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Nora Seed
Apr 11. 2024
남의 나라, 살기 참 힘들다
헝가리의 악명 높은 이민국 행정
오전에 갑작스레 이민국에서 이메일을 받고 헐레벌떡 집 근처 이민국에 다녀오니 오후 3시.
집에 와서 한숨 돌리고 책상에 다시 않으니
'남의 나라, 참 살기 힘들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러니까, 이번에 신청한 거주증은 내가 헝가리에 머물면서 3번째 하는 신청이다.
2021년 여름 처음 왔을 때는 '엔터헝가리'라는 이민국 앱이 없어서 온라인으로는 신청이 안 됐다. 직접 이민국에 갔어야 했다..... 뙤약볕에 8시간을 기다리고 간신히 서류를 접수하고 오곤 했다. 그리고 누락한 서류가 있으면 또 직접 가서 내야 했고... 마지막에 생체검사를 하려 또 가야 헸다. 이때는 예약을 하고 가도 소용이 없었다. 예약 문서를 보여줘도 무조건 기다려라 하는 대답만 왔을 뿐이었다.
그런데 2023년부터 '엔터헝가리'앱이 생겨 온라인으로 서류를 미리 다 신청하고, 모든 것이 잘 제출되었다는 확인 이메일이 오면 이민국에 직접 가서 생체 검사만 받으면 끝이다. 예약시스템도 있어 예약하고 가면 30분 정도 기다리고 일을 볼 수 있다.
지난 21일 거주증 갱신을 위해서 헝가리 이민국에 관련 서류를 다 제출하고 이민국에 가서 생체 검사까지 다 하고 담당자가 '이제 집에서 기다리면 거주증을 받을 것이다'는 확답을 받고 돌아왔는데 웬 이메일?
이민국에서 보낸 이메일에는 거주증을 위해 2가지 서류를 추가로 제출해야 한다고 쓰여 있었다.
하나는 건강보험증서
두 번째는 아무리 번역기를 돌려봐도 알 수 없는 희귀한 말....
번역기를 돌려보니 "당국에서 요청하지 않은 서류, 당신이 요청하지 않은 서류를 추가로 등록"이라고 나온다.
보자마자 속이 확 뒤집에 지면서
"이게 말이야 똥이야.... 아, 정말. 뭐라는 거야. 내라는 서류는 다 냈는데 뭘 또 내라는 거야..."
다시 꼼꼼히 봤다.
먼저, 건강 보험 증서는 정확하게 쓰여 있었으므로 문제가 없었다. 근데 여태껏 은행 잔액 증명으로 대체되었던 건강보험이 왜 이번에는 갑자기 거부되고 건강 보험 증서를 내라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내라니까 가입하고 내면 된다. 문제없다.
그런데 두 번째 문서를 저렇게 써놓으니 알 길이 없다.
헝가리 당국이 요청한 문서도 아니고, 내가 요청하지도 않는 서류라는 게 진짜 뭔 수수께끼인지...
이런 법적 문서에 해당하는 것은 헝가리 지인한테 물어봐도 소용이 없다.
혹여 그들이 잘못 말해서 서류를 잘못 제출했다가 내가 헝가리를 쫓겨나는 봉변을 당할 수 있으니..
이민국에 가서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 없다. 당일 예약은 불가능. 그냥 빨리 가는 수밖에....
한국처럼, 이메일을 보내거나 전화를 하면 어떠냐고요?
호호호
죽을 때까지 답신 안 옵니다. 제 경험으로는.
짜증을 부여잡고 헝가리 이민국으로 갔다.
영업시간이 오후 2시까지 인지라... 최대한 빨리 갔다.
가서 줄 서고 뭐 하고 하면 시간이 휘리릭 가니.. 정신없이 이민국으로 갔다.
그렇게 헐레벌떡 이민국에 도착하자마자
"Do not enter without Passport"
shit! shit! shit!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 진짜...."
까먹고 여권을 두고 왔다. 망했다. 일단 줄은 섰는데.... 짜증이 또 부글부글
집에 있는 남편에게 연락을 해서 여권을 안 가지고 왔다고...
구글 드라이브에 있는 여권 카피로 우겨보겠다고...
문제 없으거라고는 했지만
줄을 서있는데 여전히 불안했다.
아, 내가 바보도 아니고
이민국 오는데 여권을 놓고 오다니...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했지....? 자책에 자책이 밀려오고.
또다시 이민국 관련 나쁜 기억이 추가되나....
여길 내일 또다시 와야 하나.
한 줄, 이 한 줄의 헝가리어 때문에?????
내 맘을 알았는지,
남편에게 문자가 왔다.
"지금 여권 가지고 가고 있어. 딱 2시에 도착할 것 같아. 조금만 기다려."
힝... 미안해라. 다행히 오늘 수업이 3시 30분에 시작하는지라, 남편이 여권을 전해주고 학교에 가기로 했다.
이민국과 학교는 정 반대에 있는데...ㅜㅜ
40분 줄을 서고,
번호표를 나누어 주는 안내 데스크 차례가 거의 다 왔는데... 남편은 아직이다.
"휴...."
안내 데스크에서 "다음~~~"하고 외치며 나를 부른다.
순간 "에라 모르겠다. 여권 얘기 꺼내기 전에 가서 우다다다다 내가 하고 싶은 말먼저 해서 정신을 쏙 빼놓아야지!!"
데스크에 서자마자,
"안녕. 나 오늘 아침에 너희가 보낸 메일을 이렇게 받았어. 근데 두 번째 서류 도대체 뭘 내라는 건지 나는 할 수가 없어. 내가 구글 번역기도 돌리고, Deep L 도 돌렸는데 모르겠어. 도대체 뭘 더 내라는 거야?"
우다다다다 영어로 떠 뜨는 나를 보고, 이민국 안내데스크 직원이 약간 당황을 하다가 출력해 간 이메일을 읽더니 빙긋 웃는다.
"응, 그냥 더 내고 싶은 서류가 있으면 내라는 얘기야. 거주증 관련해서 혹시 네가 생각하기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서류가 있으면 더 제출하고 없으면 안 내도 돼. 그냥 건강 보험증서만 추가로 업로드하면 된다는 이야기야."
"아, 그렇구나.... 고마워...."
이렇게 싱겁게 끝났다. 이민국에서 터덜터덜 나오는데...
여권을 들고 허겁지겁 오는 남편의 모습이 보였다.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 그리고 무엇보다 이 타지에 존재하는 유일한 내 편. 내 가족.
갑자기 눈물이 핑....
손을 잡고 둘이 돌아오면서
우리 가족의 정신 건강을 위해
실컷 욕했다. 무슨 말을 그렇게 이상하게 써 놓으냐고....
실컷 욕하고, 그래도 다행이라고 둘이 위안했다.
"그래도 별일 아니네. 그냥 건강 보험만 가입해서 업로드하면 되네. 그래도 처음 왔을 때에 비해 많이 좋아졌어. 헝가리 이민국. 그렇게 바로 대답도 해주고... 예전에는 여권 없었으면 입장도 안 됐는데. 그래도 다행이다. 여권 달라는 이야기 안 해서."
그래, 또 하나 해결했다.
해결했으니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