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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nathan Feel Jan 10. 2018

타임스 업,
'블랙'이 여는 새로운 세상

[밤9시의커피] 샤넬과 전혜린, 그리고 '블랙'이 섞인 커피 한 잔

어떤 날은 마구마구 카페에 가고 싶어 진다. 비가 올 때, 낙엽이 우수수 쏟아질 때, 햇볕이 넘쳐날 때, 구름이 멋진 날, 너무 추운 날……. 모든 날씨는 카페를 부른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거기에 있다. - 이명석, 《모든 요일의 카페》 중에서


그들은 이곳에서 모이곤 한다. 

한 번에 함께 오는 건 아니다. 하나둘 따로 온다. 

물론 때로는 혼자, 커피를 즐기는 경우도 있다. 자연스러운 모임이다. 

<밤9시의커피>는 모종의 아지트인 셈이다. 무슨 현안에 따라 움직이는 조직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친목 모임도, 비밀 결사체도 아니다. 그냥, 그들은 '따로 또 같이'를 반복한다.  


때론 그들은 격론을 펼치기도 한다. 

몇 주 전에 아예 새벽을 넘길 기세여서, <밤9시의커피> 클로징을 맡겼다. 

옛다, 실컷 떠들다가 문 닫고 가세요. 당신들의 천국으로 삼아요.

 

다음날 뭔 이야길 했는지 물어보니, 꼴딱 밤을 새웠단다. 동이 틀 때까지 다양한 이야기 꽃을 피웠단다. 뭔지는 몰라도 재미있는 그들이다.


가만 들어보면, 주제도 다양하다. 

선거와 민주주의, 사랑의 시작과 종말, 학교(교육)의 불가능성, 새로운 경제 체제의 가능성, 음악과 아이돌에 대한 품평, 여성과 남성의 차이, 적당한 삶을 위한 조건 등 그야말로 종횡무진, 종횡사해다.

다양한 담론이 오간다는 것, 견해의 다름(차이)을 인정한다는 것. 

이들이 느슨하게 계속 만날 수 있는 요인이 아닐까, 나는 생각해 본다.  


오늘은 3명이 모였는데, 어떤 여성들 그리고 새로운 세상에 관한 이야기로 왁자지껄하다. 

커피를 가져다주면서 잠시 껴들었는데, 가브리엘 코코 샤넬과 전혜린이다. 

말하자면, 20세기 여성해방에 기여하거나 그것을 위해 저항한 이들. 


아 그렇구나. 1월 10일, 두 사람 기일이다. 

전혜린은 1965년, 샤넬은 1971년에. 

물론 차이는 있다. 전혜린은 31세,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홀연히 사라졌고, 

이것저것 누리며 87세로 생을 마감한 샤넬의 마지막 말은, "결국 사람은 죽는구나!".

가브리엘 코코 샤넬

우선 코코.(샤넬은 가난한 살롱 가수 시절 붙여진 애칭을 싫어했지만, 코코는 영원히 그를 수식하는 이름으로 남았다.) 

커피 하는 입장에서 비약하자면, 그녀는 테이크아웃을 융숭시킨 시발점이다.

무슨 말이냐고? 

생각해 보자. 이른 아침, 머리를 찰랑이며 회사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서는 여인이 있다.

검은 트위드 재킷을 걸치고, 무릎을 약간 넘는 길이의 치마와 레깅스로 조합한 그녀. 

숄더백을 어깨에 걸치고 있다.

회사 부근 위치한 커피하우스에서 마다가스카르 천연바닐라빈라떼 한 잔을 시킨다. 

잠시 향과 맛을 보더니, 테이크아웃 잔을 들고 회사로 들어선다. 

천연바닐라빈과 커피의 조합이 하루의 시작을 향기롭게 한다.


그 모습, 코코 덕분이다. 

그는 여성의 몸과 마음을 죄던 코르셋으로부터 여성들을 탈주시켰다. 

