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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nathan Feel Jan 06. 2019

고양이에게도 호텔(방)을!

[I'm in New York] ⑧ 도로시 파커와 최영미 시인

1년 전, 뉴욕에 두 번째 발을 디뎠다.
5년 여동안 나를 쏟아부었던 회사를 그만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뉴욕을 만끽하겠다고 떠난 길이었다. 그전부터 뉴욕 타령을 했었다. 한 번 짧게 내디딘 뉴욕에 혹했기 때문도  있지만 그래야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직접 만든 회사에, 대표까지 한 사람이 그만둬고 그래도 되느냐고, 지금까지 이룬 것이 아깝지 않으냐고, 나이도 적지 않은데 괜찮겠느냐고 묻곤 했지만, 내 대답은 한결같았다. "Why Not?" 그게 뭐라고. 회사가 뭐라고. 일이 뭐라고. 관계가 뭐라고.
모든 사회적 관계, 의무에 스위치를 끄고(물론 한시적이었지만) 두서없이 맥락 없이 허허실실 뉴욕으로 향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그게 당시 내 마음이었다. 다시 나는 한국에 돌아와 그 후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뉴욕에 가서는 내 멋대로 뉴욕을 '(마음의) 고향'으로 삼았다. 비록 몸이 태어난 곳은 선택할 수 없었지만 마음이 태어난 곳을 고향으로 삼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 나는 뉴욕을 고향으로 못 박았다.
나는 여전히, 뉴욕을 그리고 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에 젖어있다.  


궁금했어요. 도로시 파커. 
최영미 시인 덕분에 그(의 흔적)를 찾아 다녔습니다. 마침 나는 뉴욕에 있으니까요. 알곤퀸(Algonquin) 호텔은 타임즈스퀘어에서 멀지 않았어요. 큰 규모의 호텔은 아니었고요. 그 앞에 가서 11층을 올려다봤습니다. 도로시 파커 스위트 룸은 1106호였으니까요. 언젠가 기회를 만들어서 저 방에 묵어봐야겠다, 고 생각했습니다. 블랙리스트에 오르겠지? 혼자 생각하곤 피식 웃었습니다. 좌파였던 도로시는 매카시즘이 창궐하던 시절, '할리우드 블랙리스트' 멤버였거든요. 전 세계 지성들의 이목이 집중됐던 스페인 내전 당시 공화정을 지지하는 기사를 쓰고 나치즘 저항운동에 참여한 공산주의자였고요.

알곤퀸 호텔


도로시 파커 덕분에 꼬리를 물고 알게 됐던 '알곤퀸 라운드 테이블(Algonquin Round Table)'. 알곤퀸 호텔 홈페이지(http://www.algonquinhotel.com)에 들어가니 이에 대한 소개도 있습니다. 클릭하자마자 처음 뜨는 인물이 도로시네요. ART 창립 멤버이기도 하고, 그만큼 영향력이 컸다는 방증일 겁니다. ART를 상상해 봤어요. 호텔 원탁 테이블에 앉아 함께 식사하면서 문학, 예술, 시사, 사회 등을 논하고, 물론 시시껄렁한 일상도 함께였을 테고, 정치인이나 문인 등의 뒷담화도 하하호호. 그들이 둘러앉았던 원탁은 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겠죠. 이 원탁에서 오간 얘기들이 구르고 굴러서 잡지<뉴요커>를 잉태했고, 책, 영화, 칼럼 등으로 포장을 바꿔 세상에 나왔다죠.


존 F.케네디는 어린 날, 알곤퀸 라운드 테이블 멤버가 되고 싶었다고 합니다. 유명해지기 전부터 <뉴요커>를 탐독했던 애독자 무라카미 하루키는 1994년 뉴요커 단골 필진으로 초대됐고요. 선망하는 다른 작가들과 함께 한 블루바에서 열린 알곤퀸 칵테일 모임은 하루키에게 벅찬 경험이었는지 이를 글로 쓰기도 했었죠.


이왕 나선 김에 도로시가 말년을 보냈다는 볼니(Volney) 호텔도 찾았습니다.  
1967년(그러고 보니 68혁명을 만나지 못했는데, 살아있었으면 뭐든 했을 텐데) 죽기 전까지 도로시가 15년을 살았던 곳입니다. 1920년대 지어진 이곳은 지금은 호텔이 아니었어요. The Volney. 레지던스. 협동조합 주택(co-op)으로 변신했어요. 알곤퀸 호텔과 달리 도로시를 보여주는 표식은 없는 것 같아요. 1985년, 호텔에서 지금 모습으로 바뀌었어요. 부동산 사이트는 이상적인 세컨하우스라고 소개하고 있네요.

The Volney

도로시는, 
소외 계층을 대변한 작가였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에게 재산을 넘긴다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글쓰는 여자의 공간: 여성 작가 35인, 그녀들을 글쓰기로 몰아붙인 창작의 무대들>에는 그에 대한 이런 일화도 전해집니다.


"당신이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돈과 애인 때문에요."


그는 글쓰기를 증오했다고 합니다.(싫은 정도를 넘어 증오까지?^^;) 고통스러울 만큼 치열하게 번민하면서 글을 써서 그러했다고 하네요. 글쓰기를 증오했지만 써야했던 도로시에게 필요한 것은 글쓰는 공간이었을 겁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다른 이유를 들어)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호텔방은 도로시에게 (글을 쓰기 위한) 자기만의 방이었어요. 최영미 시인이 일으킨 도발(?)은 한국 사회에 새로운 의제를 던져줬습니다. 이 사회가 그것을 소화할 수 있느냐, 아니냐는 지켜봐야겠지만요. 최영미 시인은 인터뷰 등을 이유로 2009년과 2014년에 만난 적이 있어요.(http://ch.yes24.com/Article/View/14849) 최 시인은 그때도 살고 있던 춘천 아파트 대출금을 빨리 갚아야 한다고 말했었습니다. 그 앞에서 대놓고 표정을 짓진 못했지만 놀랐습니다. 최 시인 정도의 유명한 시인이자 에술가가 집값 때문에 그렇게 고민하다니. 


딴건 몰라도 나라에서 인민에게 집은 무조건 다 제공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호텔을 제공해주면 더 좋겠지만요. 그정도는 돼야 나라다운 나라, 국가다운 국가가 될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전 인민에게 살 집을 주는 것이 중요한 사회 의제로 꽃 피는 날, 그날이 오면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지 않겠어요? 

알곤퀸 호텔 노동묘 마틸다

고양이를 좋아하고 키우는 사람은, 
알곤퀸 호텔에 가볼 만 하겠어요. 호텔 프론트 노동자 아니 노동묘로 고양이가 있습니다. 1930년부터 가져온 전통으로 지금은 7년 동안 프런트 직원(호텔리어)으로 노동하고 있는 마틸다가 있다고 하네요.(후계자는 수컷으로 햄릿이 교육을 받고 있다죠!) 암컷은 마틸다, 수컷은 햄릿이라는 이름을 물려받아 프런트 직원으로 일하며, 캣 패션쇼도 열리는 곳이 알곤퀸 호텔입니다. 


그렇다면 고양이에게도 호텔을 줘야죠. 
나라다운 나라는, 아무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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