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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ra Seed Oct 17. 2021

부다페스트에서 집 구하기(2)

내가 날아차기를 했었나?

 

불행은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

주문하지 않은 택배처럼 불쑥 찾아온다.


어쩌면 너무 평온해서

아주 작은 사건도, 아주 작은 불행도

너무 큰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학교 맞은편, 최애카페 부다페스트 바리스타


2021년 8월 31일, 오후 1시경.

이날은 대학원 오리엔테이션이 하루 종일 있는 날로 점심시간을 이용해 애정 하는 카페, Budapest Barista, 에서 여유롭게 플랫화이트를 마시고 있었다. 모든 것은 평온했고 나는 여기까지 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었는지를 되돌아보며 지긋히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오후 4시경 오리엔테이션이 끝날 예정이었고, 오후 5시에는 우리가 내일 입주하기로 한 붉은 벽난로가 있는 집과 계약을 마치고 열쇠는 받기로 한 날이었다.      


8월 20일, J와 나는 부동산 중개인을 통해 붉은 벽난로 집과 계약 의사를 밝혔고 가계약금으로 첫 달 월세를 미리 지불했다. 애초에 8월 25일경 집주인 루돌프와 만나 계약서를 마무리 짓고자 했지만, 집주인이 급작스럽게 여행을 가는 바람에 계약일이 입주 하루 전인 8월 31일로 미루어졌었다.

이미 5차례 이상 계약서가 오고 가며 수정이 있었고, 가계약금 역시 보내 놓은 상태였고 무엇보다 부동산 중개인이 부다페스트에서는 당일에 계약서를 쓰고 입주하는 경우도 많다고 아무런 걱정할 것이 없다고 호언장담을 하여 상식선에서 별일이야 있겠나 싶었다.  


이 짐덩어리들, 아, 왜 나는 신발을 쓰레기봉투에 넣어서 이사를 다녔을까?


다만, 100킬로가 넘는 짐덩어리 들을 하루빨리 풀어 정리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9월 1일, 붉은 벽난로의 집에 입주하기 위해서 우리는 두 번째 에어비엔비에 입성했던 참이었다. 처음에 머물렀던 숙소의 체크아웃이 8월 24일이었고 연장이 안되어, 우리는 붉은 벽난로 집 근처에 숙소를 구해 머무르고 있었다. 근 한 달 정도를 짐도 못 풀고 외식을 전전하다 보니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드디어 내일이면 부다페스트의 우리 집에 입주를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마지막 남은 플랫 화이트를 마시고, 학교로 돌아가려는데 전화가 왔다. 붉은 벽난로 집주인 루돌프였다.


"Hello, Rudolf~"


"Hi......"


"How are you?"


"em..... good......"


"Are we going to meet at 5pm, right?"


"Oh...... Actually, we can't make a contract."


"WHAT!!!!!!!!!!!!!!!!"



오늘 약속을 확인하는 전화인 줄 알았다. 그런데 오늘 계약을 못한단다. 오늘만 못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못한단다. 현재 세입자가 갑자기 마음을 바꿔 나가지 않겠다고 한다고, 다른 플랫을 구하라는 외계어를 지껄였다.


그렇게 평온은 깨졌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J에게 전화를 걸었다.


" 자기, 뭐해?"


"응, 짐 싸고 있어. OT는 어때? 잘 듣고 있어?"


"어, 자기 놀라지 말고 들어. 방금 루돌프한테 전화 왔는데, 우리랑 계약 못하겠데. 지금 있는 세입자가 갑자기 안 나가겠다고 한다고."


"뭐?!"


"어, 그래서 내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현세 입자 보고 나가라고 하라고.... 계약서대로 이행하라고 했더니 헝가리에선 세입자 내보내려면, 일 년 걸린데. 암튼 결론은 우리 내일 이사 못해."


"아,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응, 일단 나도 너무 기가 막히고 화가 나는데... 상황을 먼저 해결하자. 내가 오후 OT 반만 듣고 갈게. 지금 있는 숙소 연장 가능 한지 알아봐죠."