또 남성복 전유물이었던, 여성들은 장례식에서나 점원 의상으로만 입던 검은 옷을 일상화시켰다. 검정의 미적 가치를 여성복에 도입하는, 당시로선 획기적인 시도! 샤넬이 만든 LBD(리틀블랙드레스)에 쓰인 검정은 세련미의 극치로 해석됐다. 그리고 거리를 빗자루질하던 기나긴 드레스를 무릎 위로 올렸다. 핸드백에 끈을 달아서 두 손을 자유롭게 만들었다. 테이크아웃 잔을 들 수 있게끔 했다.

샤넬 2.55

두말하면 잔소리겠지만,

저지 드레스, 카디건 슈트, 샤넬 슈트, 나팔바지, 트렌치코트, 터틀넥 스웨터, 리틀 블랙 드레스, 샤넬 2.55, 샤넬 No.5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이른바 샤넬 스타일. 독창적인 시그니쳐 룩. 

불필요하고 허세 가득한 쓸 데 없는 복장은 꺼져라! 

20세기 복식 혁명을 일군 장본인이 코코였다. 


에브리바디, 샤넬 스타일! 

여성을 옷뿐만 아니라, 시대의 속박에서도 해방시킨 그 스타일.

어쩌면 모든 여성에게, 샤넬 제품이 없을지는 몰라도, 샤넬 스타일은 있다.


"아저씨, 샤넬을 어떻게 그리 잘 알아요?" 의아한 듯 묻는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안에 샤넬이 있거든요. 하하. 샤넬이 세상을 휩쓸 땐, 이런 말도 있었어요. '샤넬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여자는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여자가 아니다.' 몰랐죠? 당신들에게도 샤넬이 있어요! 너 안에 샤넬 있다!"

"이 아저씨, 여하튼 예쁜 여자라면 다 알아요. 밝힘증이라니까. 호호."

"우와~ 날 제대로 파악했군요. 샤넬도 살아있을 때, 커피하우스를 들락거리고 그랬어요. 다른 사람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세계를 생각하느라."

"아, 그래요?" 

"그럼요. 샤넬은 유명세만큼 사교계 거물이었어요. 다들 그녀를 만나려고 안달이기도 했죠. 장 콕토, 피카소, 달리, 스트라빈스키, 헤밍웨이, 콜레트, 그레타 가르보, 마를레네 디트리히... 숱한 문화예술계 인사들과 교류를 나눴거든요. 돈이 많아서 그들을 후원하기도 했고."

"우와~ 우리한테도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 아저씨가 있잖아요. 하하. 샤넬은 장 콕토가 알코올 중독이 됐을 때 치료비를 부담해주기도 했고, 스트라빈스키가 <봄의 제전>을 작곡할 수 있도록 후원도 했죠. 도움을 청하는 사람에겐 도움을 안 주고, 자신이 도와야겠다고 마음먹은 이들한테는 드러나지 않게 도왔대요. 나는 완전히 다 드러나게 도와줄게요. 하하." 

"에이, 밤 9시가 넘으면 꼴랑 1000원에 커피 팔면서, 아저씨가 뭘 도와요? 하하"  

카페 레 되 마고

'레 되 마고(Les Deux Magots)'였다. 

샤넬이 그들과 교감을 나누고 토론했던 커피하우스. 

1875년에 문을 연 이 곳은, 원래 중국산 비단을 파는 가게였다. 

그 비단 가게 이름이 레 되 마고였는데, 카페로 바뀌면서도 그 이름을 유지했다.

19세기에는 베를렌느, 랭보, 말라르메 등 상징주의 시인들이 단골이었고, 

20세기 들어와서도 바타이유, 브로통, 피카소, 생떽쥐베리, 자코메티 등이 이곳을 찾았다.

사르트르, 보부아르 등도 단골이었는데, 

1933년에는 '레 되 마고 문학상'이 제정될 정도로 이곳은 문화적 유산이었다. 


재밌는 건, 커피하우스도 이념에 따라 구분됐다.

