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ora Seed Nov 29. 2021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라는 그 한마디

이성이 해결하지 못하는 일

언젠간 그렇게 될 것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막상 그 일이 닥치면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지난 화요일, 수업 발표 준비를 한창 하고 있는데 서울에 있는 부원장에게 이메일이 왔다. 일상적인

주간보고려니 생각하고 읽었는데 개인 사정으로 올해 말까지 근무가 가능하다는 소식이었다.


'아,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작년 9월에 부원장을 뽑고 경영권을 모두 넘겨주면서부터 수없이 생각해 왔던 일이다. 언젠가는 부원장이 그만둘 것이고, 그때는 학원을 닫아야 지하고 수없이 생각해왔다. 다른 부원장을 고용할 수도 있겠지만, 서울도 아닌 부다페스트에서 온라인으로 채용공고를 내고 온라인으로 면접을 보고 온라인으로 교육을 한다는 게 나에게는 맞지 않는 일이기에 이 옵션은 선택지에서 지운 지 오래다. 모든 업무 관리 모듈이 체계화, 문서화되어 있는 대기업이라면 모르겠지만, 우리 학원과 같은 규모에서는 어림없는 일이다.


결말을 다 알면서도 자꾸 보게 되는 영화가 이런 이유에서 일까?

수백 번, 수만 번 머릿속으로 생각한 결과였는데.....

다 알고 있는 결과였는데 막상 닥치니 왜 이리

당황스러운 걸까?


사실, 내 이성은 아주 괜찮다. 생각했던 문제가 발생했고 손해를 최소화하는 범위 안에서 일을 해결하면 그만이다. 아무 문제가 없다. 내 이성은 나에게 아무 문제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내 마음이 문제다.

내 감정이 요동을 친다.


처음에 소식을 접하고 학원을 닫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정말 얼떨떨했다. 너무 생경해서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는 말 그대로 얼떨떨한 상태였다. 그리고 얼마 안 가 그 얼떨떨한 상태가 안절부절못하는 상태로 이어졌다. 여기 와서 불면증 없이 잘 잤었는데, 다시 엄청나게 많은 꿈을 꾸고 얕은 잠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물론 학업도 병행해야 하기에 공부할 때는 최대한 감정을 억눌렀다. 그러다 보니 하루에 세네 시간도 못 자고 일주일을 버텼다.  


엊그제 아침,

눈을 뜨니 메일이 한통 와있었다.

"원장님,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제목의.


J가 보낸 이메일이었다.

제목을 보는데 가슴이 먹먹해져서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J는 따뜻한 말들로 나를 위로해주었다. 그 따뜻한 말들을 읽다 보니 지난 십 년의 세월이 주마등같이 스쳐갔다. 나는 이렇게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는 말을 이전에는 믿지 않았다. 나에게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었기에.....


그런데 이번에 처음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지난 십 년의 세월이 하나하나 사진처럼 스쳐 지나갔다. 처음 10평도 안 되는 학원에서 첫 수강생이 등록했던 순간, 조금씩 학원이 잘되어 강의실이 6개가 있는 곳으로 확장을 했을 때의 기쁨, 누구보다 믿었던 동업자에게 배신을 당했을 때의 울분과 다짐, 처음 내 이름으로 사업장을 등록했을 때,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오래 등장한 장면은 좋은 학생들과 깔깔거리며 수업을 하는 나의 그리고 우리의 모습이었다.


내 감정이 힘들었던 건 아마도 그 공간에서 추억이 없어진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아마도 폐업을 한다는 게

나에게는 마치 지난 십 년을 공식적으로 지워버리라고 누군가가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동안 수고했다는 그 말 한마디에

나는 어제 12시간이나 잤다.

특별한 꿈을 꾸지 않고.

그리고 알게 되었다.

없어지는 것 아니라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라고.

매거진의 이전글 '늦었다고 생각할 때, 정말 늦은 건 맞는데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