전화를 끊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데, 마음속 깊은 곳에서 진정성 100% 담은 날것의 욕들이 쏟아져 나왔다. 발에 철근을 매단 것 같은 기분으로 학교 강당을 열고 들어가는데, 뒤에서 누군가 수줍게 여기가 오늘 오후 OT 장소가 맞냐고 묻는다. 파란 눈에 금발, 전형적인 영국 악센트를 사용하는 그녀에 그렇다고 말하고, 강당 문을 열고 들어가 자연스럽게 나란히 앉았다. 마음이 너무 복잡해서 아무 얘기도 안 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옆에 앉는 친구에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아 통성명을 했다. 우연히도, 그녀는 나와 같이 영화이론을 전공하는 석사과정 학생이었다. 이렇게 동기를 만나다니, 안 그래도 어떤 친구들이랑 공부를 함께하는지 궁금했는데 반가웠다. 영국 출신 그녀의 이름은 소피(Sophie), 헝가리에 남편 직장 때문에 온 지 2년 되었고 이렇게 다시 학교를 다니는 것이 너무 오랜만이어서 모든 것이 낯설고 긴장된다고 했다. 동기를 만난 것만으로도 반가운데, 상황도 나와 유사하여 왠지 마음이 더 열렸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나는 오늘 갑작스레 집 계약이 불발되는 바람에 OT를 끝까지 참석할 수 없다고 했더니 소피는 자기 일인 듯 안타까워했다. 소피는 내가 참석하지 못한 OT부분을 정리하여 문자로 알려준다고 하면서 자기가 집을 구한 페이스북 그룹을 추천 주겠다고 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OT를 듣는 듯 마는 듯하고, 대학원 담당 조교에서 상황을 설명하고 빠져나왔다.


집에 도착하니, J가 현재 숙소는 연장이 안된다고 한다. 최근 유럽 안에서 이동이 자유로워지면서 부다페스트가 다시 관광객으로 넘쳐나고 있어서 에어비엔비 구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이 숙박 예산을 올려  학교 근방에 위치한 숙소에 또다시 일주일을 예약했다.

너무 화가 나, 부동산 중개인 레헬에게 전화를 했더니, 전화는 받지 않고 문자로 대뜸 '계약 무산. 루돌프에게 빨리 계약금 돌려받으시오'라는 헝가리어 반, 영어반 섞인 답장이 왔다. 불난 집에 기름을 들이부었다.


내가 날아차기를 했었나? 이단 옆차기를 했었나?


할 수만 있다면 당장 달려가서 이 무책임한 부동산 중개인과 집주인에게 우당탕탕 일격을 가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다시 집을 구해야 할 때였다. 다음 주면, 9월 6일부터 개강이어서 본격적으로 수업이 시작되는데 이렇게 떠돌이 생활을 계속할 수는 없었다.  


에어비엔비만 세번째라니. 도대체 언제 집에는 가는 걸까?


학교 옆 아스토리아 역에 위치한 세번째 에어비엔비.


이틑날, 그렇게 우리는 세 번째 에어비엔비에 입성했다. 집주인으로 보이는 카타(Kata)가 집 앞에 서있었다. 그녀는 우리의 짐을 보고는 여행객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채고, 부다페스트에는 무슨 일로 왔냐며 물어봤다. 안 그래도 화가 쌓여 있던 터라,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마침 그녀는 자신이 공인중개사라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그녀는 너무나 사랑스럽게 내 말에 'Oh, dear! Oh dear!' 외치며 대꾸해주었다. 모든 상황을 다 듣고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 오, 디어! 나도 헝가리인이지만, 참 나쁜 사람을 만났네요. 헝가리 법상, 이렇게 계약이 파기되면 집주인이 계약금의 두배를 배상해야 해요. 그리고 집주인에게 이메일로 24시간 안에 계약금을 반환하라고, 만약 그렇지 않으면 바로 경찰에 신고한다고 하세요. 헝가리에서는 360유로(약 한화 50만 원) 이상의 금액을 불법적으로 소유하고 있을 시 바로 경찰이 출동을 하거든요. 엄격해서 대부분 이렇게 이메일을 보내면 바로 돈을 돌려줄 거예요. 오, 디어! 행복해야 하는 첫 부다페스트 생활이 이런 나쁜 사람을 만나 엉망진창이 되었네요! 오, 디어!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해요."



 "고마워요. 카타. 한국에서도 그래요. 부동산 법은 동일하네요. 그런데 우리가 아직 계약서에 사인을 안 했어요. 오늘 만나서 하기로 하고, 계약금만 먼저 보냈거든요."



