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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ra Seed Mar 05. 2022

꿈이 뭐냐고

묻지 마세요

2022년 3월 4일 금요일,

수업이 끝나고 Y와 함께 칼빈 광장 근처에 위치한 버거집에서 점심을 먹고 아스토리아에 있는 학교로 돌아왔다. 매주 한번 지도교수 T와 한국어 언어교환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T는 학교에서 아시아 영화를 주로 담당하고 있고 특히 한국 영화는 그중에서도 그녀가 가장 애정 하는 분야이다. 한국어를 배운 지 10년 차, 서울대에서 한국어 학당도 다니고 지금도 학교에 설립된 세종 학당에서 일주일에 두 번씩 한국어 강의를 듣는 그녀의 소원은 대학을 퇴직하기 전에 한국 영화를 자막 없이 보는 것이다.


T의 사무실은 아스토리아 대로변에 위치한 엘테의 인문대학 메인 빌딩 지하에 위치해 있다. 수 백 년이 넘은 어두컴컴한 건물의 'ㅁ'자 홀을 3분의 2 정도 지나면 T의 사무실이 나온다. 문을 열면 5평이 채 안 되는 좁은 방에 책상 4개가 벽을 향해 위치해 있고 입구에는 아주 조그마한 커피 테이블과 의자가 있다. 이곳은 영화과 교수 4명이 함께 쓰는 사무실이다. 한국처럼 교수 연구실이 지상에 단독으로 있는 사람은 학과의 대장인 안드라스 코바치 교수뿐이다.

작은 커피 테이블에 옹기종기 앉아 한국어로 대화를 시작했다. T는 이번 학기 세종 학당의 한국어 교재를 꺼내어 첫 번째 챕터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고 했다.




제1장 진로




책을 보자마자, 진로? 소주 생각이 먼저 났다. 소주도 못 마시는 주제에. 그렇게 나에게 '진로'라는 단어는 낯설었고 오랜만이었다. Y가 먼저 교재에 있는 예문을 보고 T에게 물어봤다.


"교수님, 교수님은 어릴 적에 꿈이 뭐였어요?"


"저는 필름 크리틱, How do I say "Film Critic"?"


"아, 영화 비. 평. 가, 영화 평. 론. 가."


친절한 Y가 또박또박 한 글자 한 글자 크게 소리 내어 서너 번을 반복해서 말하는데 T의 발음이 여전히 불안정하다. "평"을 발음하지 못해 한참을 애먹다가 결국 Y가 윗입술과 아랫입술 사이로 바람을 잔뜩 넣어 "파~~~~"라고 한 뒤에 T는 딱 한번 '평'발음에 성공했다. 한쪽에서 그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속으로 T는 어릴 적 꿈을 이루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제 T가 물어볼 차례다.


"Y 씨, Y 씨는 어릴 적에 꿈이 뭐였어요?"


Y가 당황한다. Y도 나도 빈말은 못하는 성격이라서 그냥 대충 말하고 넘어가지 못한다.


"음. 어....... 꿈이.... 어...... 별로 없었는데. 음....... 아니면 아주 많기도 했어요. 의사도 하고 싶었다가 선생님도 하고 싶었다가 아티스트도 되고 싶었다가 큐레이터도 되고 싶었고.... 잘 모르겠어요."


"오!"라는 짧은 감탄사를 내뱉으며 T가 신기하다는 듯 Y 처다 본다.


"그럼 지금은 꿈이 뭐예요?"


이번 학기 졸업을 앞둔 Y에게 이 질문은 적당해 보이지 않았다. 물론 우리는 한국에 교재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따라간 것뿐이지만 참으로 시기적절하지 않은 첫 챕터였다. Y의 눈빛이 또 흔들린다.


"음..... 그냥 혼자 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요.... 아, 영화이론을 전공했으니 영화 쪽에서도 일은 해보고 싶기는 한데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면 좋겠어요. 잘 모르겠어요."


또 한 번 T의 얼굴에 물음표가 새겨진다. 이해를 못 하는 눈치다. 꿈이 뭐야? 그러면 대학 교수요, 의사요, 변호사요, 이렇게 답이 나와야 하는데 Y의 답변을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아다. 그런 표정을 읽은 Y가 말한다.


"교수님, 요즘 한국에서는요. 꿈이 없는 사람이 많아요. 우리 이번 학기에 임순례 감독 리틀 포레스트 공부할 거잖아요. 거기에서 나오는 여자 주인공이 선생님 되려고 임용고시 준비하잖아요. 그렇다고 그 여자 주인공 꿈이 선생님은 아니에요. 직업이 안정적이니까 하는 거지 그게 꿈은 아니에요."


