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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ra Seed Aug 30. 2024

수박빙수를 먹다가 나는 울었네

Friends are chosen family


1. 폭염


여름이다. 7월이 시작되고 몇 주째 날씨가 35도에서 40도를 넘나 든다. 헝가리 뉴스에서 연일 폭염 주의보를 발령한다. 120년 만의 최악 폭염은 부다페스트 관광객마저 집어삼킨 모양새다. 오버투어리즘으로 몸살을 앓는 부다페스트 시내가 조용하다. 어쩐 일인지 나는 이곳의 여름에 취약하다. 길거리에서 쓰러지기를 몇 번 반복했다. 열사병인 듯하다.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거리를 걷다 갑자기 핑하고 정신이 아늑해지다 순간 참을 수 없는 구토감이 몰려왔다. 주변의 눈치를 볼 새도 없이 역류하는 위장 속 음식물을 다 비워내고 나면 말 그대로 눈앞이 깜깜해졌다. 걸을 수도 일어날 수도 없었다. 다행히 매번 남편이 옆에 있었다. 의식을 잃은 것은 아니었기에, 남편은 나를 들쳐 엎고 집으로 왔다. 에어컨을 틀고 침대에서 쉬면 컨디션은 회복됐다.


그런 경험을 몇 번 한지라 35도가 넘으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절대 외출을 하지 않는다는 룰이 생겼다. 그런데 폭염이 좀처럼 사그라들지를 않는다. 오래된 플랫 탑층에 복층 구조인 우리 집은 매우 덥다. 방마다 에어컨은 있지만 거실과 주방을 비롯한 공용공간에는 에어컨이 없다. 덥다고 방에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엄청난 열기가 집안을 가득 채웠다. 건식 사우나를 연상케 하는 뜨거운 공기가 빽빽하고 촘촘하게 나와 남편을 조여왔다.


남편은 지난 달 학교를 졸업하고 재 취업 준비 중에 있다. 수 십 년간 해왔던 일을 뒤로하고, 이곳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년의 어학연수, 2년의 석사과정. 3년간 무수한 밤을 헌납하며 그의 두 번째 석사학위를 받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졸업 한 뒤가 더 문제라는 것을.



2. 중년 + 재취업


오! 끔찍하다. 끔찍해.

두 키워드만 해도 숨이 막히는데 남편은 '해외 취업', '경력이 전혀 없는 신규 직종' 키워드를 추가하여 도전하고 있다.  <무한도전>이 계속했다면 김태호 pd가 한 번쯤 에피소드로 낼 만한 극한 도전이다. 지난 3년간 그를 위로해 본답시고 장황한 이야기를 떠들어 놓기도 해 봤다. 소용없는 일이다. 이럴 땐 묵묵히 내 할 일을 하며 그의 옆을 지켜주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알았다.


졸업식 이후에도 우리 부부는 마치 회사원처럼 규칙적으로 도서관에 갔다. 도서관에서는 각자 다른 구역에서 일을 하고 점심을 먹는 시간에 잠깐 만나 밥을 먹고 저녁을 먹기 전에 돌아왔다. 그가 느낄 스트레스를 알기에 나는 많은 것을 물어보지 않았다. 안 그래도 숨 막히는 일상에 폭염은 참 눈치도 없이 오래 머물고 있었다.  


취업 스트레스와 폭염이 절정으로 치달을 무렵 미국에 사는 남편 친구 J에게 연락이 왔다.


8월 초에 부다페스트 가려고. 열흘 머무려고 하는데 시간 괜찮아?




3. 동병상련

J는 남편의 고등학교 동창이다. 그는 십여 년 전 결혼과 동시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갖은 고생 끝에 이제는 안정된 삶을 살고 있다. 이민 선배인 J 가족은 작년에도 한차례 부다페스트를 방문해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 터라 놀러 온다는 소식이 무척 반가웠다. 동병상련이라고 그들은 우리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다. 지난 1년 쉴 새 없이 달려온 남편도 나도 마침 휴식이 필요했고 그들의 방문은 손꼽아 기다리는 일정이 되었다.


약속된 날짜에 그들이 도착했다. J, J의 아내 노라 그리고 그들의 2살 배기 아들 앤드류.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 온다"라는 영화의 예고편처럼, 그들의 등장은 압도적이었다. 플랫 1층부터 울려 퍼지는 앤드류의 목소리, J 부부의 트렁크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와 함께 스트레스와 폭염에 숨 막히던 우리의 일상은 바로 휴가 모드로 전환됐다.



J의 가족이 오자 남편은 아주 오랜만에 신이 난 모습이었다.
얼마나 그리웠던 모습이었던가!


매일 학교에 치여 밤 새기를 일수, 졸업 후에는 이곳저곳 지원하고 남모를 고배를 수 없이 마시고 있었던 그였다. 혹여 좋은 취업 정보를 놓쳐 기회를 잃을까 일분일초를 아끼며 살던 그에게 J 가족의 방문은 선물이었다. 요리가 주특기인 그가 다시 부엌에서 칼을 잡았다. 아롱사태를 푹 끓여 소고기 수육을  야들야들하게 썰어 배추를 얇게 깔고 육수를 넣고 샤부샤부 냄비에 올렸다. 콜라비를 사서 깍두기를, 알배추를 사 김치를 담갔다. 양파와 셀러리를 넣은 피클, 콩 샐러드 등 멀리서 온 J 가족을 위해 남편은 푸짐한 한상을 차렸다.  