"오, 디어! 오, 디어! 그럼 아마 그 헝가리인 집주인은 계약서에 사인을 안 했다는 것을 핑계로 배상을 안 해주려고 할 거예요. 일단 보낸 금액이라도 받아야 하니, 빨리 이메일을 보내세요. 그리고 배상을 안 해주겠다고 하면 변호사를 찾아서 소송을 한다고 해보세요. 그리고 계약을 하겠다는 확실한 증거가 이메일이나 문자로 남아있으니 혹시 소송을 하더라고 100프로 승소할 거예요 "


"아......."


그렇게 카타는 떠나고, J와 나는 무책임한 부동산 중개인 레헬과 붉은 벽난로 집주인 루돌프의 행태에 분노했다. 그러나, 우리에겐 분노할 여유도 없었다. 이 집에 머무는 일주일 동안 무. 조. 건. 입주할 플랫을 찾아야만 했다. 두 눈에 불을 켜고 다시 부동산 사이트를 뒤지며 집을 찾고, 리스트를 엑셀로 정리하여 순위를 정하고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이틀 동안 우리는 6개의 매물을 보았고, 모두 당장 입주가 가능한 것들이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곳은, 미술관과 국립극장이 위치한 9구 무파지역에 위치한 신축 대규모 아파트 단지였다. 페스트의 올드타운에서 백 년이 넘은 플랫들만 보다가 한국식으로 깨끗하게 지어진 신축 아파트를 보자 왠지 집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단지 앞에 트램을 타고 10분 정도 가면 학교도 나오고 여러모로 좋았다. 그런데 한 가지, 가구가 없었다. 고민 끝에, 가구가 없어도 신축으로 들어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일단 매트리스랑 이불만 사고 나머지 가구는 살면서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9구 신축 아파트로 입주하기로 결심을 하고, 9월 3일 금요일 오후 집주인과 만나보기로 했다.

너무나 쾌적한 신축 아파트

2021년 9월 3일 오전 11시, 줌으로 학과 오리엔테이션이 있어서 수강신청방법과 수강해야 하는 과목들에 대한 설명 그리고 교수진과 동기들을 만나고 있었다. 웬일인지 J가 자꾸 와서 이상한 신호를 보낸다. 저이가 왜 저러지? 일이나 공부할 때는 서로 절대 방해하는 스타일이 아닌데..... 줌 미팅이 끝나자마자 J가 말했다.



"있지, 내가 방금 자기 동기 소피가 알려준 페이스북 그룹에서 같은 아파트 매물을 발견했어. 근데 가구도 다 있고 심지어 한 달에 150유로나 저렴해. 내가 그 집주인이랑 계속 페이스북으로 연락했거든. 오늘 가서 볼 수 있대."



"어머, 진짜? 너무 좋다. 가구도 다 있고, 한 달에 150유로나 저렴하다고...? 그럼 우리 오늘 3시에 만나기로 한 건 어떡하지?"



"일단, 두 집 다 보자. 하도 당하다 보니까 안심할 수가 없어. 일단, 가구 없는 집, 그 집주인이 어떤지 알아보고 가구 있는 집도 보자. 3시에는 가구 없는 집, 4시에는 가구 있는 집 미팅 잡아놓았어."


3시, 약속했던 시간에 9구에 위치한 신축 아파트 알뤼르 레지던시에 도착했다. 부동산 중개인과 집주인으로 보이는 여성이 서 있었다. 분명 집주인이 중국 남성이라고 했는데, 애띤 얼굴을 한 중국 여성이 있었다. 중개인 말로는 집주인 여자 친구란다. 아니, 집주인을 만나보고 괜찮으면 바로 계약을 하려고 했건만 여자 친구를 내보내다니. 실망한 마음에 조금 생각해보고 이번 주말까지 답을 주겠다고 말하고는 아파트 단지에 위치한 카페로 갔다. 4시가 되어 약속한 장소로 가자, 아파트 분양사무소 직원이 나와서 해당 호실 문을 열어 주었다.


 

가구가 완비된 폴리비우스네 집. 거실, 방2개, 화장실 2개. 그리고 쓸데없이 아주 넓은 발코니.  



