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ora Seed Oct 24. 2021

부다페스트에서 집 구하기(3)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자기야, 나 이대로 있으면 화병 날 것 같아."


 "에휴..... 그렇지. 그런데 뭘 어떻게 하겠어. 그냥 우리가 재수가 되게 없었던 거지 뭐. 서울이었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인데. 여기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외국인 취급을 받고...... 별 꼴을 다 겪네."


J는 이제 그만 속상해하고 붉은 벽난로 집주인 루돌프와 공인중개사 레헬의 만행을 잊으라고 했다. 이제 부다페스트에서 공식적으로 '우리 집'이라고 불리는 곳에 왔으니, 루돌프에게 주었던 가계약금 900유로를 돌려받고 짜증 났던 일은 잊자고 했다.


J의 말이 옳다. 곱씹어 봤자, 우리만 속상하고 현지에 지인 하나 없는 상황에서 정말 변호사를 선임하여 소송을 할 것이 아니면 미친개에게 물렸다 생각하고 잊는 것이 이성적으로는 옳은 선택이다. 다 맞는 말인데, 나는 화가 난다.


아니, 도대체.

무엇 때문에 사람들은 잘못을 저지르고 사과를 안 할까?



내가 화나는 포인트는 바로 이 지점이다. 분명히 본인이 잘못해 놓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그 잘못을 남에게 전가하고 쓰윽 빠져나가는 짐승 만도 못한 어른들을 나는 참을 수가 없다. 살면서 의도치 않게 남에게 피해를 입히고 상처를 줄 수 있다. 문제는 이후의 태도이다. 피해자가 상처 받은 이가 원하는 것은 사건에 대해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담은 사과이다.


'미안해요. 이 일 때문에 얼마나 힘드셨어요. 진심으로 미안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과는커녕, 공인중개사 레헬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계약 무산'이라는 문자만 보내 놓고 이후로 연락이 안 되고, 집주인 루돌프 역시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그 책임을 현재 세입자에게 전가하면서 문자 그대도 빼째라는 식으로 나오고 있다. 이러한 행동을 번역하면, '헝가리 법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외국인이니 이렇게 대충 얼버무리면 되겠지.'이고, 기본적으로 '외국인에 대한 무시'가 깔려있는 인성이 막 돼먹은 사람들 인 것이다. J에게 말했다.


"자기, 자기 말이 다 맞는데......

나 그냥 있을 수가 없어. 너무 화가 나. 사과를 받아야겠어. "


"...... 음 그래 그럼.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해."


만약 그들이, 나를 그리고 J를, 동양에서 유럽으로 건너온 아무것도 모르는 일자무식의 외국인이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서울에서 미술계 경력 십 년 동안,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EU 조찬 모임부터 시작해서 각국 주재 대사관을 돌며 주최하는 전시의 펀드레이징을 성공적으로 유치했던 나였다. 그리고 J는 13년의 회사 생활 동안 뉴욕지사의 부동산을 모두 관리하여 '부동산 계약'에 있어서는 어느 변호사 못지않은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자, 제일 먼저 어디부터 공격을 할까?


