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 딸린 서재 방에서 소파 베드를 조립하느냐 J는 바쁘다. 집안 곳곳을 둘러보며 청소를 하다가 힘이 들어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멀뚱멀뚱 창밖을 바라보니 하늘에 뭉게구름이 어디론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음악 들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안드레 가뇽의 조용한 나날들을 틀었다.
2019년 가을, 열흘 정도 J와 함께 부다페스트에 여행을 왔을 때 혼자 창밖을 바라보면서 들었던 곡이다. 이른 아침, 해가 뜨고 나서 바라보는 부다페스트 시내의 모습은 차분하고 아름다웠고 이 곡과 함께라면 왠지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그 시절 나에게 여행은 도피처였다. 일에서 도망칠 수 있는, 일 생각을 일 초도 생각하지 않을 아주 좋은 핑계를 주는 것이 여행이었다. 4년 전 그렇게 도망치듯 떠나와서, 머물렀던 곳이 바로 여기 부다페스트였는데 이제는 이곳이 일상이 되었다니....
가만히 생각해 보면, 4년 전에는 이곳에 이주해서 사는 것이 꿈만 같고 어려운 아주 먼 미래의 일 같았었는데.... 지금 이렇게 이곳에 와 있는 것을 보니, 4년 전에 생각했던 것만큼 어렵지는 않았다.
삶을 잘 디자인해서 디자인 초안대로 움직였다. 물론 많은 수정을 거쳐, 이곳에 왔다. 그리고 4년 전 꿈에 그리던 내 공간을 만들고 있는 일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내 인생에 나를 위해 이렇게 열심인 적이 있었던가?라고 생각하니 이사를 하면서 겪은 답답함과 힘듦이 조금은 나아지는 것 같다.
학교 때문에, 언어 때문에, 시스템 때문에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이사는 거북이처럼 느리게 진행 중이었다.
6월부터 본격적으로 이사 준비를 했고 7월 말인 당시 반 정도 이사를 마친 상태이다. 한국에서였으면 일주일이면 이사 다 끝낼 일을. 여기서 몇 달째 진행 중이다. 매우 자주 속이 터질 듯 답답하지만, 결국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기에 기다리고 또 기다려서 일을 처리한다.
유럽의 클래식한 건물의 탑층에 위치한 우리 집은 복층 구조이며 침실과 내 방이 있는 2층은 다락 형식으로 되어있다. 한국에서는 잘 찾아볼 수 없는 구조여서 처음에는 가구를 어떻게 배치해야 하나 고민했다. 사선으로 되어 있는 벽면에 어떤 가구를 놓아야 하지?
다행히 유럽에서는 흔한 구조여서 이케아에 해당 서비스가 있었다. 집 도면을 보내면 이케아 디자이너와 만나서 3D로 어떤 가구를 놓을지 결정하면 되는 홈 퍼니싱 디자인 서비스였다. 서비스 설명만 보면 아주 간단하고 빠르게 진행될 것 같으나, 이 서비스를 통해 가구를 구입하는 것에만 1달 반이 걸렸다.
집에 맞는 가구를 사기 위해 이케아 홈 퍼니싱 디자인 미팅을 잡는 것부터 시작해서, 미팅을 하고 디자이너가 초안을 줄 때까지 2주를 기다려야 한다. 검토를 하고 두 번째 미팅에서 수정사항들을 말하고 나면 또 2주 후에 이케아 디자이너로부터 최종 시안이 온다. 그 최종 시안에 사야 하는 쇼핑 리스트가 들어있고 그걸 또 꼼꼼히 확인하고(누락되거나 잘못 기재된 것들이 백 프로 존재함으로) 드디어 쇼핑을 하러 간다.
결제를 하고 배송을 받는데 또 일주일을 기다려야 했고, 조립 서비스는 제품을 받을 후 또 2~3일을 기다렸어야 했다. 40도가 넘는 폭염이 유럽 대륙을 덮쳤을 때 헝가리도 예외는 아니었고, 조립 서비스를 받기로 한 날.... 그날도 무척이나 더웠다.
오전 8시에 온다고 해서, 전날 아무것도 없는 집에서 매트리스만 깔고 불편하게 잠을 청했다. 그러나 하루 종일 기다려도 이케아에서는 그 누구도 오지 않았다.
예상했던 대로 고객센터와의 통화연결은 매우 힘들었다. 삼십여분을 기다린 결과 불만 접수가 되었고, 곧 사태를 파악하고 연락을 줄 테니 기다리라고 한다. 이렇게 다섯 번쯤 되풀이됐다.
도돌 임표 전술.
해당 컴플레인을 계속 다른 담당자가 새 건인 것 처리하며, 일을 해결하지 않기 위한 돌려막기 전술.
여섯 번째에는 기다리지 않고, 싸웠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나는 총 5번의 통화 녹음본과 각 담당자 명을 지금 당장 이메일로 보내라고 소리쳤다. 그랬더니, 이제야 실토를 한다. 조립 서비스가 누락되었다고, 미안하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