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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nathan Feel Apr 22. 2018

당신 마음의 서재에는 어떤 책이 있나요?

[밤9시의커피] 4월 23일 세계 책의 날, 커피와 책 그리고 장미

In omnibus requiem quaesivi, et nusquam inveni nisi in angulo cum libro
(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
_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Il nome della rosa, 1980) 중에서 


밤9시의커피는 오늘, 

당신에게 가 닿기 위해 편지를 씁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움베르토 에코는 ‘책과 함께 살기’를 실천한 지성인이었죠. 생전, 그의 집에는 5만여 권이 넘는 책이 있었다고 합니다. ‘책이 있는 구석방’을 넘어서 ‘도서관’이었죠. 그런 그가 한 번은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2층에 위치한 장서각에서 흥미로운 퍼포먼스를 했어요. 자신의 첫 소설(종이책) 《장미의 이름》과 전자책 기기 ‘킨들’을 아래층을 향해 던졌어요. 


당연히 킨들은 산산조각 났고, 《장미의 이름》은 살짝 구겨졌을 뿐이었죠.

에코는 말했어요.

“전자기기의 효용성과 편리함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렇게 취약하다.”


전자책보다 종이책이 오래간다는, 종이책의 불멸을 믿게 하고 싶은 에코의 마음을 담은 퍼포먼스였지 싶어요. 그는 인터넷 발달로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보 필터링과 분별·해석하는 능력이며, 이는 종이책을 통해 가능하다고 덧붙였죠. 그는 기술 발달로 탄생한 전자책을 선호하지 않았어요. 외려 유해하다고 본 쪽이었죠. 돈은 많아도 책을 읽지 않는 ‘지적 빈자(貧子)’를 걱정했고, 이는 곧 ‘리터러시(literacy·획득한 지식과 정보를 이해·해독하는 능력)’ 결여로 정보가 쓰레기로 전락할 것으로 봤어요. 어쩌면 지금 ‘가짜 뉴스’가 창궐하는 이를 믿는 사람들을 예견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책과 장미의 나날

갑자기 왜, 책 이야기를 꺼냈냐고요? 하하, 별 다른 이유는 없어요. 당신이 밤9시의커피를 찾아올 4월 23일이 중요한 날이거든요. 제가 당신에게 책을 읽어주고 커피를 내려주기로 한 그날이,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World Book & Copyright Day)이에요. 


지난 1995년부터 유네스코가 독서증진을 위해 정한 날이죠. 왜 하필 이날 ‘책’을 주제로 삼았을까요. 흥미로운 유래가 있어요. 


1616년 4월 23일, 세계적인 대문호 2명이 눈을 감았어요.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

물론 당시, 영국(셰익스피어)과 에스파냐(세르반테스)가 서로 다른 달력 체계를 썼기 때문에 두 사람이 정확하게 같은 날 떠난 건 아니죠. 영국은 율리우스력을, 에스파냐는 그레고리력을 썼어요.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건 그레고리력이고요. ≪타임머신 없는 시간여행≫을 보면, 1582년 교황청이 율리우스력을 그레고리력으로 바꾸는 칙령을 내렸어요. 그러면서 열흘을 증발시켰죠. 그렇게 두 나라가 다른 달력을 썼고, 정확하게 따지자면 세르반테스가 셰익스피어보다 먼저 세상을 떴을 거예요. 그래도 사람들은 편의에 따라, 두 대문호가 세상을 떠난 날이 같다고 암묵적으로 보는 거죠. 


헌데 두 사람이 살아서 받았던 대접은 정반대였어요. 셰익스피어는 인도와 바꾸지 않겠다는 말을 들을 만큼 부와 명성을 누린 반면, 세르반테스는 글쓰기로 생계유지가 어려워 줄곧 빈궁하게 버텨야 했어요. 어쩌면 그런 것이 영향을 미쳐 셰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불온하고, 상상력 가득하며 용감한 캐릭터가 될 수 있었던 걸까요. 문득 궁금해져요.

그리고 오랫동안 이날은 책과 함께 장미를 나눈 날이기도 했어요. 당신이 찾아올 즈음, 밤9시의커피에는 장미가 있을 거예요. 그것도 이유가 있죠. 에스파냐의 오래된 전설인데,


한 왕국에 큰일이 났어요. 귀하디 귀한 공주가 간혹 인간 세상에 와서 횡포를 부리곤 하던 용에게 납치됐어요. 이전에는 용이 괴롭히면 결혼하지 않은 여성과 어린양을 바치면서 잠재우긴 했는데, 이번에는 용이 공주를 낚아챈 거죠. 왕국은 난리가 났어요. 어떡해, 어떡해, 시름에 갇혀 있을 즈음,


슈퍼히어로처럼 등장한 호르디(Jordi)라는 병사. 


