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선이 겨울로 향할 때

일간 연재

by 오혜원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다. 몸 앞에 멈춰 서는 버스에 힘차게 올라타곤, 승차 카드를 찍는 것조차 까먹어버릴 정도였다.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버스 단말장치에 카드를 갖다 댔지만, 속으로는 힐끔대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의식하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여전한 나의 모습에 무척 허탈하기만 하던 어느 겨울의 오후였다.

도로 공사를 한 지 오래된 길가에 발걸음을 옮기던 찰나, 사계절이 뚜렷해서 다행인 이유를 새삼 느껴볼 수 있었다. 계절마다 다른 각각의 풍경과 공기를 느껴볼 수 있는 이유에서였겠지. 그때, 우연히 눈에 들어온 한 나무가 나의 발길을 붙잡는다.

단풍잎이 다 떨어져 버리고 앙상한 가지만 남겨진 나무들 사이, 홀연히 그 자리를 유유히 지키며 빛깔을 드러내는 단 한 그루의 단풍나무. 서늘한 날씨와 안개로 뒤덮인 하늘 덕에 더 눈길을 끌었지만, 찬란하던 풍경 사이로 홀로 남은 나무가 금세 안쓰러워진다.

돌연히 그런 생각이 난다. 잠깐 지나간 이 거리의 나무들 모두가 빛깔에 물들어 있었다면, 과연 난 내가 본 이 한 그루의 나무가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

아마 그건 어려울 거라고, 주연이 되긴 힘들 거라고 넌지시 말을 건넸겠지.

그럼에도 쉬이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던 이유는 단지 부러워서였다. 가을의 흔적을 벗어버리고 맨몸으로 남겨진 여러 나무들과 달리, 시간은 조금 걸릴지라도 꿋꿋이 그 자리를 지켜내는 모습이 부러웠던 거였다. 그 역시, 가을과 겨울 사이에서 수없이 갈망했겠지만.

모든 부분이 부러웠던 것은 아니었지만, 아마 잠깐의 일부를 잠시나마 닮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어쩌면 그것을 향한 절실한 마음이 뚫고 들어오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어느새 이 쌀쌀한 공기를 품에 끌어안아야 할 날씨가 되어버렸고, 그럼에도 이번 겨울이 조금 더 애틋하고, 다정하길 원했다. 그토록 바라 왔던 간절한 마음들이 계절 언저리에 닿기를 바라고 있었다.

영원히 소중할 사람 나의 단이는 오직 겨울에만 드러나는 마른 가지가, 겨울만이 데리고 있을 수 있는 크리스마스가, 때때로 불어오는 칼바람이 좋다고 했다. 오직 겨울만이 가지고 있는 요소들이 애틋하다고 했다. 단과 잠깐의 대화를 오가면서 눈 내리는 풍경을 함께 볼 수 있다면 정말 사랑스러울 거라고 생각했다. 시내를 함께 거닐다 어두운 밤하늘에서 쏟아지던 우박을 새하얀 눈으로 착각했어도 그 순간을 함께 보내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던 그날의 겨울밤을 떠올리면서.

시간이 흘러 눈송이가 안개 사이에 돋보일 때쯤이면 너도 알게 될 거야. 네가 겨울에 존재하는 사소한 것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겨울도 그런 너를 좋아하고 또 사랑했다는 것을.

나도 언젠가는 사소한 것들을 품에 끌어안을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정말 언젠가는, 그러한 것들을 지켜낼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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