이럴 때는 나이 들어서 유학을 온 게 도움이 되는구나 싶었다. 자, 이런 경우에 제일 처음 공격을 해야 하는 것은 공인중개사 레헬과 붉은 벽난로의 집주인 루돌프가 아니다. 레헬이 일하는 부동산 회사이다. 내가 처음 이들과 일을 시작한 것이, 이들 개인을 보고 한 것이 아니라 이 부동산 회사의 명성을 보고 한 것이니 컴플레인은 당연히 직원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회사의 책임자에게 하는 것이 맞다. 전 세계를 돌며 펀드레이징을 했던 실력을 여기서 써먹을 줄은 몰랐지만 어쨌든 이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맨 처음 부동산 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회사 대표의 이메일에서부터 이사진, 그리고 팀장급의 이메일 계정을 찾았다. 받는 이는 공식적으로 회사 대표, 참조에 이사진들과 팀장급 이메일을 모두 넣었다. 그리고 해당 메일에 레헬과 집주인 루돌프는 절대로 넣지 않았다. 나의 숨은 뜻은, 당신네 직원과는 말이 안 통하니 담당자가 나와서 이 사건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지 나에게 이야기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말도 안 되는 일련의 상황에 대해 시간 순으로 정리를 해서 이메일을 썼다. 처음 당신의 회사를 굉장히 높게 평가했다는 점, 확실한 고객 관리와 좋은 부동산 매물을 갖추고 있다고 홍보한 것, 무엇보다 한국 굴지의 기업들 삼성, SK 등에서 헝가리로 온 주재원들의 대부분의 부동산 중개를 본인들이 담당하고 있다고 한 점(실제 이 회사의 홈페이지에는 한국인의 리뷰가 있다)등에 대해 쓰며 내가 얼마나 당신의 회사를 신뢰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언급했다.


그리고 시간 순으로 중개인 레헬과 집주인 루돌프와 있었던 일에 대해 썼다. 처음 만난 날에서부터 계약을 하기로 했으나 집주인 루돌프가 갑작스레 여행을 가서 무산이 되었던 일, 무려 5번이나 이메일로 주고받은 입주 계약서, 계약을 위해 보냈던 가계약금 그리고 입주 하루 전에 계약이 무산되었던 일을 쓰고 그 아래에 증빙 자료(문자, 이메일)를 캡처해서 넣었다.


마지막으로 헝가리 법령을 캡처하여, 이렇게 집주인의 잘못으로 계약이 무산될 경우 가계약금의 두배를 보상해야 한다는 것을 언급했다. 그리고 집주인 루돌프가 문자로 계속 연락을 하여, 가계약금 900유로를 돌려주려면 우리가 어떤 계약서에 꼭 서명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이와 관련된 법령을 찾아보지 못했다. 루돌프에게 그 계약서를 검토해 볼 테니 이메일로 보내라고 했는데 소식이 없다. 나는 앞으로 이 상황이 일주일 안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법적 도움을 요청할 것이다라고 쓰면서  빠른 시일 안에 연락을 달라고 했다.


장작 다섯 시간에 걸쳐 이메일을 쓴 후, 전송을 눌렸다.


'아, 속 시원해~!'


진짜 오래간만에 두 다리 쭉 뻗고 잤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점심이 지나자 부동산 회사의 중역으로 보이는 이에게 장문의 이메일이 왔다. 요지는, 불편을 일으켜 매우 죄송하고 혹시 지금도 집을 못 구하고 있으면 다른 플랫을 구해주고 싶다고 정중히 편지가 왔다. 더불어, 집주인 루돌프와 입주 전에 계약서를 작성했으면 당연히 가계약금의 두 배를 돌려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집주인 루돌프가 가계약금을 돌려주기 위해 작성해야 한다는 계약서가 무엇인지 자신들도 모른다고 했다. 어쨌든, 정상적인 태도의 답변이 와서 다행이었다.


회신의 메일에, 당신이 이렇게 사과를 하니 한결 마음이 가볍다고 애초에 레헬이 이렇게 사과를 하고 일을 진행했으면 한결 수월했을 것을 왜 상황을 이렇게 까지 몰고 갔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앞으로는 이런 일이 또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썼다. 그리고 플랫은 이미 다른 사람이 도움을 받아서 이미 구했다고 마지막으로 가계약금은 보냈지만 계약서에 사인은 입주 당일에 하기로 해서 미리 사인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다시 돌아온 답변, 아쉽게도 계약서에 사인을 하지 않고 가계약금을 보냈으면 집주인의 잘못으로 계약이 무산되더라고 보상을 받기 힘들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관련 헝가리 법령을 찾아보고, 법률사무소를 통해 알아보니 동일한 답변이 돌아왔고, 소송을 하면 승소할 것이나 액수가 너무 적어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아, 이 부분은 내가 실수를 했구나.'