20세기 초반 유럽에 파시즘 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지식인들은 레 되 마고에 모여 파시즘을 성토하거나 대책을 논의했다. 

이른바 진보주의자들의 아지트였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도 이곳 단골이었다.

두 사람이 날마다 독서와 토론으로 열을 올리자, 그들을 보기 위한 구경꾼도 들끓었다. 

카페 드 플로르

그런데, 일련의 진보주의자들이 레 되 마고 대신 옆 카페 '드 플로르(de Flore)'를 찾기 시작했다.

당시 보수파들이 주로 드나들던 드 플로르에, 진보 지식인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점령했다. 

더 재밌는 건, 사르트르도 레 되 마고 난방이 형편없다는 이유로 드 플로르로 둥지를 옮긴 것.

자신들 아지트를 느닷없이 뺏긴 보수주의자들이 레 되 마고로 건너갔다.


두 카페, 정체성(?)이 바뀌었다.

레 되 마고는 보수주의자 아지트가 됐고, 드 플로르는 진보주의자 아지트가 됐다.

물론 다소 기계적인 구분이지만, 공간을 만드는 것이 결국 사람이다 보면, 

사람들이 커피하우스라는 공간을 그렇게 규정하는 일도 생긴다.

오늘날도 그런 전통(?)이 좀 남아있단다. 

진보 지식인들은 레 되 마고는 피하고, 반대 진영은 카페 드 플로르를 꺼린다는. 

사소하고도 강박적인 전통. 

물론 관광객이나 여행객들에겐 상관없는 얘기다. 

그저 카페를 둘러보고 벨 에포크 시절의 향수를 느껴보고 싶을 뿐. 


"그러니까, 당신들도 여길 만들 수가 있어요. 당신들을 보고자 사람들이 몰려들 수도 있고." 

"와, 그럼 여긴 우리 같은 얼치기의 놀이터가 되겠네요. 아저씨, 그래도 괜찮겠어요?"

"나는 대세를 따르는 사람이라서 상관없어요. 하하." 

"근데, 샤넬은 어떤 진영이었을까요? 애매해. '애정남(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이 있어도 정하질 못할 거 같아."

"장 콕토가 한 말이 그에 대한 답이 될 것 같은데... 샤넬에 대해 이랬거든요. '매력적이면서 호감을 주고, 인간적인가 하면 잔인하며, 때론 너무 지나쳐 보이기도 하는 여자. 분노, 변덕스러움, 친절함, 유머, 반짝이는 생각, 검소함, 그리고 관대함이 샤넬이라는 다시없을 독특한 여자의 모든 것이다.' 캬, 멋지지 않아요? 다시없을 독특한 여자의 모든 것! 당신들도 좀 그래 봐요. 그럼 내가 커피 후원은 확실히 할게요."

"칫, 뭐야. 그럼 아저씨, 전혜린 알아요?"

"그럼 알죠, 당연히!"

"우와~ 아저씨 같은 사람도 알아요?"

"야야, 말도 말아요. 한참 열풍이 지났을 땐데, 나 때만 해도 전혜린, 하면 자지러지는 여자애들 많았어요. 선망과 동경의 대상이었죠. 요절 때문에 신화가 된 거고.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캬. 감수성 돋는 소녀들이 어찌 뻑 가지 않겠어요?!" 

"장 콕토가 했던 그 말을 한국에 적용하면, 전혜린이 그럴 것 같아요."

전혜린 

내 학창 시절, 

전혜린은 문학소녀들의 만신전 같은 존재였다. 

나는 전혜린을 이십 대 초반에야 읽었다. 

멋도 모르고 읽었고, 강렬했다. 글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허세 같아도, 금세 허물고 말 것 같은 그것은 청춘 그 자체였다. 단단한 삶은 없었다. 인식을 향한 갈망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어찌 이런 글을. 열정과 광기 사이. 

전혜린은 

"1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천재"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 평가에 비해 그녀가 세상에 남겨 놓은 유산은 터무니없이 부족해 뵌다.

