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일등으로 입학하기
<어머니의 이름으로 2011.11.29>
그저 시골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서울에서 가까운 파주에 살았던 적이 있었다.
그곳은 누렇게 익은 벼이삭들이 황금빛으로 물든 들녁 어디를 가나 남과 북의 병사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서로 총구를 겨누고 서 있는 공동경비구역 JSA같은 곳이 아니라, 이제 막 시작된 신도시 공사로 산도 들도 죄 훵한 등짝을 드러내고 하루종일 덤프트럭들이 지나다니는, 도시와 시골의 중간 어디쯤 와있는 애매한 동네였다.
나는 우리가 살던 금촌동 아파트 단지를 농담삼아 '맨하탄'이라고 불렀는데, 그 이유는 드 넓은 논과 밭과 공사장들 사이에 어울리지 않게 솟아 있는 현대식 아파트 단지들이 마치 허허벌판 위의 섬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 동네 사람들은 실제로 아파트 단지 입구의 작은 상가 일대를 '로데오거리'라고 불렀다.
총 길이 500미터 남짓한 좁은 골목 양쪽으로 빵집 약국 식당 옷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로데오 거리는 매일 오후가 되면 소일거리 없는 변두리 소도시의 유모차 부대와 자전거를 탄 아이들로 꽉 차곤 했다.
시청과 경찰서 소방서같은 관공서가 몰려있어 파주의 행정중심이던 금촌동 신주공 아파트 사람들은, 아파트 평수와 가까이 있는 고만고만한 학교들의 수준과 교통의 편리함등을 기준으로 단지별로 등급을 매겼다.
강을 바라보고 있는 (그 강이라고 불리는 하천에 딱 한번 내려간 적이 있는데, 코를 찌르는 악취에 아주 기겁을 했었다. 하지만 그 동네 사람들은 마치 동부이촌동 사람들이 한강고수부지에서 운동을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매일 기름 둥둥 뜬 하천가에서 조깅과 산책을 했다.) 7단지는 우월한 조망과 최고의 학군을 자랑하며 제일 수준 높은 행세를 했고, 임대아파트가 섞여있는 우리가 살던 5단지는 길 건너에 주택단지까지 있어서 제일 수준 낮은 취급을 받았다.
이렇게 파주 최고의 학군과 시설을 자랑하는 금촌 시민들 답게 젊은 엄마들의 학구열도 대단해서, 아이들은 아침이면 일제히 모두 제 등치만한 책가방을 메고 노란색 유치원 버스를 타고 등원을 하고, 오후가 되면 집으로 돌아와 홈스쿨이라고 불리는 과외를 몇개씩이나 하는게 일과였다.
하루는 가베, 하루는 수학, 하루는 영어, 하루는 한글 그리고 짬짬이 미술, 축구등 예체능. 골프와 승마를 해야 한다는 엄마까지 있었으니.
친구랑 뛰어 놀 시간은 커녕 앉아서 간식 먹는 것도 시간표에 맞춰서 하는 유치원 아이들이 벌써 한글을 다 떼고 수학도 잘한다고 으쓱해 하는 엄마들은 초기 강박증이 분명해 보였다.
나는 지지리도 공부를 못했으니 너는 반드시 잘해야 한다는 보상심리 때문일까?
아니면, 마음만 먹으면 오늘 밤에라도 개성으로 월북할 수 있는 거리에 살다보니 통일의 필요성이 누구보다 절실해져서, 통일 되는 그날이 오면 네가 썩을 곳은 이 파주가 아니야,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우린 유라시아 대륙을 누비는 거다! 뭐 이런 꿈을 꾸면서 제2 외국어와 수리에 능통한 차세대 인재를 만들고 싶어하는 것일까.
피주에 가면 논길을 달리며 메뚜기도 잡고, 시냇가에서 친구들과 멱도 감고, 가을엔 코스모스 핀 들길을 걸으며 가을이라 가을 바람...하는 가을동요를 부를테다.라고 가슴 부풀어했던 나는 대치동 아줌마들 못지않게 교육열에 불타는 파주 사람들, 정확히는 파주의 젊은 엄마들을 보며 할말을 잃어버렸다.
글을 쓰다보니 파주가 마치 황폐한 공사판 위에 싸이코들만 모여사는 것처럼 묘사가 되었는데, 절대 그렇진 않다.
어디나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살듯이 그곳에도 강박증, 편집증, 자기모멸증, 근거없는 우월증등등 여러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을 뿐이다.
마구잡이 공사로 망가져 있는 곳은 파주에서도 아주 적은 면적인 금촌과 교하와 운정 신도시뿐, 대부분의 파주는 논과 숲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나는 그렇다.
집 주고 돈 주고 직장까지 준다고 해도 아프리카 세렝게티에 가서 사자와 이웃하고 살기는 싫은 것처럼, 내게 있어 파주는 집값 싸고 물가 싸고 공기 좋고 살기 좋은 곳이라도 아무리 선전을 해대도, 교통 불편하고 편의 시설 부족하고 몇달만에 온 가족이 비염에 천식을 달고 이사를 나오게 된, 공사판 먼지 때문에 하루종일 콧물을 줄줄 흘리고 재채기를 해대던 괴로운 동네일 뿐이었다.