인정할 것은 깨끗이 인정했다. 보상은 못 받겠고, 레헬과 루돌프에게 사과는 받아야지. 애초에 보상보다 사과가 먼저였으니까. 레헬에게는 사과의 문자가 왔고, 루돌프에게도 급하게 연락이 왔다. 루돌프는 우리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정말 그 얼굴 다시는 보기 싫었지만, 가계약금도 받아야 하고 사과도 받아야 하니 학교 앞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수업이 끝나고 약속 장소로 가는데, J와 루돌프가 카페에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도 합석하여 간단히 인사를 하고 루돌프가 말했다.


"Hi, I am sorry, but it's not my fault..."

(안녕, 미안한데 내 잘못이 아니야......)


"NO, IT IS YOUR FAULT"

(아니, 니 잘못이야.) 


루돌프의 말이 화를 돋웠다.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내가 몰아세웠다.


"너 자꾸 니 잘못 아니라고 하지 마.

이건 백 프로 니 잘못이야.

니 잘못 때문에 우리가 손해를 본 거고. 너와 현재 세입자 사이의 문제는 너와 그 사람의 문제이지 그건 우리가 알바가 아니야.

그러니까 자꾸 세입자 핑계대면서 니 잘못 아니라고 말하지 마.

인정해. 이거 니 잘못인 거."


당황한 듯, 문법이 안 맞는 영어로 루돌프가 말했다.


"Okay.... Okay..... no threat me....."


"협박은 무슨 협박?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너 때문에 J와 나의 소중한 2주일을 망쳤어.

있지, 그 2주일은 네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당황스럽고 화가 나는 기간이었어. 우리 부부가 여기로 이주 와서 첫 출발하는 하는 아주 의미 있는 시간이었거든. 근데 네가 그걸 다 망쳐버린 거야.

그리고 나는 네가 우리에게 정. 중. 하. 게. 사과하기를 바라."


"Oh, I am so sorry for causing you all troubles."



카페에 있는 모든 사람의 시선이 우리에게 집중되었고, 루돌프의 얼굴은 빨개지고 눈동자는 어디에 시선을 둘지 몰랐다. 느낌으론, 빨리 사과하고 도망가야지 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뭐 사과를 받았고, 나도 그의 얼굴을 빨리 안 보고 싶은 터라 계좌번호를 던져주며 가계약금 900유로 이쪽으로 빨리 보내라고 마지막 인사를 하고 J와 일어서며 말했다.


" 그래, 이 정도면 됐어. 이제 루돌프네 집이 있는 언드라시 거리 가도 화 안 날 거 같아. 그 전에는 그 예쁜 동네에 가면 루돌프 생각이 나서 가기가 싫었는데 이제 됐어. 즐겁게 다시 갈 수 있겠어. 아니, 돌아이 보존의 법칙이 헝가리에도 존재하는구나.... 근데, 하필이면 오자마자 그 돌아이를 만날게 뭐야...."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후 루돌프에게서 가계약금이 들어왔다.


875유로.


'왜지? 900유로가 아닌 875유로는 뭐지?' 하는 순간 내 입에서 욕이 나왔다.


'아, 루돌프 이 새끼! 진짜!!!!! 쪼잔한 놈.

송금 수수료 안 낸 거야?! 나이 오십이 넘어서 그렇게 살고 싶니? 그 25유로로 잘 먹고 잘 살아라

퇘! 퇘! 퇘!'


25유로 때문에 돌아이랑 또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저주를 퍼부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 니 코끝에 대왕 여드름이 나서

새해가 될 때까지 없어지지 말아라.'


p.s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부다페스트에서 플랫을 구했네요. 혹시 헝가리에서 집을 구하시는 한국분들은 저와 같은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 긴 글 올렸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부다페스트에서 집 구하기(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