인식을 향한 갈망으로 불타올랐지만, 전혜린을 감당하기에 세상은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견고했다. 그의 재능을 받아줄 만큼 세상은 대범하지도, 과감하지도 못했다. 아니, 쫌생이였다.


그는 스스로 휘발했다.  

이 빌어먹을 가부장적이고 경직된 사회의 견고함을 깨부수고자 했으나, 그 이전의 혁명적 여성들이 그러했듯. 세상은 잘나고 멋진 여성을 품지 못한다. 제길.


그는 지인에게 이런 말을 했다. 

"어느 조용한 황혼에 길가의 주막에 쓰러져 있는 집시가 있거든 나라고 알아줘!" 

집시에겐 머물 곳이 없다. 자신에게 칼을 들이대고자 하는 자를 용서하지 않는다. 세상은 아마 애써 그를 무시한 것이 아녔을까.


"오늘 우리 주제가 그거였어요. 어떻게 세상과 싸울까. 여성은 어떻게 이 견고한 세상과 싸워야 하나." 

"나도 도울게요. 뭘 해줄까요? 진한 커피 한 잔, 더? 하하."

"좋아요. 그게 어디야. 커피로 혁명하는 거지, 뭐. 우리가 뜨면 여기도 뜬다니까요. 아저씨, 우릴 믿어봐요." 믿고 싶었다. 그런 세상을 바랐다. 새로운 시대, 낡고 헌 세상과 작별하고 싶었다.


전혜린과 술친구였던 명동백작 이봉구는 그를 이렇게 표현했다.

"우수가 서린 무서운 눈동자로 그 날카롭고도 매혹적인 에스프리를 쉴 새 없이 발했다."

전혜린이 죽기 전날에도 명동 '은성'에서 술을 함께 마셨던 명동백작의 말이 짠하다.

전혜린은 불온한 시대를 온전히 살아내고 싶었다. 새로운 세계를 열어젖히고 싶었다. 인식의 불을 밝히면서. 세상 모든 것을 알고 싶었던 사람이 가진 에스프리는 어떤 것이었을까. 쉬이 만나기 힘든 그 에스프리가 궁금한 건 어쩔 수 없다. 그 에스프리를 맛보고 싶어서 이들은 에스프레소를 끊임없이 마시는지도 모르겠다.   


전혜린의 단골 커피하우스, 학림.

그가 죽기 하루 전, 1월 9일. 

하늘은 맑았지만, 

날씨는 영하 10도 밑으로 떨어질 만큼 추운 날이었다. 

그는 당시 서울대 문리대 부근 동숭동 학림다방 오른편 맨 구석 창가 자리에 앉았다고 한다. 

검은 코트를 입고 검은 혈액을 마시면서 바깥 풍경을 내다보며 있었다.  


지금도 학림은 그 자리에 있다. 

1월 10일, 전혜린이 앉았던 그 자리에 앉아보는 것도 괜찮겠다.

한파가 몰아치는 오늘. 

전혜린과 샤넬을 떠올리고 이야기하는 이들에게, 

나는 은근슬쩍 새로운 세상을 향한, 혁명을 그리는 꿈을 싣는다.

'검은 물결(블랙 웨이브)'이 한국에도 휘몰아치길.

코코와 전혜린은 공통점이 있었다. 늘 달라지고 새로워지고 싶은 갈망. 그것이 그들 삶을 이끈 원동력이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가 되려면 늘 달라야 한다"라고 말했던 코코. "범상한 일상에 만족하지 말고 이상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야 한다"며 자신을 채찍질했던 전혜린. '이상을 향한 동경'이 그들의 삶을 추동했다. '현실이라는 울타리 안에 자족하는 돼지'가 되지 않기 위해. 


그래서 그들이 택한 색깔은 '블랙(검정)'이었다. 블랙에 대한 매혹.    

코코는 블랙을 자신이 만든 옷에 번지게 했다. 블랙은 남성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선언.

