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호랑이는 왜 담배를 먹었을까
불과 10여년 사이에 대한민국 사람들의 흡연에 대한 태도는 극적으로 바뀌었다. 카페마다 테이블 위에 서비스용 담배가 꽂혀있고, 앙증맞은 디자인이 손길을 끄는 성냥들을 수집하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담벼락에 숨어서조차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된 작금의 현실은 그야말로 천지가 개벽하듯이 상상조차 못했던 흡연가의 죽음의 시대인 것이 분명하다.
끽연가로 유명했던 시인 공초(空超) 오상순 선생은 별명이 ‘꽁초’로 통할 만큼 담배를 즐겼다. 눈 뜨고 잠잘 때까지 그는 손에서 담배를 놓지 않았다. 선생은 “내가 싫어하는 글자가 금연이라는 두 자다. 이 두 자를 볼 때는 무슨 송충이나 독사를 보는 것같이 소름이 끼친다.”고 말했다.
월남전후 히피정신이 계승되던 1970년대와 신문화시대가 대두되던 80년대에는 텔레비전 방송의 출연자들도 공공연히 담배를 피웠다. 연속극에서 조금 심각한 장면이 연출되면 늘 남자들이 꺼내드는 것은 담배였고, 외국에서는 생방송 토크쇼를 담배를 피우면서 진행하기도 했다.
놀랍게도 그 당시에는 기차와 고속버스에도 좌석 팔걸이마다 작은 재떨이가 부착되어 있었다. 영화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세련되고 멋진 여성들은 꼭 담배를 피웠다. 이러한 여성들이 담배를 꺼내면 얼른 라이터로 불을 붙여 주는 것 또한 젠틀맨의 상징이었다.
사회의 산업화와 현대화가 가속되고 여성의 지위가 높아지면서 남녀평등의 대표적인 현상이 여성의 흡연이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어불성설이다. 우리가 어릴 때는 할머니들도 담배를 많이 피우셨다. 버스 정류장이나 시장 앞에서는 보따리를 잠시 내려놓고 담뱃불을 당겨 무시는 할머니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담배가 여성상위론자들의 페미니스트적인 오만의 시도라는 생각은 괴설이다. 그 할머니들은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여성상위주의자라 주장하며 담배를 피우신 적이 없으실 것이다.
담배의 유래
담배는 1492년 아메리카 신대륙에서 처음 발견되어 유럽을 거친 후 인도양을 건너 일본 또는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고 한다. 헌종 때의 학자 이규경은 중국과 조선의 모든 사물을 60권에 걸쳐 고증한 그의 저서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담배의 기원이 광해군 10년(1618)이라고 밝히고 있다.
담배의 별명은 다양해서 남초(南草), 남령초(南靈草), 담바고(淡婆古), 망우초(忘憂草), 심심초 등으로 불렸다. 한 번 빨아 습성이 되면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어 상사초(相思草)라고도 했다.
효종의 장인이었던 이름난 문인 장유(張維)는 문집 ‘계곡문필’에서 “담배를 즐기면 굶어도 배가 고프지 않으며, 추우면 능히 이를 따뜻하게 하고 더우면 능히 이를 서늘하게 한다.”고 적었다. 왕들 가운데는 정조, 고종, 순종이 애연가로 알려져 있으며, 명성황후도 궐련을 즐겨 피웠다고 한다. 정조는 담배는 몸에 좋다는 주장을 펼쳤고 그 때문에 민간에서는 담배가 편두통, 매독 등에 효과가 있는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래서 배가 아픈 아이에게 담배를 물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며 담배의 약용은 1970년대까지도 민간요법으로 남아 있었다.
정조
담배가 전래 된 조선 초기에는 양반상인 구분이 없이 담배를 피웠고, 여자가 남자보다 더 많이 피웠다. 당시 여성들은 시집갈 때 자신이 사용하던 담뱃대를 싸갔으며, 양가의 마님들은 나들이를 할 때 항상 담뱃대와 담배쌈지를 든 담배 전담 여종(연비(煙婢))을 뒤따르게 했다.
