 쉬어갈 수도 있는 것이라는 당근을 쥐여주면서. 오랫동안 나를 자책하고, 나를 향한 당근보다 채찍을 주기 바빴던 어느 날의 나와 화해하면서.


비로소 그 순간부터 아직 덜 공들여진 나의 길이 보였다. 수많은 발걸음을 따라가면서 만들어졌던 길들은 대충 따라 하며 만든 허술한 길이 존재했고 그것을 언젠가 다듬어주길 내내 기다리고 있었다. 돌고 돌아 마주했던 그 길은 이제 와 보니 공허하고 허술한 점들이 한두 개가 아닌 듯했다. 공들인 것과, 대충 비슷하게 만들어 공들인 척을 하는 것은 언젠가라도 티가 나게 되어 있다. 처음으로 돌아봤던 길이 꼭 그러했지만 후회는 안 했다. 그럴 수도 있고, 이제라도 알았으면 된 거니까.

사람에겐 그게 언제든 잠시 쉬어가도 되는 순간쯤은 존재하는데, 어쩌면 우린 그것마저 모른 척하며 덮어버린 채 살아온 것이 아니었을까.


올해는 조금 덜 수고해도 괜찮은, 그래도 더 살고 싶은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올해의 우리는 서로를 위하고 사랑하면서, 많이 얻고 때로는 스치기도 하면서, 누군가의 발걸음에 맞춰 걷기보다 나를 위한 발걸음을 만들기도 하면서 그렇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우린 아마 각자의 방법으로 앞으로의 살 길을 찾아 떠나겠지만 수많은 발자취를 걷고 또 걸어갈 우리에게 이 말들이 큰 울림이 되었으면 한다.


내가 보낸 그 일 년은 꽤 길고도 짧게만 느껴졌었어. 머물기엔 너무 버거웠고, 그대로 보내버리기엔 먹먹해졌달까. 한 번 용기 내고, 또 한 번 다가서는 게 두렵고 무서웠던 것 같아. 하염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뒤쫓기듯 살아가다 보니 어느덧 또 한 해가 바뀌었지만 말이야. 길고도 짧았던 그 일 년 동안 나라는 사람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것에 퍽 아쉬워지기도 했어. 그래도 이왕이면 새롭게 시작된 올해는 나라는 사람을 꼭 기억하고 안아줄 수 있는 해가 되길 바라. 그런 우리가 되길 간절히 기도해. 때로는 삶의 무게에 나라는 존재가 감춰지는 순간이 많으니까.

난 앞으로도 우리가 걸어가는 길을, 삶을, 다가오는 날들을 수없이 응원할 거야. 우리의 이름과 그 존재를 떠올리며 세상에 끝없이 외치면서 내내 기억할 거야. 왠지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이 말을 해주고 싶었던 것 같아. 이 사실을 잊지 말고, 그런 너를 외롭게 혼자 두지 말라고. 서로를 사랑하면서 살자. 기억하면서 살아보자. 내가 바라는 건 그게 다야.

작가의 이전글나의 시선이 겨울로 향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