이해하지 못한 T가 이번에는 나에게 물어본다.


"K 씨는 어릴 적에 꿈이 뭐였어요?"


"큐레이터요."


내 대답에 T의 얼굴에 물음표가 더 짓게 더 크게 그려진다. 그녀는 내가 한국 미술계에서 오랜 기간 큐레이터로 일한 것을 알고 있는 터고, 당신처럼 꿈을 이루었는데 그곳을 왜 떠났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다음 질문을 한다.


"그럼 지금은 꿈이 뭐예요?"


올 것이 왔구나. 아, 진짜 어려운 질문이다. 그래도 성의껏 대답을 해줘야 지하는 마음에 말했다.


" 전 평화롭게 살고 싶어요. 마음이 조용하게 고요하게 평화롭게요. 그리고 저는 글을 쓸 때 마음이 제일 편안해요. 안전하다고 느껴요. 글을 쓸 때만큼은 불안하지 않고 내가 안전한 곳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글을 쓰면서 살고 싶어요."


"오! 어떤 글을 쓰고 싶어요? 소설?"


"아, 특별히 소설가가 되겠다. 비평가가 되겠다 그런 건 아니고요. 그냥 글을 쓰고 싶어요. 미술에 관한 글도 쓰고 싶고, 소설도 쓰고 싶고, 제 일상을 담은 에세이도 쓰고 싶고요."


"계획이 있어요? 책을 출판할 계획이 있어요?"


"계.... 획.... 이요?.... 없는데요... 그냥 쓰는데요...."


우리의 대화는 이렇게 한 시간 동안 엄한 곳을 헤매다가 T가 도저히 이해 못 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던진 한마디에 종료되었다.


" I don't understand what you are saying. I feel always safe. I can not live under stress."


오해할 건 없다. 그냥 이건 T의 삶이 그렇다는 거니까. 빈농의 집안에서 태어나 명석한 두뇌 하나로 헝가리 최고 대학의 교수로 임용된 그녀. 철저하게 자신의 삶을 사는 그녀는 그래서 독신이다. 누구를 돌보거나 관계를 맺는 것보다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사는 것이 그녀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함으로 그녀는 아마 나의 삶을 그리고 Y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런데 꼭 서로를 이해할 필요는 없다. 그냥 다른 것뿐이니까. 이렇게 유럽에서는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데 전혀 거리낌 없다. 서로 다른 의견이 있는 것을 전혀 불편해하지 않고 말한다. 집으로 오는 길에 우리 셋은 또 낄낄거리며 다들 저녁으로는 무엇을 먹을 것인지 수다를 떨면서 화기애애하게 헤어졌다.


그런데, 집으로 오늘 길 내내 내 머릿속에 "꿈이 뭐예요?" 하는 질문이 떠나질 않았다. 왜 꿈이 꼭 직업이 되어야 하는 건지 나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꿈과 직업이 도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꿈'이란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그 환상적인, 유토피아적인 뉘앙스가 내 현실의 욕망을 투여하는 직업으로 대체되었을 때 더 이상 그것은 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변호사가 꿈이었던 젊은이 가 변호사가 되어 만나는 세상이 유토피아라고 생각하는가? 아직도 그렇게 순진하게 생각하고 있는가?


요즘 많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꿈이 없다고, 예전처럼 열심히 무언가를 쟁취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고 다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발 무엇이 되라고, 그들을 벼랑으로 몰아세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이 '무엇이' 될 필요가 왜 있을까? 이미 그들은 그들의 존재 자체로 무엇인 것임을. 내가 생각하는 직업을 선택하는 기준은 이러하다.


첫째, 가능한 자신이 성취감을 느끼는 혹은 좋은 하는 일이었으면 한다. 왜냐, 생각보다 많은 시간 그 일을 하며 지내야 하기 때문에 개인의 성향 혹은 취향과 직업이 일치된다면 그 보다 좋은 일은 없기 때문이다. 둘째, 내가 하는 일이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이어서는 안 된다. 예를 들면, 온갖 불법적인 일들... 남의 속이고 사기 치는 일에 본인이 성취감을 느낀다고 해서 그것을 직업으로 삼으면 안 될 것이고, 또 아무리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라도 금전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의존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면 이 역시 성인인 당신이 부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이니 삼가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하는 일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일이면 그것은 좋은 직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나에게 꿈이란, 직업이 아니다. 삶의 방향이다. 내 삶을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가치관. 그래서 나의 꿈은 평화로운 삶은 사는 것이다. 조용히,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글로 세상과 소통하고 혹여 누군가 내 글을 읽고 그의 삶이 풍족해졌다면 나는 내 꿈에 한 발짝 더 접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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