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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요나 Oct 24. 2018

오십에 인싸되기

엄마, 나 인싸됐어!

처음엔 무슨 말인가 했다. 인싸라니, 디씨 인싸이드? 이녀석 요즘 야동을 슬금슬금 보더니 디씨까지 가입했나? 했더니, 인싸는 인싸이더라는 말로 속칭 인기가 많은 사람을 뜻한다고 한다.

초등학교 6학년이면 요즘 아이들은 모르는게 없고 못볼게 없고 못하는 말이 없는 시기이다.

학교에가면 키가 엄청 큰 아이, 변성기가와서 삼촌목소리를 내는 아이, 중2병이 와서 세상 초연하게 자신의 길만 가는 아이도 있다.

사춘기가 위태롭게 보이는 아직 어린 청소년들에게도 자기들끼리 소통하는 방법이 있고, 인기를 얻기 위해 나름 투자를 하는 아이들이 생겨난다.

여자 아이들은  파마를 하고 벌써 화장을 하고 다니고, 남자 아이들은 일상복은 아이다스, 자전거는 픽사, 게임은 베그(베틀 그라운드) 하는 식으로 인기있는 아이들만의 공유창이 생긴다.

님좀짱, 쩔어, 이런 말들은 원시인들이나 쓰는 용어가 된지 오래다. 이지메, 오타쿠, 히키코모리같은 일본말을 그대로 사용하던게 엊그제같은데, 이젠 왕따, 혼족, 갑분싸, 핵인싸처럼 우리말을 줄임말로 쓰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이러다보니 엄마들은 헷갈린다. 자식하고 대화를 하고 싶어도, 오늘 스팀으로 게임을 하는데 상대방이 핵을 쓰는 바람에 노잼이었다고 말하는 아이의 입만 쳐다보게 된다.

인싸이더의 반댓말은 아웃싸이더다. 겉도는 사람. 왠지 고독해보이고 뭔가 있어보이는 뉘앙스를 풍기는 그 명칭을 우리때는 멋지다고 생각했다. 고대로 가면 프랑스의 국민배우 알랜 들론이 있었고, 서부시대에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있었다. 그리고 전근대를 풍미한 세기의 영화배우 제임스 딘의 아나키하면서도 노스텔지어에 물들어 있는 시크한 표정과 얼핏 모성애를 자극하는 (이유는 눈이 나빠서) 잔뜩 인상을 쓴 그 모습이 젊은 여성들의 흠모의 대상이었다.

물론 나는 그렇게까지 늙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젊었을때 훈남의 계보는 주로 홍콩 배우들이었다. 미소 한방이면  팬들 백명은 쓰러뜨릴 것 같던 장국영. 그가 동성애자라는 것에 여자들은 슬픈 한숨을 쉬었고, 만우절날 날아든 사망소식에 “아무리 만우절이라도 농담할게 따로 있는거 아냐?”라고 화를 내게 만들었던 잊을 수 없는 추억의 배우였다. 그땐 홍콩 배우라면 다 좋아하지 않았나, 주로 형사역으로 나왔던 이수현, 코미디의 제왕 하지만 정극 역시 출중했던 주성치, 적룡, 이연걸, 장첸, 유덕화, 금성무, 양조위.

하지만 누구보다 멋지고 인기가 있었던 배우는 이마도 주윤발 이었을 것이다. 훤칠하게 큰 키에 얼굴 가득 주름을 만드는 활짝 웃음, 화가나면 웃음기가 싹 가신 얼굴에 성냥개비를 씹으며 쌍권총으로 적들을 수도 없이 날려버렸지. 따발총도 아닌데 어디서 쉴새 없이 총알이 나오는지, 주윤발이 계단에서 미끄러져 내려오면서 총을 쏘는 장면은 잊을 수가 없다. 보통 여자들은 액셕물을 싫어할것 같지만, 그 대상이 주윤발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살짝 좁아보이는 어깨를 롱코트로 커버하고 검은 선글라스를 살짝 내리며 장난스레 웃는 모습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었다.

인기있는 배우들은 모두 인싸다. 대중이 항상 바라보는 곳에 위치한 사람들은 원치 않아도 인싸가 될수밖에. 영화속, 드라마속에서나 고독한 연기를 하는 것이지 실제의 인생은 모두가 지독한 팬들의 애정공세에 시달리는 매 일분일초가 공개되는 인싸의 삶을 산다.