또 아무 앞에서나 함께 담배 피워도 흠이 되지 않았다. 이렇게 맞담배질 하는 것을 ‘통죽(通竹)’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광해군이 궁중에 숙직하는 문관들이 모여 흡연하는 것을 보고는 “입 냄새가 좋지 않다(口不美)”고 말한 것이 계기가 되어 윗사람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 금기시 되었다. 이후로 신분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이 함께 담배를 피우거나 나이가 어린 사람이 연상인 사람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 그리고 상전 앞에서 서민이나 하인의 통죽은 금기가 되었다고 한다.
담배의 제조와 성분
담배의 맛을 좋게 하려면 각종 잎담배를 적절히 혼합하여 제조하여야 한다. 담배제조는 잎을 후발효 시킨 뒤 잘게 썰어서 주원료와 보충원료인 담배잎을 섞고 첨가제로 설탕, 글리세린, 감초, 코코아, 물, 향료 등을 첨가하여 가공한 뒤 권상작업(卷上作業)과 포장작업을 거쳐 완성된다.
담배가 중독성이 강한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담배 속에 있는 니코틴(Nicotina)때문이다. 니코틴은 담배의 잎사귀 중에 들어 있는 알카로이드(Alkaloid: 식물계에 존재하는 함질소염기성 화합물로서 동물의 신경계에 영향을 미친다.
카페인, 모르핀, 코카인, 니코틴 등이 잘 알려진 알카로이드이다.)로 잎사귀 전체 중량 가운데 1~7%가 니코틴이며, 순수한 니코틴은 무색, 무취의 액체로 물, 알코올 및 에테르에 용해된다. 니코틴은 인체 내의 매우 광범위한 부위에 반응을 일으켜 어떤 경우에는 흥분작용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마비작용도 유발한다.
니코틴은 우리 몸의 폐, 구강 및 비점막, 피부, 장 등 신체 어느 곳을 통해서도 흡수되는데, 보통 담배 연기를 흡연하여 니코틴이 공급될 경우에 구강 내는 약 5.5의 산성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거의 흡수되지 않는다. 그러나 폐에서는 산성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니코틴은 폐에서 대부분 흡수된다.
체내에 흡수되는 니코틴의 경우 10~20분이면 온 몸에 퍼지지만 2~3시간이 지나면 체내에서 사라지기 시작해 또다시 흡연욕구를 느끼게 된다. 흡연자들이 잠에서 깨어난 아침이나 격한 업무나 운동 이후에 피우는 담배를 유독 맛있게 느끼는 이유도 체내 니코틴 농도가 낮아진 상태에서 담배를 피워 니코틴을 공급하는 만큼, 몸에서 느끼는 만족감이 크기 때문이다.
담배에 들어 있는 니코틴, 노르니코틴, 단백질 등의 질소함유물은 연소될 때 질소화합물과 탄화수소물의 유독물질로 바뀌게 된다. 이들 중에는 발암성물질이 포함되어 있으며, 또 연기 속에는 소량의 일산화탄소와 시안(CN: 옥사마이드를 오산화인으로 탈수하거나 수은, 은, 금 따위의 사이안화물을 열분해할 때에 생기는 무색의 기체. 특이한 냄새와 강한 독성이 있으며, 불을 붙이면 보라색 불꽃을 내며 이산화탄소와 질소로 유리된다. 군사용 독가스로 쓴다.)이 포함되어 있어 매우 유독하다.
특히, 일산화탄소는 헤모글로빈에 흡착할 수 있는 친화력이 산소보다 230배나 크고 일단 결합하면 쉽게 해리되지 않아, 신체조직으로 산소를 운반하는 기능이 둔화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시안배당체가 들어있는 과일들
우리다 일반적으로 먹는 과일의 씨에도 이러한 시안화합물이 들어있다. 다만, 소량인데다가 대부분의 경우 과일을 먹을 때 씨를 발라내고 먹거나, 먹는다 하더라도 씨를 씹지 않고 그냥 삼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소화되지 않고 대변으로 배출되어 독성에 노출되지는 않는다.
체리, 앵두, 살구, 복숭아, 매실, 사과의 씨에 시안배당체들이 들어있으며, 포도씨에도 시안화합물이 들어있기 때문에 한 번에 너무 많이 섭취하면 설사나 복통, 심하면 호흡곤란 등의 증세가 올 수 있다.