그냥 완벽했다. 모든 가구가 완벽하게 배치되어 있었고 오늘 당장 입주도 가능하단다. 집을 보고 바로 집주인 폴리비우스(Polivios)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 당장 계약하고 입주하고 싶은데 언제 만날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들려오는 그의 대답.



"아, 나 지금 포르투갈 여행 중인데. 부다페스트에는 다음 주 주말에나 들어갈 것 같은데. 그냥 온라인으로 계약하면 안 될까? 그리고 그 집 우리 아빠 집이거든. 우리 아빠는 사이프러스 살아서 어차피 부다페스트 못 와. 온라인으로 계약해야 해."


오잉? 이건 또 무슨 상황이지? 하면서 J와 의견을 나누었다. 더 이상의 모험을 하고 싶지 않은 나는, 확실히 부다페스트에 집주인이 거주하는 가구 없는 집으로 들어가고자 했고, J는 가구를 언제 다 사냐며 그냥 온라인으로 계약을 하고 가구 있는 집으로 들어가자고 했다. 여기 와서 처음으로 의견이 엇갈렸다.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쳤고 이 상황에 J 하고 까지 언성을 높이고 싶지 않았다. J의 의견을 따르기로 하고 집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기 위해 폴리비우스에게 줌으로 미팅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날 밤 포르투갈에 있는 폴리비우스와 줌으로 만났다. 그는 부다페스트에 부인과 8년을 거주하면서 세멜 바이즈 의대를 다녔고 올해 마침내 의학박사를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집은 아버지 소유로 본인과 부인이 머물렀던 집이라고 했다. 점잖은 인상, 좋은 매너, 여유 있는 태도, 아마 사기꾼이라고 하면 어느 하나 흠잡을 곳 없어 누구라도 사기를 당할 것 같았다. 줌 미팅이 끝나고 J는 사람 좋다고, 정상이라고 계약을 하자고 하는데, 나는 아무래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번에도 또 계약이 어긋나면? 혹시 사기라도 당하면? 밤새 폴리비우스의 페이스북을 뒤져서 신원을 확인했다. 페이스 북을 뒤진 결과 말했던 정보가 다 맞았다.

의심을 하려면 끝이 없었고, 믿고자 한다면 믿을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우리는 폴리비우스에게 등기부등본을 받아 집주인을 확인하고 온라인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첫 달 월세를 가계약금으로 보내고 근처 인도식당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


"이번엔 문제없겠지? 문제없이 9월 6일에 입주할 수 있는 거겠지?"

"응, 걱정하지 마. 가계약금 보내었잖아. 입금 확인하면 바로 연락한다고 했으니까 밥이나 먹자."


그런데 이게 웬일. 밥을 먹는데 이십 분이 지나도, 삼십 분이 지나도 폴리비우스에게 연락이 없다. 온라인 뱅킹으로 입금을 확인하는 게 이렇게 오래 걸릴 일인가? 아, 사기당한 건가? 한 시간이 지나도 연락이 없다. 불안한 마음에 전화를 했다. 전화기가 꺼져 있다.


망했다. 결국은 사기까지 당하는구나.

 


J과 나는 밥은 안 먹고 맥주만 마셨다. 속이 탔다. 두 시간째 연락이 없자, 취기가 오른 나는 미친 사람처럼 계속 전화를 했다. 어라, 신호가 가네? 폴리비우스가 받았다! 나는 정중하게 물었다. 계약금을 받았는지, 왜 연락이 안 되었는지. 폴리비우스는 너무나 예의 있게 미안하다며 핸드폰 데이터가 마침 다 떨어졌고 운전 중이어서 연락을 못했다고 계약금은 잘 받았고 약속한 대로 9월 6일 입주 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우리는 9구에 위치한 알뤼르 레지던시에 한 달의 방황을 마치고 지난 9월 6일 입주했다. 폴리비우스와 그의 아버지는 매우 정상적인 사람이었다. 입주 후 발견한 몇몇 문제들을 관리실에 바로 이야기하여 불편함 없이 생활하게 해 주었고 실제 서명이 담긴 오프라인 계약서를 보내 달라고 하자 DHL로 바로 보내주었다.


자, 이제 남은 것은 붉은 벽난로 집주인 루돌프와 중개인 레헐에게 어떻게 복수를 하느냐는 것이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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