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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청개구리 Aug 02. 2020

프랑스에도 스카이캐슬은 있다

고질적인 한국의 교육 문제가 화두일 때 대안으로 프랑스의 교육제도는 자주 언급된다.

인문학 중심의 교육, 자유로운 토론, 논술 중심의 대학 입학 시험 모두를 위한 공평한 교육 기회 등등.


우연히 국내 교육에 대한 특별 기획 TV방송을 본 적이 있다. 프랑스 파리 현지 특파원이 프랑스 교육 관계자를 인터뷰하고 교육 기관에도 방문해 교육적 자유와 평등을 누리는 프랑스 학생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입시 지옥에서 살아가는 한국 청소년들에게 프랑스는 천국 같아 보인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잠시 마나 프랑스의 교육을 경험한 나는 절반 정도만 동의한다.

솔직히 TV가 균형있는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프랑스의 고등학생들은 바칼로레아(Baccalauréat)라는 논술형 시험을 본다. 많은 언론들이 이 시험을 한국 대입 수능과 비교하는데 사실 졸업 자격이 주 목적이기에 둘의 비교는 알맞지 않다.  


바칼로레아를 통과하면 학생들은 대학 진학 유무를 결정한다. 이 때 어느 학교에 입학할지도 선택한다. 만약 명문 그랑제꼴(Grandes écoles: 특유의 소수정예 고등교육기관 체계를 가리키는 용어로, 프랑스 사회에서는 일반 공립 대학교와 구분됨) 진학을 선택한다면 학생들은 무시무시한 입시 전쟁에 뛰어드는 것이다.


자식을 명문 그랑제꼴로 보내려는 프랑스 학부모들의 열성은 강남 8학군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프랑스에도 8학군이 있다.

강남구 대치동처럼 한 지역에 집중적으로 교육 자원이 모여있는 것은 아니지만 프랑스에도 학군이 좋은 지역들이 있다. 자식이 특별하길 바라는 것은 프랑스의 학부모라고 다를 리 없는지 교육 환경이 좋은 지역은 집값도 비싸다. 프랑스의 부모들도 자식 교육을 위해 이사를 다니기도 하며 사교육 과외 선생을 찾는다.


프랑스 최고 명문 고등학교로 Henry 4세 고등학교.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명문 고등학교가 앙리 4세 고등학교(Lycée Henri-IV)이다. 장 폴 사르트르 등 프랑스를 대표하는 수많은 사상가들이 이 학교 출신이다.이 학교 지역은 교육열이 높고 부촌 지역이다. 약간 과장하자면 파리의 강남이라고나 할까.

졸업생들 높은 자부심은 그들의 이력서에도 나타난다. ‘앙리 4세 고교 졸업’을 꼭 명시해 두는 편이다.


 SKY가 있다

‘파리1대학, 파리8대학…등등’을 듣고 우리는 프랑스에 대학의 서열이 없다고 생각한다. 인문학 중심의 국립 대학을 설명할 때 맞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랑제꼴들에는 서열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랑제꼴은 특정 학문 영역에서의 엘리트를 양성하기 위한 프랑스만의 특별한 고등 교육 기관인데 명문 그랑제꼴에 입학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그랑제꼴에 입학을 목표로 하는 고등학생들은 이미 프랑스의 엘리트급인데 그 속에서 다시 서열을 정한다니 어떤 의미에서는 한국보다 더 잔인하다.  


최상위 그랑제꼴은 프랑스내에서는 SKY이상의 지위를 가진다.     출처 : 위키피디아


국내에서도 유명한 ‘에꼴 폴리테크니크(École Polytechnique)’ ‘시앙스포(SciencesPo Paris)’ 등은 모두 최고의 그랑제꼴로 통한다. 최상위 그랑제꼴의 경쟁률이 서울대학교보다 높다고 하니 프랑스 고등학생들이 입시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짐작이 된다.


김한솔이 입학한 시앙스포 그랑제꼴을 기사에서는  '명문 대학' 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출처 : VoA


  학벌은 성공의 지름길

한국의 학부모들이 자식을 좋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보내는 이유는 입시와 함께 인적 네트워크 형성 때문이다.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그들만의 리그’이다. 명문 그랑제꼴 졸업생들은 사회, 정치, 경제 모든 곳에서 요직을 독식하고 있다.


프랑스의 역대 대통령들과 유력 정치인중 열에 아홉은 명문 그랑제꼴 출신이다. 프랑스 대기업의 CEO 90% 이상이 그랑제꼴 출신이라는 통계 결과도 있다.


명문 그랑제꼴에 입학하는 것은 프랑스 상류 사회에 진입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랑제꼴 학생들도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들은 졸업 후 사회에 내딛는 첫발이 다르다. 취직을 걱정할 필요가 거의 없고 입사 때 받는 연봉과 직급도 다르다. 기업에서 자리를 새로 만들어 입사시키는 경우도 목격했다. 대기업들이 말하는 소위 S급 인재 이상의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녀는 상경계 ESSEC,  정치 행정 ENA와 Science Po  무려 3개의 최상위 그랑제꼴 졸업장을 가지고 있다.  최상위 엘리트들의 코스이다. 출처: KBS 캡쳐


재수생도 있다.

흔하지는 않지만 프랑스에서도 재수생이 있다.

명문 그랑제꼴 입학에 실패한 학생들은 1년 더 공부를 해 다시 입학시험을 본다.


프랑스 회사에서 지내던 시절 입사 지원자 이력서를 본 적이 있다. 졸업도 아니고 그랑제꼴 입학을 위해 재수를 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의아한 적이 있었다. 잘 이해가 가지 않아 프랑스 동료에게 물어보자 ‘아마도 본인 능력이 명문 그랑제꼴을 준비했을 정도’라는 부분을 강조하고 싶어서일 거라고 했다. 그랑제꼴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인식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우리는 유럽 교육과 프랑스 교육에 대해 왜곡된 정보를 가지고 막연히 그들의 교육 시스템을 동경하고 있다.프랑스를 예로 들었지만 유럽의 많은 선진국들은 엘리트 양성을 위한 별개의 교육 과정이 있다. 상당히 많은 언론들이 유럽의 교육 시스템이 무조건 선진적이고 마치 국내 교육이 후진적이며 입시 중심의 교육 상황에 대한 해결책처럼 포장하는데 이것은 팩트를 공정하게 비교하지 못한 것이다.


동시에 모든 프랑스 학생들이 명문대학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밝혀둔다. 유럽은 우리나라보다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이고 모든 고등학생들이 졸업 후 대학진학을 선택하지 않는다. 상위 그랑제꼴에 입학해 사회 상류층 진입을 원하는 야망 있는 소수의 고교 졸업생들만이 혹독한 입시 경쟁을 경험하게 된다.


분명  스카이 캐슬은 프랑스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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