간접흡연 피해방지법
대한민국에서는 2015년부터 실내흡연을 할 수 없으며, 서울특별시에서는 ‘서울특별시 간접흡연 피해방지조례’를 2017년부터 시행하여 간접흡연을 규제하고 있다. 이로 인해 현재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공공장소와 건물에서는 금연법이 시행되고 있으며, 커피점과 식당도 금연으로 운영되고 있다.
거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서 있거나 도보 중에도 흡연은 엄격히 금지되고 있다. 매연과 미세먼지에 찌든 서울시청 앞 사거리에 한 시간 서 있는 것이 담배 한 갑을 한꺼번에 피우는 것보다 더 몸에 해롭다는 말은 단호한 금연지지자들에게는 통하지 않는 구차한 변명일 뿐이다.
위층의 금연자는 아래층에 사는 미개한 흡연인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 미세한 담배연기에도 예민한 사람들은 24시간 콧속에 레이더를 장착한 것처럼 멀리 아파트 공터에서 날아오는 담배연기의 역함을 느낀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두더지처럼 땅굴을 파고 들어가든가, 체면이 좀 안서더라도 동물원 사육장처럼 생긴 흡연지역을 찾아 엉거주춤한 자세로 허겁지겁 담배를 피운다.
담배 한 갑은 4,500원으로 대책없이 올랐고, 그 담뱃값중 65%는 온전히 세금으로 바쳐진다.
밥 한 끼와 맞먹는 돈을 세금으로 바쳐가면서 산 담배이건만, 애국한다고 칭찬은 커녕 왜 이렇게 수형소의 재소자마냥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숨어서 피워야 하는지 흡연자들의 입장에서는 분할 수밖에 없다.
이탈리아는 이미 2005년부터 실내흡연을 전면 금지하는 강력한 금연법 시행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탈리아인들은 금연법을 도입한 정부의 정책이 얼마나 실효성을 거둘지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한 술집 주인은 “가게 안에서 담배 피우는 갱단 조직원들에게 밖에 나가 피워달라고 요구했다가는 총알세례를 받을 것”이라고 현실적인 고충을 토로했다.
반면 세계에서 친환경국가로 이름 높은 스위스는 유럽에서 ‘친(親)담배 정책’을 펴는 나라로 유명하다. 국민 흡연률도 유럽에서 헝가리, 그리스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담뱃값도 비교적 싸다. 이런 우호적인 환경 때문에 주요 다국적 담배회사들은 본사를 스위스로 옮겨가고 있다.
누구는 흡연을 가해와 이기의 극치라고 하며, 누군가는 금연을 집단이기주의와 피해망상의 발현이라고 말을 한다. 지난 세월 간접흡연에 노출되어 폐암으로 사망했다고 알려진 담배를 피우지 않는 주부 폐암 환자들의 대부분이 사실은 덜 연소된 일산화탄소를 매일 들이마시며 열악한 주방과 집안 환경에서 일을 했기 때문이라는 결과가 밝혀졌지만 누구도 담배의 해악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하지는 못했다. 담배는 환경을 오염시키고 토지를 오염시키고 타인을 오염시키는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탐미체(貪美體)인 것이다.
“담배를 피워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의 깊은 한숨을 알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다.
이 순간에도 담배 연기를 뿜어내는 의지박약한 인간들이 폐암과 구강암과 식도암과 기타등등 거의 모든 종양덩어리들의 위협과 함께, 그보다 더 지독한 금연가들의 공격에 시달리면서도 그 한 번의 깊은 한숨을 놓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니코틴과 각종 화합물의 합성 작용보다 더 강한 삶의 고뇌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머리가 하얗게 세고 이제는 등이 굽은 아버지가 한 밤에 홀로 태우시던 담배 한 대를 손에서 놓고, 대신 아령을 움켜들고 백발머리에 식스팩을 번득이며 건강미를 자랑하시는 모습은 상상이 되질 않는다.
분명한 것은, 아무리 담배값을 올린다 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담배를 피울 것이며, 그 소득은 모두 정부로 돌아가 다시 사람들에게 더 비싼 담배를 팔 것이라는 점이다.
여지는 없다. 금연인가, 끽연인가. 지금부터 시작하자.
그대, 끊을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 기쁘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