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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nathan Feel Nov 12. 2017

그 시절, 내가 사랑했던 여인

[밤9시의 커피] 그녀가 처한 멘붕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

커피를 마실 때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시절, 너무도 짧게 끝나버린 그 시절들이 떠오를 것 같았다. 또한 커피는 단순히 하나의 음료로만 간주하기에는 너무도 중요한 수많은 사건들의 일부로서 존재했다. _ 셰릴 더들리


어떤 일은 느닷없이 다가오고, 바람처럼 떠난다.

당신이 내게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다시 당신의 목소리를 듣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던 어느 여름밤이었다. 당신은 황급한 목소리로 황당하고 당황스러운 일을 당했다고 했다. 말하자면, 멘붕.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당신. 그 목소리는 그런 상황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그렇게, 나도 멘붕. 그렇다고 그 멘붕에 또 다른 멘붕으로 대처할 순 없었다.

당신 목소리, 잊었다고 생각... 아니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었는데, 순간 떨리는 가슴이었다. 두근두근, 빠담빠담, 푸통푸통.

 

아, 맞아. 순간 알아챘다. 당신도 한때 내 가슴 안에 작은 방 하나를 세놓고 살았었던 게지.

점점 줄어든 방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갑자기 부풀어 올라서 내 심장을 자극했었다.

당신이 처한 멘붕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는 뚜렷했다.  

어느 순간, 당신이 처한 멘붕 상황에 감정이입을 하고 공감하고야 만다.

아, 그랬지. 한때 당신은 내가 품고 싶은 세계의 모든 것이었으니까.

당신 이외의 세계는 없었고, 더 있다손 내겐 필요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그 상황은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당신도 크게 기대를 하고 전화를 한 것은 아니었던 듯싶다. 그저 그 상황에 공감해줄 누군가가 필요했었던 것 같았다.

 

당신이 처한 멘붕에 그다지 도움을 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당신의 멘붕 상황을 들어주는 것밖에 할 수 없어서 미안했다.

그래도, 순간적으로 당신이 무척 보고 싶었다. 잠깐이라도 다시 보고 싶었다.

당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저 멀리 커피 산지에서 함께 만난 별과 함께 쏟아지던 당신이었다.


당신이 내게서 멀어지던 순간.

순전히 나의 오만이지만, 나만큼 당신을 사랑해주고 아껴줄 사람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럼에도 날 선택하지 않은, 당신의 선택은 늘 옳다는 것. 나는 그렇게 당신을 떠나보냈었다.


당신이 멘붕에 빠졌다는 그 전화를 끊은 후에 나는 바랐다.   

부디, 당신 아프지 않길. 당신이 좋아하는 커피와 오래도록 함께 하길.

곧 새로 여는 당신의 커피하우스가 멘붕 액땜을 통해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길.


잊었다는 말은 쉬이 쓸 것이 아니었다.

전화 한 통화로 여전히 당신을 걱정하던 나를 발견했었으니까. 그러니까, 덕분에 나도 멘붕.

 

그렇게 전화가 끝나고,

여름밤 바람이 훅 불어왔다. 어머니는 이 계절의 밤에 부는 시원한 바람을 좋아하신다.

나도 그날만큼은 이 바람의 냄새를 맡았다. 시원했다. 풀벌레 노랫소리가 섞인 바람.

그렇게 바람결에 다시 날아간 당신 목소리. 안녕. 다시 전화가 올 일은 없기에 진짜 안녕.


다시 한번, 바람에 당신을 향한 내 바람을 담았다.

부디 아파도 싸워 이기려 하지 말고 다독거리며 공존하길.

그래서 당신의 生이 그날 밤 우리가 함께 본 별처럼 반짝거리길.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스틸컷

실토하건대,

그때 당신을 만나서, 커피를 선택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그렇게 그 시절, 당신을 좋아하고 사랑했었나 보다.

당신 덕분에 행복했었다. 그때만큼은, 정말로.

당신의 커피가 먹고 싶어 졌다. 그러진 못하겠지만.

그 커피는 그렇게 풀 수 없는 숙제로 남았다.


당시는 MB시절이었다.

어이없는 댓글 공작이 만연하고 강을 죽이면서 살리기라고 우겨대는 등 멘붕(MB)이 일상에 깊이 들어와 있던 시절이었다. 거의 모든 것이 멘붕 멘붕 멘붕.


커피가 없었다면 나는 멘붕의 시절을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


혹시 당신은 알아?

커피는 때론 모든 것을 견디게 한다.

사랑도, 미움도, 멘붕도, 나에겐 그랬다.


늦었지만,

커피와 함께 사랑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웠다,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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