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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요나 Sep 18. 2018

내게 담배를 허하라

날씬한 여자만 대접받는 세상

만약에 누가 담배를 피우고 날씬하게 사는 것과 담배를 끊고  뚱뚱하게 사는 것 중 한가지를 고르라고 한다면, 난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할 자신이 있다. 난 날씬한 흡연녀로 살겠오. 그것도 아주 잘.

언제부터인가 살이 찐 여자는 극혐의 대상이 되어, 본인이 원치도 않고 관심도 없어도 메갈, 김치녀, 쿵쾅이들 같은 비하의 대상이 되어야했다.

빅사이즈 모델이 관심을 받고 노메이컵의 배우들이 탈코르셋의 캠페인을 하고 있지만, 많은 여자들이 인터넷에서 알고 싶어하는 것은, 일주일안에 7kg을 감량하는 방법과 가히 특수분장 수준의 화장법 그리고 가격 참신한 강남 성형외과의 후기이다.

그래서 모든 포털사이트는 다이어트를 권장한다. 아니 권장의 수준을 넘어 강요한다. 뉴스를 보러 들어갔는데 정작 눈에 띄는 기사는 어느 탤런트는 출산 한달만에 20kg을 뺐더라, 40대 아줌마가 20대로 보이는 동안의 비결을 모르면 너는 찐따, 그놈의 연예인들은 어찌나 살을 잘 빼고, 방송은 하지도않던데 어디서 돈을 벌어서 여행도 잘 다니는지, 연예인들 집구경, 여행기, 허벌나게 먹어대는 것만 보고나면 나만 당장 베트남행 땡처리표를 끊지도 못하고, 대한민국 10대 빵집에서 단팥이랑 버터가 줄줄 흐르는 빵도 못먹으러가는  패배자가 된 기분에 후두암의 원인이 되고 사랑하는 가족을 슬프게 하는 담배를 다시금 피우게  되는 것이다.


흡연은 만병의 근원이며, 간접흡연으로 인한 피해는 이루말할수 없을만큼 큰 범죄이며, 이 세상에 담배를 피우는 인간들은 몽땅 그동안 버린 담배꽁초속에 잠수하고 있다가 백년에 딱 십분만 밖으로 나와 숨을 쉬는 끽연지옥의 벌을 받아야한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잘안다. 나도 그랬으니까.

잎에서 가는 놈이 담배를 피우면서 걸어가면 뒤에서 고스란히 그 연기를 다 맡으며 제발 저 놈이 보도블럭에 걸려 자빠져버리기를 빌었다.

아파트 욕실이나 베란다로 올라오는 담배연기에는 환풍기를 24시간 돌리고, 에프킬라 한통원샷이나, 한밤중에 베란다 물청소로 대응했다.

계단아래에서 담배 피우고 침뱉는 중학생들을 심하게 훈계하고 나서, 혹시 애들한테 보복 당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한적도 있었다.(결국 한달만에 이사하여 쫄보임을 입증함)

불과 십년인데 세상은 강산이 다 없어지고 거대한 쇼핑몰과 아파트 단지로 가득하고 초미세먼지로 덮힌 세상으로 바뀌었다.

카페마다 필수공간이었던 아늑한 흡연구역도 없어지고, 길거리에서의 흡연도 금지되었다. 그대신 담배값은 기절초풍하게 올랐고, 그나마도 피울곳이 없어서 동네 흡연인들은 같은 장소에서 자주 마주치는 얼굴들과 친분을 쌓을 지경이 되었다.


난 아들이 사학년이 되었을 때 엄마의 흡연에 대해 얘기를 했다. 술을 못마시고 사람들을 싫어하는 엄마는 혼자 글을 쓰고 담배를 피운단다. 그게 엄마가 행복한 시간이야. 네게 이제 이야기를 해야할것 같아.

아들은 진지한 얼굴로 이해할수 있다고 했다.

내 아들은 온몸에 타투가 있고 담배를 피우는 작가엄마와 산다. 다른 아이들이 너네 엄마 문신있더라, 깡패냐!하는 말에도 신경쓰지 않고, 오히려 “엄마, 사람들 볼까봐 걱정하지말고 숨어서 담배피우지마. 난 아무렇지도 않아.”라고 쿨하게 나의 부담을 덜어준다.

세상에는 나쁘다고 하는 것들이 셀수 없이 많다. 아마도 우리가 먹는 먹거리만 해도 몸에 해로운 것들을 먹지 말라고 한다면 모든 치킨과 피자와 햄버거와 빵집과 분식집들은 문을 닫아야할 것이다.

커피도 사실 하루 두잔이상은 몸에 좋지 않다.

가장먼저 금해야 할 것이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발명품 ‘믹스커피’일 것이다.


누가 보는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치해를 주지않기 위해 숨어서 담배를 피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구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도 받지 않는 것도 불가능하다.

가끔은 불편함도 감수해야하는 것이 세상이다.

하지만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싫어한다는 이유로 모르는 사람에게 막무가내의 혐오감을 표출해서는 안된다. 내게 좋은 것만 있다면 당신은 이미 죽은 것이다. 그곳은 천국일테니까.


가끔 피우는 담배가 깊은 한숨을 대신한다.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것이 아니라면 내게 담배를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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