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속에 나는 없다
한국 여성들의 명품 백 선호 열풍은 명품 소비재의 국내 판매 가격이 유럽보다 20-30% 비싼 기현상을 가져왔다. 특히 프랑스의 명품 브랜드인 샤넬은 일 년에도 몇 번씩 제품 가격을 인상하였기 때문에, 유럽에서 사 온 제품을 국내에서 중고로 팔아도 큰 이익을 볼 수 있다고 하여 ‘샤테크(샤넬 재테크)’라고 불리면서 명품 재테크의 대명사가 되었다.
여성 명품백의 종류는 상상 그 이상으로 무궁무진 하겠지만, 이 자리에서는 대중에게 잘 알려진 명품 브랜드의 대표 제품 몇 가지에 대해 알아보겠다.
여성들에게 양손의 자유를 준 샤넬
1910년 파리에서 샤넬 모드(Chanel Modes)라는 모자 디자이너로 성공한 샤넬은 1913년 휴양도시였던 도빌(Deauville)에 최초의 부티크를 오픈했다. 이듬해인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노동에 나서야 했던 여성들에게 실용적이며 단순한 샤넬의 옷들은 커다란 호응과 함께 패션으로부터 여성을 해방시켰다는 찬사를 들었다.
1955년 샤넬은 얇은 양가죽 사이에 솜을 넣고 누빈 다이아몬드 퀼트 바디에 군인들의 가방에서 착안한 긴 체인 스트랩을 부착한 숄더백 ‘샤넬 클래식 2.55’을 출시했다. 샤넬의 옷이 여성들을 의복에서 해방시켰듯이, 샤넬의 백은 커다란 클러치를 항상 손에 들고 불편함을 감수하고 다녀야했던 여성들에게 양손의 자유를 준 획기적인 제품이었다.
사슬처럼 꼬인 금속 체인과 잠금 장치인 ‘마드모아젤 락(Mademoiselle Lock)’이 특징인 ‘샤넬 클래식 2.55’은 최고의 단순함과 최상의 품격으로 모든 연령대의 여성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자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 되었다.
이효리, 고현정, 서인영, 황정음 등 유명 여성 연예인들이라면 한 두 개씩은 소장하고 있으며, 가격은 빈티지 미디엄 기준으로 2008년엔 300만 원대였으나, 현재는 700만 원대를 호가하고 있다.
세기의 여배우에게 헌정한 에르메스의 ‘버킨(Birkin Bag)백’
2억 3천만원에 낙찰된 에르메스 히말라야 백
1837년 티에리 에르메스(Thierry Hermès)에 의해 설립된 에르메스(Hermès)는 1867년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Exposition Universelle)에 안장과 마구용품을 가지고 참가하여 1등상(First Class Medal)을 수상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3세대 경영자 아돌프 에르메스(Adolph Hermès)와 에밀 모리스 에르메스(Emile Maurice Hermès)는 산업화와 현대화로 인해 마차를 대신하는 자동차의 수가 점차 증가하자, 고객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반영하여 여행가방, 자동차용품, 의류, 실크 스카프, 벨트, 장갑, 보석, 팔찌, 시계에 이르기까지 제품 영역을 다양하게 확장시켰다.
‘새들 스티치(Saddle Stitch ;마구 안장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바느질 기법)’ 기술과 아르헨티나 카우보이들이 사용하는 새들백(Saddle Bags)에서 영감을 얻어 개발한 오뜨 아 크루아(Haut A Courroie) 백은 모나코 왕비 그레이스 켈리의 이름을 딴 ‘켈리’ 백으로 유명했다. 훗날 ‘버킨(Birkin) 백의 원형이 되었다.
에르메스 '버킨백'의 탄생에는 잘 알려진 일화가 있다. 평소 에르메스의 가방을 즐겨드는 여배우 제인 버킨(Jane Birkin)이 비행기 안에서 가방 속에 든 물건들이 쏟아지는 바람에 “가방이 좀 더 크고 주머니가 달렸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투덜거리자 마침 그 이야기를 들었던 에르메스의 CEO '장 루이 뒤마(Jean Louis Dumas)'가 한 달 후 그녀에게 선물한 백이 '버킨'백이었다.
수 천 만원부터 수억 원에 호가하는 가격도 천문학적이지만, 돈이 있다고 해서 아무나 구입할 수도 없다는 버킨백은 축구스타 '데이비드 베컴(David Beckham)'의 아내 '빅토리아 베컴(Victoria Beckham)'이 무려 백여 개나 가지고 있다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몇 년 전, 동물 보호단체가 폭로한 잔인한 악어가죽 채집 영상을 본 제인 버킨은 “국제적인 기준이 마련 될 때까지 버킨백에서 내 이름을 빼 달라.”고 에르메스사에게 요구했다고 한다.
루이 비통의 첫 여행가방
1800년대 프랑스의 귀부인들은 여행할 때 수십 미터 길이의 드레스들을 나무상자에 담아 마차나 기차에 싣고 다녔다. 목공소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나무를 잘 다루었던 루이 비통(Louis Vuitton)은 귀부인들을 위한 섬세한 여행용품 포장 기술로 최고의 패커(Packer)로 인정받아 1854년 파리 뤼 뇌브 데 까푸신느 4번가에 첫 부띠끄를 오픈했다.