전혜린은 '검정 성애자(검은색 덕후)'였다. 검정 원피스에 검정 스웨터, 검정 머플러를 두른 채 거리를 활보했다. 주목을 받는 것은 당연했다. '튀는 여성'에 대한 남성 중심 사회의 비겁한 비난이 뒤따랐지만 그는 블랙을 자신만의 색깔로 묵묵히 밀고 나갔다.


태평양 건너에서 들려온 검은 물결이 그들과 겹쳐졌다.

미국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물결친 블랙 이야기가 빠질 수 없었다.


"아저씨, 지금 우리가 입은 블랙 옷 보이죠? 무슨 뜻인지 알죠?"

"그럴 것 같았어요. 코코와 샤넬과 맞물려 정말 절묘하다고 말하려고 했거든요."

"정말 할리우드 배우들은 멋져요. 특히 거리낌 없이, 불편부당을 감수하고 자신의 의견을 공식석상에서 내지르고 말할 수 있다는 게. 지루하고 진부한 한국 배우 수상 소감과는 정말 딴판이에요." 


'미투'(Metoo, 성폭력·성추행·성희롱 고발 운동) 캠페인과 함께 펼쳐진 '검은 옷 입기'. 골든글러브 시상식에 참여한 배우, 감독, 작가, 제작자, 스탭 등 하나같이 검은 드레스나 턱시도를 입었다. 거물 영화제작자 웨인스타인에게 당한 성추행을 폭로했던 애슐리 주드는 시상식 전 "이제는 성추행과 성폭력을 끝장내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블랙을 입는다"라고 SNS에 썼다. 그리고 이날 블랙은 거대한 물결이 됐다. 침묵 속에 고통받은 성폭력 피해자들을 응원하고 강한 연대를 표시한 풍경. 놀랍고 부러웠다.


블랙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색깔이어야 한다.

블랙으로 뜻을 함께 한 스타들이 만든 물결이 새로운 세상을 당길 것이다. 

그들의 엄청난 몸값이 그저 영화 시장에만 국한된 것이 아님을 보여줬다. 

새로운 세상, 사회 변화를 이끌어가자 목소리를 내고 행동에 나선다. 

간절하게, 두려움 없이. 몸값에 어울리는 가치, 스스로의 가치를 만드는 블랙 파워! 

올해 1월 1일 출범한 '타임스 업(Time’s Up·그 시간은 끝났다)'

성폭력·성차별 등을 없애고자 1300만 달러 기금을 마련해 피해자들 법률 지원을 돕는 단체다. 오프라 윈프리, 메릴 스트립, 리즈 위더스푼 등 할리우드 배우, 작가, 감독, 제작자 등이 참여했다. 공로상을 받은 오프라의 수상 소감은 압권이었다.

"너무 오랜 시간 남성들 힘에 맞서 진실을 말하려는 여성들 목소리는 아무도 들으려고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시간은 끝났다. 이제 세상은 바뀌었고 새로운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누구도 '미투(Me, too)'라고 말하지 않는 시대.

샤넬이, 전혜린이, 그리고 할리우드에서 날아온 목소리가 만들고 싶은 세상.

오늘 <밤9시의커피>를 찾은 이들에게 바란 건 이것 하나였다. 

부디, 너희들만의 스타일을 만들고 살아다오.

못난 어른들이 생떼로 허술하게 만든 세상에 함몰되지 말고. 

'남들만큼, 남들 보기에'를 들먹이며, 똑같아지기를 원하는 꼰대 마수에 걸려들지 않길. 

몰개성 말고 스타일. 샤넬 스타일. 전혜린 스타일. 블랙 스타일.


"자자, 이 커피는 당신들을 위한 것이에요.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있는 샤넬을 위해, 전혜린을 위해."

"아저씨, 오늘 커피 메뉴 이름은 그럼, '타임스 업'?" 


하하하, 한바탕 웃음이 <밤9시의커피>를 가득 채운다. 

오늘, 1월 10일. 블랙 데이라고 붙이고 싶은 날이다.

커피는 검정이다. 블랙커피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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