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9시의커피] '붉은 로자'를 마시며 떠올린 어떤 혁명
붉은 로자도 사라졌네
그녀의 몸이 쉬는 곳마저 알 수 없으니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유를 말했고
그 때문에 부유한 사람들이 그녀를 처형했다네
_ 베르톨트 브레히트
붉은 로자.
혁명의 독수리.(by 레닌)
혁명의 살아 있는 불꽃.(by 클라라 체트킨)
마르크스 이후 최고의 두뇌(지성).(by. 프란츠 메링)
뭔가 터질 것 같은 이 레떼르는 오롯이 로자 룩셈부르크를 향한 것이었다.
순정한 혁명주의자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급진적이었으며, 극좌였으며, 타협이라는 것을 모르는 불굴의 혁명가만이 입을 수 있는 패션이었다.
열다섯. 사회주의 운동에 뛰어든 로자는,
마흔일곱. 독일 사회민주당 우파 집권세력에 의해 살해됐다. 1919년이었다. 1월 15일. 99년 전이었다. 한때의 동지가 집권을 했으나, 로자는 소외됐고, 그를 눈엣가시로 여긴 집권세력은 군인을 보내 개머리판으로 혁명을 내리쳤다. 그리고 강으로 내동댕이쳤다.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사회주의 혁명에 바쳤던 붉은 혁명이 처참하게 으스러졌다. 혁명의 비극적 최후.
브레히트의 읊조림이 처연하게 슬픈 이유다.
심장을 찌른다. 지금도 그것은 여전히 유효하니까.
오늘 내린 커피는 붉었다. 피보다 붉디붉은 커피. 흡혈했다. 꿀렁.
로자의 것이었다. 리스트레또를 뽑았다. 순정한 혁명주의자를 떠올린다면 그랬다.
커피 향과 맛을 좌우하는 주요한 성분 중심으로 뽑는 리스트레또.
잡맛을 가능한 제거한 순정한 에스프레소의 엑기스, 리스트레또.
더구나 파격적인 섹스신으로 시대를 간파한 영화 <감각의 제국>의 오시마 나기사 감독. 그 과격한 혁명 분자의 기일마저 맞물리니, 리스트레또가 미친 듯이 넘실댄다.
이 리스트레또 명칭은 '붉은 로자'였다.
아는 사람만 아는 혁명 주간의 커피. 로자를 향한 애도와 애무의 커피.
20세기 초, 1917년 러시아 (10월)혁명이 전 세계를 물들이고 있었지만,
유럽 좌파 진영에서도 그는 소수자였다. 그럼에도 그는 소수의 전위였다. 러시아 혁명 후 정권을 잡은 한때의 동료 레닌과 볼셰비키를 격렬히 비판했다.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이자 국제사회주의 운동 세력 내에서 레닌과 맞먹는 위상을 가졌던 그였다. 그는 레닌과 트로츠키가 내적 절망과 모순을 극복하고 혁명에 성공한 것을 높이 평가했지만, 인민의 자발성과 창발성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10월 혁명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스파르타쿠스 단'을 조직해 1919년 1월 봉기를 일으켰지만, 그것은 무위로 돌아갔다. 그리고 뒤따른 것은 죽음.
로자는 따지고 보면 근본주의자에 가까웠다. 한치의 수정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강철.
협동조합에 대해서도 그랬다. 로자는 협동조합을 수정주의(개량주의)로 간주했다.
"협동조합에게서 무슨 사회성을 발견할 수 있지? 결국 그것들은 개인주의적인 것뿐이야. 결국 개인주의 기업으로 퇴행할 거야."
그는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과 협동조합과 관련한 뜨거운 논쟁을 펼쳤다. 베른슈타인도 지지 않고 맞섰다. "생산자협동조합은 판매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소비자협동조합의 구매를 위해 생산한다고!"
로자는 콧방귀를 뀌면서 여전히 자신의 견해를 굽히지 않았다. "그렇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세상을 봐. 거대한 제조 산업이 성장하고 있고, 그것이 협동조합으로 가능할까?"
베른슈타인도 당연히 믿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산업자본은 노동조합이 통제하고, 상업자본은 소비자협동조합이 통제할 수 있다고 믿어."
100여 년 전, 둘은 그렇게 협동조합을 놓고 치고받았다.
당시 급격한 산업화와 시장화는 협동조합을 위시한 사회적경제를 쪼그라들게 만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복지국가의 도래도 협동조합 위축에 한몫했다. 국가가 협동조합을 대신했으니까. 로자의 말마따나, 개인주의 기업이 득세했다. 물론 협동조합에 대한 로자의 말이 전적으로 맞아떨어진 것은 아니나, 그에게 협동조합은 (사회주의) 혁명의 장애물이었으리라.
로자가 지금 한국의 협동조합을 보면 어떻게 말을 할까. 붉은 피를 마시면서 그것이 살짝 궁금했다.