요즘 큰 화제가 배우 주윤발이 자신의 재산을 모두 사회로 환원하겠다는 기사였다. 평소에도 자가용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저렴한 옷을 사입고 길에서 만난  팬들과 스스럼없이 사진을 찍는 주윤발 아저씨. 그러고 보니 주윤발도 벌써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이다. 그런 나이에 노후대책은 커녕 전재산기부라니. 이렇게 멋있는 인생을 살아가는 그가 어찌 인싸가 아니겠는가.

우리는 흔히 그렇게 생각한다. 티비에 나온 유명한 맛집에 꼭 가봐야하고 유명한 메이커는 꼭 입거나 신어야 하고, 유행하는 것은 꼭 나도 따라해야만 인싸가 되는거라고.

그래서 엄마들은 우리 아이도 인싸가 되길바라며, 그 뒷바라지로 학교어머니회장을 하고 회계를 맡고, 엄마들을 만나 뒷끝작렬하는 비밀없는 비밀얘기를 하고, 함께 밥도 먹고 술도 먹고 그러고 다닌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 아이가 왕따가 될지도 몰라, 하는 불안한 마음으로.

운전하는 여자들이 늘어나면서 차량으로 아이 등하교를 시키는 엄마들도 많아졌다. 건널목이 위험해서요, 찻길은 위험해서요, 차가 위험해서요. 넘어지는게 위험해서요.

애들은 차량안에 앉아 아침부터 핸드폰 게임을 하고 정신이 게임 캐릭터와 혼연일체가 된 상태로 등교를 한다. 수업은 대충 들어도 되니까. 우리에겐 보습학원이 있거든요. 후훗!

하교를 하면 저마다 정해진 시간표대로 일사분란하게 흩어진다. 그리고 헤쳐모이는 곳은 피씨방. 이른바 게임세계 속에서 초딩어택이 시작되는 시간인 것이다.

주윤발이 인싸일까, 낸시 랭이 인싸일까?


사람은 타인의 관심이 없으면 살수가 없다. 그래서 과하게 관심을 구걸하는 관종이 생기고, 자신이 관종인지 인싸인지 구분을 못하는 상태에서 무조건 많은 사람들, 무조건 같은 자리에 있고 싶어한다. 그것은 인간이 사회적동물이라는 좋은 증거가 되기도 한다. 세상 혼자살래? 이 말은 너도 빨리 무리에 동참하여 다같이 뻘짓을 해보자꾸나, 우리처럼 안하면 넌 왕따야, 라는 경고와 협박을 담고있다.

난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지 않는다. 소음이 피곤하다. 혼자 생각할 것도 많고 원고 쓸 시간도 모자란데, 남들이 뭘먹고 어찌 사는지까지 감당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하지만 내 아들은 인싸였으면 좋겠다. 혼자서 뚱하게 내다놓은 보릿자루처럼 혼자 땅바닥만 그리는 엄마처럼 살지말고, 되도록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이야기도 하고 토론도 하고 놀기도 하고 가끔은 싸우기도 하면서 인간답게 살았으면 좋겠다.

결국 인싸의 뜻은 인간이 아닌가 싶다. 혼자가 아니라 같이, 별종이 아니라 개성있는, 욕심보다 배려가 많은, 그런 사람들이 많아서 ‘인간’이 되는것 아닐까.

뉴스만 보면 누가 얼마를 횡령하고 어디로 빼돌리고 다치고 다치게 하고 민심이 흉흉해서 이거 원 세기말의 아마게돈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하루종일 든다.

이런 세상에 인싸같은 인간들이 많아진다면 우리 아이들은 좀 더 좋은 세상에서 살게되지 않을까. 바로 그런 사회를 만들어 주기 위해 어른들이 올바르게 노력해야겠지.

오십에 인싸되긴 그른것 같고, 아들아 에미는 다음 생을 기약할테니, 너는 기쁨, 희망, 노력으로 네 스스로 빛나는 인싸가 되거라.

엄마는 이생망이야. 다음 생에는 꼭 예쁜 인싸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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