계약기간이 끝나기가 무섭게 우린 다시 일산으로 이사를 나왔다.
그렇게 우리들은 귀향을 한 것이었다.
난 '조기교육과 선행교육'이 아이를 망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굳이 핑크 플로이드의 'Another brikes in the wall'의 뮤직 비디오를 보지 않더라도, 똑같은 교실에 똑같은 모습으로 앉아 똑같은 교육을 받는 것은, 소시지 공장에서 맛만 다른 똑같은 소시지가 되는 것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하지만 이사 때문에 어린이집을 그만 둔 아이와 24시간 내내 샴쌍둥이처럼 들러붙어 극기의 시간을 보내고 난 나는, 아들한테 시달리다 산채로 말라 죽었다는 희대의 사건으로 신문에 나는 것보다 아들이 소시지가 되는 편을 택하고 싶었다. 오죽하면!
하지만, 유치원들의 학기가 이미 시작된 10월에는 들어갈 곳이 없었다.
더 놀라운 것은 내년 유치원에 입학을 하려면 지금부터 입학설명회를 듣고 원서를 접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라고 예외일 수 없었다.
엄마가 홍대에서 좀 놀았다고 해서 내 아이가 십칠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시설좋고 교사진도 좋은 일급 유치원에 척하니 붙는다는 보장은 없는 것 아닌가.
나는 인터넷으로, 귀동냥으로, 유치원입학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마치 복잡한 수학공식같았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에다 앞으로 우리가 이사갈 가능성이 있는 동네를 더하고, 그 주변의 초등학교 수를 곱한 뒤 반경 이킬로 이내에 있는 유치원으로 나눈다.
그리고 나온 답에서 오답의 확률이 있는 유치원들을 제외하고 남은 서너군데가 가능성이 많은 답으로 일차 채택 되고, 결국 사전답사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는 유치원이 최종 선택을 받게 되는 것이다.
유치원이 이럴진데 초중고등학교는 오죽하겠는가.
이 어마어마한 공식들로 가득찬 아이들의 보육과 교육의 세계가 과연 쉬울 것이라 생각하는가?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 엄마들이 '아이와 집안일' 이 두가지 밖에 생각을 못하는 이유다.
모든 엄마들에게 공학 계산기를 지급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매주 한번씩의 주차와 일주일간의 생리휴가도.
유치원 원서 접수를 하기 전날 밤, 내복에 두툼한 목도리로 중무장을 하고 입학원서와 서류들을 담은 백팩을 등에 매고 특수임무를 맡은 안젤리나 졸리처럼 집을 나섰다.
밤 열두시, 유치원 앞에 아직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근처 찜질방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새벽 네시경 다시 유치원으로 향한 나는 놀라서 기절할 뻔 했다.
가로등도 없이 깜깜한 유치원 문앞엔 이미 수십명의 사람들이 돗자리에 담요까지 뒤집어 쓰고 줄을 서 있었던 것이다.
7세반은 8명밖에 자리가 없다고 했는데, 이 사람들이 모두 7세 학부모는 아니겠지, 난 울고 싶은 심정으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일일이 몇세 쓰러오셨어요?하고 물어보러 다녔다. 다행히 그 시각까지 7세 원서 접수를 하러 온 사람은 나밖에 없었고,그렇게 내 아들은 1번으로 입학확정을 받을 수 있었다.
참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파주에 사는 동안, 좋은 유치원 보내려고 결사적이었던 그 엄마들, 수학에 영어에 한글에 숨쉴틈도 없이 공부를 시키던 열혈 엄마들을 그렇게 삐딱한 시선으로 쳐다봤던 나였는데, 찜질방에서 밤을 샌 초췌한 모습으로 아침햇살을 받으며 아들의 유치원 입학확정서를 손에 들고 대학입학이라도 한냥 기뻐하는 내 모습은 그 엄마들과 다를게 전혀 없었다.
아직도 지나친 선행교육이나 과열로 치닫는 사교육은 반대하고 있지만, 이제는 나도 다른 사람들의 교육방식에 좀 더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겠다.
높은 교육열과 치열한 경쟁속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뽑혀야 하고 누군가는 떨어져야 한다. 그게 내 아이가 될지 내 친구의 아이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들 애를 쓰고 있는 것인가 보다. 내 아이는 아니었으면, 내가 대신 해서라도 내 아이의 자리를 채워 주었으면. 그것은 엄마라는 이름으로 사랑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었다.
누구나 살아온 날들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처해있는 현실이 다르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그들이 틀린 것은 아니리라. 나 역시 그들과 다르다고 해서 나 자신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오늘도 우리 엄마들은 내 자식을 위해 최대한의 힘을 짜내어 아이의 앞 길을 밝혀주려고 한다. 나는 뜨거운 불덩어리로 타서 사그라져도 상관없는 굳건한 촛불처럼.
추운 밤 꽁꽁 얼어 눈 사람이 되더라도 꼼짝않고 내 아이를 위해 불을 밝히고 서 있는 한 사람.
엄마. 바로 당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