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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nathan Feel Jan 06. 2019

김광석이라는 詩를 그리고 그리다

[밤9시의커피] 1월 6일, 김광석으로 채워지는 하루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작기만 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 가는 내 가슴속에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서른 즈음에', 김광석 

후우~, 커피 한 잔 들이켜고 담배 한 대 빨고선 나지막이 연기를 내뿜을 수밖에 없는 노래다. 서른 즈음에. 광석이 형의 노래. 서른 즈음을 맞이한 이십 대 후반부터 삼십 대 초반 무렵, 이 노래만큼 가슴을 후벼 파는 노래는 단연코 없다. 하긴 이 노래뿐이겠는가. 


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가던 날을 기억하는 이라면, 

사랑했지만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사랑을 간직한 이라면,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은 사랑을 품었던 이라면,

곱고 희던 그 손으로 넥타이를 매어 주던 때가 어렴풋이 생각나는 이라면,  

떠오르는 이름과 노래가 있다. 김광석과 그의 분신들.

1월 6일은 어쩔 수 없다. 

<밤9시의커피>는 김광석 주크박스로 카페를 채운다.  

내게도 김광석은 잊지 못할 기억이자 추억이었다. 학력고사를 치고 한 소녀가 내게 수줍게 건넨 녹음테이프의 B면 첫 곡이 '사랑했지만'이었다.(A면 첫 곡은 퀸의 'Love of my life'였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동물원과 김광석의 존재와 노래를 그전부터 알았다손, 그때부터 김광석은 이전의 김광석과 달라졌다.

 

이후 '김광석이라는 노래'를 줄곧 좋아했다. 탁한 듯 맑았고, 노래는 세상을 품고 있었다. 노래는 詩처럼 흘렀고, 김광석은 음유시인이었다. 김광석 노래 중 처음으로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사랑했지만'은 내 노래방 주요 레퍼토리가 됐다.  


군대 가기 전후, '이등병의 편지'는 또 얼마나 불러 제쳐댔던가. 학전에 갈 기회가 있었건만 미룬 것이 잘못이었다. 그래도 저주받은 이 군댈 나가면, 광석이 형 콘서트 보러 대학로 학전을 가야지 맘먹고 있었다. 제대 100일이 채 남지 않았던 1996년의 1월 6일 토요일. 침상에 널브러져 토요일을 실컷 즐기고 있던 말년 병장에게 비보가 날아들었다. 김광석이 죽었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TV 뉴스의 미친(?) 소리에 한순간 몸이 굳었다. 저걸 믿으라는 거냐, 뭐냐. 애꿎은 후임병들 붙잡고 저게 진짜냐며, 말이 되느냐며, 펑펑 울었다. 詩가 저렇게 스러질 수도 있구나.


서른 즈음엔, 담배 뻑뻑 피면서 '서른 즈음에'를 주야장천 들었었다. 체 게바라 사진을 보고 김광석 노래를 듣기 위해, 종종 찾았던 홍대입구역 부근의 '들꽃이 있던 자리'. 아끼던 주점이었다. 좋아하는 사람들을 이곳으로 데리고 왔다.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다. 밥전도 파전도 막걸리도, 호평을 받았다. 무엇보다 우리 이야기에 배경음악으로 깔린 김광석이라는 詩가 만남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줬다. 그런 들꽃이 있던 자리도 이제 없어졌나 보다. 김광석 노래를 좋아하던 사장님 덕분에 '김광석이라는 노래'를 잘 들을 수 있었다. 고맙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니다, 과거 부인에 대한 의혹과 마녀사냥이 넘치는 것과 무관하게, 나는 무엇이 진실인지 알지 못하지만, 김광석이라는 詩가 주는 감흥에 여전히 취해 있다. 그가 노래로 건넸던 詩는 때론 사회와 세계를, 때론 삶과 죽음을, 때론 사랑과 이별로 생각을 뻗어가게끔 만들었다.


정말 충격이었다. 1996년 1월 6일. 갑작스러운 비보 이튿날 한 조간신문은 "최근 유명 연예인들의 자살과 사망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인기그룹 동물원의 전 멤버 김광석 씨(32)가 집에서 목매 숨진 채 발견돼 충격을 주고 있다. 6일 오전 4시 30분께 서울 마포구 서교동 98의 12 원음빌딩 4층 김씨집 거실 계단에서 김씨가 전깃줄로 목을 매 숨져있는 것을 부인 서해순 씨(31)가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라고 보도했다.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4집 '일어나'라는 곡에서 "… 일어나 일어나/다시 한번 해보는 거야/일어나 일어나/봄의 새싹들처럼…"이라며 시계추처럼 매일 흔들리는 삶 속에서도 살아있음을 예찬했던 그가, 스스로 목을 맸다는 보도는 믿기 어려운, 인정하기 싫은 소식이었다. 팬들이 "기다려줘"하고 부를 새도 없이 그는 '불행아'처럼 스러졌다. 그리고 시간은 거침없이 흘렀다. 이제 김광석은 서른 둘로 박제된 요절 가수다. 그는 마음에서만, 기억에서만 떠올릴 수 있는 가객이다. 못 다 부른 그의 노래를 더 이상 들을 수 없고 1000회를 돌파한 라이브 현장도 더 이상 없다. 나이 마흔에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서 세계일주를 하고 환갑 때는 번개처럼 번쩍해서 정신 못 차릴 정도의 로맨스를 하고 싶다던 그의 바람은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서 산산이 흩어졌다. 