“이 나쁜 용아, 덤벼라.” 용용용 약 올려가면서, 호르디가 칼을 휘두르며 분기탱천, 용의 목을 베었어요. 뎅강. 피가 솟구쳤죠. 그런데 무슨 조화인지, 그 잘린 목에서 장미 넝쿨이 피어났어요?! 의기양양한 호르디는 가장 어여쁜 장미를 꺾어 공주에게 건넸어요. 공주님, 장미를 받아주소서. 호르디와 공주가 이후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 호르디 생일이 4월 23일이었어요. 

에스파냐에선 그래서 중세 때부터 이날이면 장미축제를 열었다죠. 이름 하여, ‘상트 호르디(세인트 조지) 축일’. 장미로 사랑을 고백하는 날이었어요. 그리고 1926년부터 본격적인 지역 축제로 자리매김하면서 책과 장미를 주고받는 전통이 생겼어요. 처음에는 여성은 남성에게 책을 주고, 남성은 여성에게 장미를 줬다가 요즘은 굳이 남녀 가르지 않고, 책 읽는 사람에게 장미를 선물하거나 책을 사면 장미를 딸려주는 이벤트 등을 한대요. 


책의 내음장미의 향기커피의 플레이버 

여담인데, 어느 해 책의 날에는 바르셀로나에 발을 딛고 싶어요. 스페인은 책의 날 기원국이고, 그날 바르셀로나의 가장 서민적인 거리로 알려진 ‘람블라(Rambla)’에는 종이책의 알싸한 내음과 장미의 황홀한 향기가 진동을 한다죠. 그 큰 거리 전체가, 중고나 새 책 할 것 없이 종이책으로 가득한 벼룩시장으로 변신을 해요. 장미도 봄바람 타고 살랑살랑 향기와 자태를 뽐내고. 아, 상상만 해도 흐뭇하지 않아요?! 그날은 50만 권 이상의 책, 400만 송이가 넘는 장미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그야말로, 거대한 북&로즈 페스티벌이자 스펙터클이죠.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거리에서, 


밤9시의커피도 자판을 깔고 싶어요. 책, 장미는 물론이요, 커피를 곁들여서. 책 내음과 장미 향기 가득한 그 거리에 커피 플레이버를 입혀 책과 장미와 커피의 나날을 만드는 상상. 책이 있는 구석방이 아닌 책이 있는 거대한 거리. 거리 자체가 거대한 서점으로 변신하는 거죠. 상상만으로 밤9시의커피는 이미 람블라에 공간 이동해 있네요.   

4월 23책 읽어주는 카페


당신이 찾을 4월 23일, 밤9시의커피는 ‘책 읽어주는 카페’ 콘셉트로 운영해요. 

내가 함께 나누고픈 책은 이미 골라놨어요. 그날보다 하루 앞선 4월 22일, 1997년 아깝게 요절한 김소진. 《아버지의 미소》 《장석조네 사람들》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자전거 도둑》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 《신풍근 배커리 약사》 등등이 당신을 기다려요. 커피는 그 책이 내뿜는 아름다운 내음을 더 짙게 만들어줄 보조제가 될 거예요.  


무엇보다 이날 이곳을 찾는 이들과 함께, 

각자 마음속 서재에 있는 책을 꺼내 다른 사람과 ‘공유’할 거예요. 책은 나를 지탱한 중요한 심리적 자원이었고, 여전히 좋은 친구예요. 어느 날, 세상의 중력으로부터 자발적으로 튕겨져 나갔으나 그전에 형성된 어쭙잖은 관성 때문에 힘들었던 시기, 책은 내 존엄과 자존감을 유지하도록 도와줬고, 세상을 더 넓게 사유하고 바라보게 해줬어요. 살아갈 이유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조곤조곤 들려줬어요.  

아마도, 당신 마음의 서재에도, 그런 책이 있을 거예요.

그날, 당신도 당신 마음의 서재에 있는 책을 꺼내 읽어주세요.


그렇게 우리 각자 마음 서재 공개를 통해, 

내 마음의 책이 다른 누군가에게도 필요한 존재이자 심리적 자원이 되고, 

세상 밖으로 내놓아 공유하면서 더 넓은 세계로 확산되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문학평론가 정여울은 이런 말을 건넸어요.  


“나는 잠시 새로운 책에 대한 조바심을 내려놓고 오직 내가 읽은 책들로만 이루어진 작고 아름다운 마음의 도서관을 가꾸기로 했다. 중요한 것은 ‘읽어 가지는 것’이 아니라 ‘퍼뜨려 나누는 것’이니까.”

당신 마음 서재에 있는 책 한 구석에 고이 접힌 부분을 우리에게 나눠주세요.

퍼뜨려 나누는 것을 통해 우리는 서로 연결된 존재임을 확인할 수 있을 거예요.


봄밤, 

밤9시의커피에는 따스한 커피 향이 마음을 감싸고, 장미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어요. 우리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눕니다. 당신, 그날 찾아와 줄 거죠?   


그리하여, 당신에게 툭 던지고 싶어요. 

당신을 바꾼당신의 생각과 삶을 변화시킨 책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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