왁자지껄 잔칫집이 따로 없었다. 1년 만에 만난 것이 무색할 정도로 만나자마자 수다를 떨었다. 한바탕 저녁을 먹고 J가 짐을 풀기 시작했다.

세상에나! 각종 한국 식품들이 빼곡한 슈트 케이스에는 정말 없는 게 없었다. 미국에서 유행하는 한국 라면, 한알 육수, 골뱅이 통조림에서 쥐포, 각종 과자에서 바나나 우유에 이르기까지. 다른 슈트 케이스에는 트레이더 조의 상품이 가득하다. J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수박빙수 해 먹으려고 사 왔어! 너희 빙수 못 먹었지?  
여름인데 빙수는 먹어야지! 팥이랑 빙수떡이랑 사 왔어!

팥빙수? 남편과 나는 단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팥빙수는 일 년에 한 번 먹을까 말까였다. J의 마음이 고마워 그러자고 했다. 남편이 빙긋 웃으며 J에게 묻는다.


남편: 야, 근데 얼음을 어떻게 만드냐?

J: 우유 있지? 지퍼백에 우유 넣어서 얼리면 돼.

남편: 그럼 그 우유 얼음은 어떻게 갈아?

J: (씩 웃으며) 아주 살살 방망이로 두드리면 돼. 야, 외국에서 10년 넘게 살다 보니 별 잡기술이 다 늘었다. 내가 할게. 걱정 마. 눈꽃빙수만큼은 아니지만, 기똥차게 만들어 줄게.  여기 연유는 파냐? 연유는 팔 것 같아서 안 사 왔는데. 연유 넣어야 맛있는데.

남편: 팔걸? 슈퍼 가볼래?


45세, 해외에 사는 중년의 두 한국 남성이 아주 심각하다. 팥빙수를 주제로 논문을 쓸 기세다. 두 남자가 슈퍼에 가고 노라와 나는 웃었다.


나: (웃음이 빵 터져) 둘이 왜 저래? 일 년 만에 만나자마자 팥빙수로 저렇게 심각할 일이야?   

노라: (하하) 언니, 그러게요. 남편이 오기 전부터 엄청 고민하더라고요. 언니랑 오빠 뭐가 먹고 싶을지... 저희 처음 미국에 이민 갔을 때 생각이 많이 나나 봐요.



4. 수박빙수

연유와 수박, 와인을 잔뜩 사들고 두 남자가 돌아왔다. 2살 앤드류는 시차 때문인지 저녁을 먹으면서 꾸벅꾸벅 졸다가 이내 잠이 들었다.


자, 이제부터 작전개시. 수박빙수 만들기!

아기가 깨지 않게 조용조용 우유 얼음을 꺼내 밀대로 밀다가 두드리다를 반복하니 우유 얼음이 곱게 갈렸다. 넷이서 함께 먹을 심산에 큰 냉면그릇을 꺼냈다. 우유 얼음을 조심스레 넣고 그 위에 팥과 빙수떡을 차례로 올리고 수박을 송송 썰어 올렸다. 마지막에 연유 드리즐.  침이 꿀꺽~넘어갔다. 수박 빙수를 중간에 두고 술상이 벌어졌다.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수박빙수로 직진!  한 입 먹자, "어, 맛있다! 꼭  초등학교 때 학교 앞 분식집에서 팔던 팥빙수 같아. 맛있다!!"라는 말이 자동반사로 나왔다. 마음이 말랑말랑해지자 이내 코끝이 찡해졌다. 2년을 넘게 산 집에서 처음으로 내가 잘 아는 곳에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남편을 보았다. 평소 단 것을 입에도 안대는 남편도 '맛있네'를 연신 외치며 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신이 났다. 와인이 좀 들어가기 시작하자 과묵한 남편이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해외 생활의 힘듦, 재취업의 어려움, 언제 들었는지 모르는 나이 등 그렇게 수다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동안 억눌려 있던 푸념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그런 남편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마음이 저려왔다.


그이는 외로웠었구나. 이 낯선 땅에서.


사실 남편도 나도 그리 사교적인 편이 아니다. 친구를 여럿 두고 자주 만나는 스타일은 더더욱 아니다. SNS, 문자 등은 거의 안 하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통화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둘 다 외로움을 타는 스타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수박빙수를 먹고 알았다. 우리는 외로웠었던 거다. 이주하고 힘들고 속상한 마음을 꾹꾹 누르며 살아가고 있었다. 자초해서 온 것이어서 불평과 불만은 서로 하지 않았다. 그런데 사실은 누군가 우리를 이해해 줄, 불평불만이지만 술잔 기울이며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줄 그런 친구가 절실히 필요했었나보다.


수박빙수를 먹는 일이 이렇게 서러울 일인가. 타지에서 사는 서러움이 북 받쳐 올라왔다. J의 가족과 우리는 주거니 받거니 타지 생활의 힘듦을 이야기했다. J와 노라는 미국으로 이민 가서 제일 힘든 게 친구라고 했다. 경제적인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해결이 되는데, 마음을 터 놓을 친구를 사귀는 일만큼은 아직도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매해 헝가리로 우리를 만나러 오는 거라고.


여행 열흘 동안 우리는 매일밤 수다를 떨었다. 어떤 날은 골뱅이 소면과 함께 또 어떤 날은 새우깡과 쥐포와 함께. 그렇게 매일 밤새도록 우리는 수다를 떨었다. 가슴 한편에 꼭꼭 숨겨놓았던 설움과 분한 마음이 사그라든 느낌이다. 그렇게 또 위로를 받고 힘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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