"진정한 사회주의 혁명은 노동자 계급의 자발성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어"라고 주장한 로자는, 노동자의 이니셔티브를 절대적으로 신뢰한 반면 노동 관료에 대해서는 혐오감을 드러냈다. 그것이 레닌과 갈라선 결정적 지점이었다. '노동자 계급의 자발성'에 대한 신념의 차이!
그것이 1870년 동갑내기 혁명가 레닌과 로자를 갈랐다. 레닌은 노동 관료화를 혁명 이후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봤다. 노동자의 자발성은 개뿔. 로자는 그런 면에서도 급진적이었고, 극좌라는 표현도 맞을 것이다. 그는 무엇보다 타협을 모르는 불굴의 혁명가였다.
로자에게 조국은 프롤레타리아였다.
러시아 국적을 지닌 폴란드인으로 태어나 폴란드, 독일, 러시아의 혁명 운동에 가담했지만, 그가 바란 것은 노동의 자발성을 간직한 혁명,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사회였다. 로자의 신념과 이상은 그에 기반했다. 이상주의자라는 타이틀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러했기에 실패도 그녀에겐 자극에 지나지 않았다.
이 순정한 혁명주의자는 그래서 죽기 얼마 전, 이런 말을 남겼다. 그것이 혁명가의 자기 마취 일지는 몰라도.
"혁명이 가진 특수한 생명 법칙이 있다면 그것은 거듭되는 패배를 통해서만이 최후의 승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해석하자면, 패배는 혁명의 '스펙'이다. 생뚱맞은 말을 하자면, 스펙은 취업을 위한 것이 아니라 혁명을 위한 것이다. 스펙을 그만큼 쌓아야, 승리도, 혁명도 가능하다는 이야기.
그러나 제대로 된 혁명 없는 나라의 시민으로 산다는 것은 뭔가 비어 있음을 끊임없이 자각해야 하는 운명을 선사한다. 개나 소나 나불거려서 너덜너덜 해지고 오염된 '혁명'이라는 단어.
줄곧 세계는 실패하고 있다. 혁명 역시 마찬가지다. '모욕당하는 사람들'은 점차 늘고 있다. 진짜 혁명이 가뭇없이 사라진 시대. "진짜가 나타났다"라고 뻐꾸기를 날릴 재간도 없다. 그럼에도 로자에 의하면, 패배는 혁명의 '스펙'이다. 스펙을 그만큼 쌓아야, 승리도, 혁명도 가능하다는 법칙. 실은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를 무엇. 불가능하니까, 혁명이지.
그러니까, <밤9시의커피>가 품은 허영은 리스트레또로 고스란히 드러난다. 로자가 커피를 좋아했는지 아닌지 알지 못한다. 다만 그를 생각해 오늘의 커피를 뽑는다면, 리스트레또밖에 없다.
다만 실토하자면,
내가 로자를 떠올리며 뽑는 리스트레또는 순정한 혁명주의자 때문만이 아니다.
'붉은 로자'는 혁명에 가린 그의 사랑도 담았다.
레오 요기헤스와 아주 특별했던 그 관계.
어쩌면 순정한 사랑주의자로서 로자를 담고, 그 로자를 닮은 '붉은 로자'.
노동자 계급의 적에겐 가차 없이 맹렬하던 로자도 사랑 앞에서는 달랐다. 그걸 모순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으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그것도 로자다. 로자에게도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았다.
레오에게 쓴 연애편지가 혁명의 문필과 다른 것은 당연하다. 강철이 아닌 사랑의 화신이기도 했던 로자를 떠올린다면 역시 리스트레또.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었던 로자는 레오에게 결혼도 하고 아이를 갖고 싶다고 '단란한 가정'을 애원했지만, 레오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5년, 로자의 사랑은 (그 사이, 다른 사람과 위장 결혼도 했었지만) 레오에게 향했다.
그리고 그는,
절친한 동료이자, 사회주의 여성운동가이며 1911년 국제 여성의 날을 조직했던 클라라 체트킨의 아들 콘스탄틴과 연애했다. 어쭙잖은 도덕의 잣대를 들이대지 마라. 로자의 사랑 역시 붉디붉었으리라.
'붉은 로자'라는 리스트레또에는 그래서 이런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남에게 말할 수 없는 아주 특별했던 관계에 대하여'.
리스트레또 한 잔은 나를 괜스런 멜랑꼴리로 몰아넣는다.
더욱 또렷해진 혁명의 좌절이 밤하늘에 총총 박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 또한 달빛으로 은은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차가운 혁명가에게 박힌 뜨거운 사랑.
그러나 나는 그것을 모순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사랑이나 혁명이나 통하고야 마는 구석이 있다. 둘은 감각처럼 조우한다.
그래, 혁명은 밤에 일어나는 게 맞는 것 같다. 이성으로만 혁명은 불가능하다. 낮은 혁명의 기운을 꺾이게 한다. 그래, 밤이 혁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