19세기 산업혁명으로 해양과 대륙간의 여행과 이동이 활발해지면서 루이 비통은 여행 가방의 새 역사를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1858년 루이 비통이 제작한 사각형의 트렁크 ‘그레이 트리아농 캔버스(Grey Trianon Canvas)’는 둥근 형태의 가방 일색이던 시장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루이 비통 제품의 대표 이미지로 알려진 모노그램 캔버스(Monogram Canvas)는 모조품 방지를 위해 1896년에 특별히 개발된 것이었다.
오드리 헵번
1930년 첫 출시 된 이후,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는 스피디 백(Speedy Bag)은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이 가장 사랑한 백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넉넉한 수납공간과 심플한 외양이 특징인 스피디 백은 사용할수록 고급스러워지는 가죽 특유의 태닝 효과와 견고함으로 엄마가 쓰다가 딸에게 물려주는 가방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루이뷔통의 네버풀 MM은 좀 사는 젊은 엄마들이 기저귀가방으로 가장 선호하는 제품이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수납공간이 넓어 이것저것 쑤셔 넣고 다니기가 편하고 명색이 명품이라 폼도 나기 때문이다. 지퍼 없이 가방만 덜렁 있던 구형과 달리 신형은 파우치가 추가되어 나오는데, 덕분에 가격도 1/3가량 인상되어 매장 가격 150만 원대에 판매되고 있다.
나의 명품 기저귀 가방
늙은 딸이 늘그막에 애엄마 되어 버둥거리는 것이 안쓰러웠던 내 엄마는 남부럽지 않게끔 손자 옷이랑 내 잡화들을 각종 명품으로 채워주셨는데, 정말 최악으로 진을 빼놓는 것이 뤼뷔똥 가방 시리즈였다.
두꺼운 가죽 손잡이에 쇳덩어리들로 마감이 된 똥가방은 아기를 업고 안고 다니는 아기엄마가 들고 다니기에 정말 똥 같았다. 가방 자체가 무겁다보니 메고 있으면 어깨가 빠질 것 같았고, 칸막이가 없어서 가방 안은 늘 뒤죽박죽이었다.
남들은 벡화점 명품관 매니저의 섬세한 365일 케어서비스를 받는 맛에 명품을 들고 다니는지 몰라도, 나는 두 세 번 들고 처박아 놓았다가 결국 벼룩의 간을 빼먹는 중고샵에 팔아버렸다.(엄마, 죄송해요 ㅜㅜ )
네버풀의 막강한 경쟁 상대인 고야드 생루이백은 구매할 수 있는 매장이 한정된다는 점과 뤼뷔똥과 비슷한 가격대이지만 소재가 PVC비닐이라는 점, 그리고 원체 가방 자체가 부티가 나지 않기 때문에 짝퉁이 널려있다는 점에서도 네버풀과 생루이백은 기저귀 가방으로 쓰이는 운명을 타고 났다고 할수 있다.
결국 내가 늘 메고다닌 기저귀 가방은 유니클로에서 50% 세일할 때 산 나일론 가방이었는데, 어찌나 질기고 튼튼하던지, 십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거의 형태 변화 없이 추억의 물건들과 잘 보관되어 있다.
나도 비싼게 좋더라
비싼게 확실히 좋더라는 말은 맞다. 돈이 돈값을 하더라는 말도 맞다. 하지만 그 돈도 제대로 된 가치를 발휘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
똥 싼 기저귀 담을 가방이 나사에서 개발한 최첨단 소재로 스스로 똥의 무게와 냄새를 가늠해 아이의 건강을 체크해 주는 기능을 탑재하고 있지 않은 이상, 10만 원 이상의 가격은 허영이다.(5만원 하려다가 요즘 물가를 감안함.)
기백만원짜리 유모차와 카시트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아기의 안전과 생명이 직결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단순히 아기용품을 담을 가방이라면 메이커와 가격보다는 소재와 기능을 중시해야한다.
사람들은 자꾸만 ‘요즘 아이들이 문제’라고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허영과 오만으로 가득 찬 엄마에게 자라난 아이들’이 문제가 된다. 그 과시욕과 대리만족 때문에 초등학교 아이들이 하루에 서 너 군데씩 학원을 다니고, 백 만 원이 넘는 자전거를 장난감 사듯이 하는 것이다. 자랑을 할 대상은 있지만 친구는 없는 아이들을 누가 그렇게 만들었을까.
요즘 한창 문제시 되는 ‘미미쿠키’ 사건도 사건의 쟁점이 무엇인가 보다는 가짜 유기농 제품을 비싸게 사먹으려고 호들갑을 떤 엄마들에게 오히려 화살이 돌려지고 있다. 맘충. 이 말은 정말 맘이 아프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면 명품을 버리자. 비싼 차에 아이를 모시고 다니지 말고 걷게 하자. 그러면 빈부의 격차가 줄어들 것이고, 아이들 사이에서 경쟁률도 줄어들 것이고, 사람들은 사이좋게 살 것이고, 정치인들은 싸움거리가 없어서 멸종 될 것이다.
사람이 명품이 되고 순수한 자연이 최고의 럭셔리가 되는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