그러나 '사람의 있을 곳이란 누군가의 가슴속밖에 없다'는 말처럼 김광석과 그의 노래는 사랑했던 팬들 가슴에 남아 있다. <밤9시의커피> 바깥에도 김광석 LP를 세우고 생전에 그가 좋아했던 담배 '마일드 세븐'을 꽂아 놓았다. 그런 의식 자체가 '부치지 않은 편지'랄까. 


그 서정적인 목소리는 마음 안정제 같다. 오르락내리락하던 감정을 경험하거나 한없이 침잠했던 하루에도 그 목소리는 평정을 찾아준다. 혹은 다친 마음을 보듬어 준다. 세상에는 참 듣기 좋은 소리도 많지만 김광석 목소리만큼 감동을 주고 안정을 주는 목소리는 흔치 않다. 비록 그는 세상에 없지만, 그의 노래는 세상에 여전히 울려 퍼진다. 참, 고마운 사람이다. 여전히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고맙다. 그를 향한 세상의 구애는 여전하다. 김광석은 음악뿐 아니라 다양한 영역을 통해 우리의 기억과 가슴에서 살아 숨 쉰다. 


뮤지컬(<그날들>)도 있고, 대구에는 '김광석다시그리기길'(중구 대봉동)도 있으며 영화에도 그의 노래가 삽입됐다. <공동경비구역 JSA>(2002)에서는 '이등병의 편지' '부치지 않은 편지'가 극과 맞물려 아련함을 자아내는 한편 극 중 오경휘 중사(송강호)는 김광석을 들먹이며 남북의 갭을 줄였다. <클래식>에서도 김광석의 음성은 극의 정조를 극대치로 끌어올렸다. 준하(조승우)와 주희(손예진)의 재회에 흘러나온 '너무 아픈 사랑이 아니었음을'은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주희의 오열에 맞물린 이 노래가 슬픔을 배가했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김광석에 대한 오마주로 시작해 만들어진 영화다. 허진호 감독이 김광석의 영정사진을 보고 이 영화를 착안했고 극 중에는 <거리에서>가 흘러나온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에서는 두식(김주혁)이 카페에서 통기타를 연주하며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를 불렀고, <광식이 동생 광태>에도 '말하지 못한 내 사랑'이 흘러나왔다.  


물론 그를 다시 불러오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노래'를 부르는 행위다. 가수는 리메이크나 추모앨범 등을 만들고 일반인은 노래방에서 그의 노래를 부른다. '김광석 다시 부르기'는 그렇게 현재진행형이다. 김광석은 끊임없이 회자되면서 대중문화 자양분 역할을 하고 있다.

'김광석 다시 부르기'는 여전하다. 김광석이 1993년과 1995년 발표한 앨범 명이 '다시 부르기'(1, 2)였다. 많은 선후배 동료 가수들이 그의 노래를 리메이크했고 하고 있다. 해외 가수도 리메이크에 동참할 정도였다. 일본 팝 피아니스트 '이사오 사사키'는 지난 2002년 다섯 번째 음반을 내면서 '이등병의 편지'를 리메이크했다.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 김광석 다시 부르기가 가장 많이 된 곡은 '서른 즈음에'일 것이다. 그 자신이 "가장 만족스러운 앨범"이라고 칭했던 4집(1994)에 수록된 이 곡은 서른에 도달한 자신의 심경을 대변하는 듯하다. 내뿜은 담배연기처럼, 머물러 있지 않은 채, 점점 더 멀어져 가고 잊혀가는 청춘과 사랑을 김광석은 노래했다. 비판적 포크의 마지막 계승자였고, 그의 노래는 세계와 나를 담고 있었다. 사실성을 담보하면서 상투성에서 벗어난 그의 노래는 대중가요게의 급격한 쏠림을 막는 방파제 역할도 했었다. 대중음악 콘텐츠가 다양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의 음악이 갖는 의미는 더욱 컸다.  


오늘 하루 김광석이 감싸는 <밤9시의커피>를 찾아온 모든 사람에게 '김광석 커피'를 소개했다. 노래만큼이나 깊은 맛을 담았다. 리스트레또 더블 샷이 가미된 김광석 커피에 김광석의 이 말을 담은 쪽지를 함께 건넸다.  

"노래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노래를 하면서 사람들과 저의 아픔을 어루만져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밤9시의커피>도 그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함께 담아. 


지금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가 흘러나온다. 딱 어울리는 노래다. 광석이 형, 구름의 저편에서 잘 지내고 있죠?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을 

오직 슬픔만이 돌아오잖아 

무 깊이 생각하지 마 

외로움이 친구가 된 지금도 

아름다운 노랜 남아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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