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in New York] ⑦ 뉴욕 카페를 순례하며 건진 인생 공부
1년 전, 뉴욕에 두 번째 발을 디뎠다.
5년 여동안 나를 쏟아부었던 회사를 그만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뉴욕을 만끽하겠다고 떠난 길이었다. 그전부터 뉴욕 타령을 했었다. 한 번 짧게 내디딘 뉴욕에 혹했기 때문도 있지만 그래야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직접 만든 회사에, 대표까지 한 사람이 그만둬고 그래도 되느냐고, 지금까지 이룬 것이 아깝지 않으냐고, 나이도 적지 않은데 괜찮겠느냐고 묻곤 했지만, 내 대답은 한결같았다. "Why Not?" 그게 뭐라고. 회사가 뭐라고. 일이 뭐라고. 관계가 뭐라고.
모든 사회적 관계, 의무에 스위치를 끄고(물론 한시적이었지만) 두서없이 맥락 없이 허허실실 뉴욕으로 향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그게 당시 내 마음이었다. 다시 나는 한국에 돌아와 그 후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뉴욕에 가서는 내 멋대로 뉴욕을 '(마음의) 고향'으로 삼았다. 비록 몸이 태어난 곳은 선택할 수 없었지만 마음이 태어난 곳을 고향으로 삼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 나는 뉴욕을 고향으로 못 박았다.
나는 여전히, 뉴욕을 그리고 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에 젖어있다.
"평생 지워지지 않는 감정들도 있나 봐요. 이게 좋은 걸까요, 나쁜 걸까요?"
제가 좋아하는 영화 <카페 소사이어티>에서,
바비(제시 아이젠버그)는 "꿈은 꿈일 뿐"이라며 서로 안 보는 게 좋겠다고 말한 보니(크리스틴 스튜어트)에게 앞서와 같이 말해요. 바비가 보니에게 답을 듣고자 하는 건 아니죠. 그리고 그 감정, 영화가 끝날 때까지 두 사람을 지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어요. 회한? 미련? 글쎄요, 한 단어로 그 정서를 규정하긴 힘들지만, 엔딩 신에서 각자 다른 곳에서 새해를 맞이한 두 사람의 아련한 응시가 그 정서를 스멀스멀 전달합니다. 암, 우리 모두에겐 저런 감정들이 있어, 라며 가슴 아련했던 마지막 여운이 기억나네요.
2016년 가을께였죠.
아주 거칠게 말하면 ''뉴욕 남자'와 '할리우드 여자'의 연애와 그 후일담'인 이 영화를 봤었어요. 우디 앨런의 변함없는 뉴욕 사랑이 깃든 영화, 좋았습니다. 사실 이 영화를 보곤 '뉴욕병'이 도졌어요. 뉴욕 타령을 한 것도 이 영화를 본 이후였죠.
대공황 시기인 1930년대의 뉴욕.
고급 사교 클럽에 출입하는 상류층을 뜻하는 '카페 소사이어티'는 영향을 받지 않나 봅니다. 시끌벅적, 휘황찬란. 20세기 전부터 1차대전 직전까지 제국주의 융성기를 누린 유럽의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절)를 이어받은 듯, 카페 소사이어티는 사회 전반 분위기와 별개처럼 북적이네요. 마치 IMF 무렵, 한국 상류층이 타격은커녕 외려 돈을 긁어모아 흥청거렸던 것처럼요.
아이러니하지만,
1930년대는 맨해튼의 아름다운 스카이라인이 본격 만들어진 시기이기도 하죠. 제각각 개성과 위용을 뽐내는 고층 건물들이 경쟁하듯 맨해튼을 채워나간 시절이니,
스크린을 통해 재현된 당시 뉴욕 풍경이 저를 매혹시킨 건 이유가 있는 셈이죠.
아마도 우디 감독의 애틋한 뉴욕 애정이 과대 투사되지 않았을까 싶긴 하지만요. 센트럴파크를 누비다가 만난 보우브릿지. 와우, 야트막한 탄성이 흘러나왔어요. 이곳은 다시 뉴욕에서 만난 바비와 보니가 이야기를 나누던 곳이었거든요. 1862년 만들어진 주철 다리인 보우브릿지. 연못과 마천루가 앙상블을 이루고 두 사람이 이야기를 조곤조곤 나누는 풍경이 뭉게뭉게. 보우브릿지는 이들뿐 아니라 얼마나 많은 연인과 사람들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요.
우디 앨런은 영화를 통해서도 공공연하게
'I love New York'을 발설하는 것, 당신도 알죠? 그의 흑백영화 <Manhattan>(1979)에서 주인공(아이삭)을 맡은 우디는 메리(다이안 키튼)와 데이트를 하면서 이런 대사를 건네죠.
"누가 뭐래도 여긴 정말 대단한 도시예요. 쓰러질 지경이에요."
58th street 동쪽 강변의 작은 공원 벤치에서 퀸스보로 브릿지를 보면서 말이죠. 제가 그곳을 찾은 날은 비가 오고 있었는데, 비와 어우러진 풍경도 볼 만 했어요. <카페 소사이어티> ost로 삽입된 재즈 'Manhattan'이 흘러나왔으면 딱 어울릴 법한 그런 풍경이었습니다.
<카페 소사이어티>와는 상관없지만,
뉴욕 곳곳에 터를 잡은 카페는 뉴욕 배경 영화에 빠지지 않는 존재죠.
제가 오래 전 문래예술창작촌에서 인디커피하우스 '골목길 다락방(골다방)'을 하고 있을 때, 그 카페를 권칠인 감독의 <참을 수 없는.> 촬영지로 제공했던 기억도 나네요. 카페가 주인공 김흥수 집으로 꾸며졌었는데, 한수연과 베드신 장면을 찍을 때 배우가 민감할 수 있으니 잠시 나가달라고 해서 스태프와 함께 옥상에 올라가 노가리 풀면서 담배 뻑뻑 피우던 기억이.ㅋ(당시 촬영 장면이 잘 나온 스틸컷은 없네요. 김흥수 얼굴만 나오는 스틸컷만.ㅠ)
맨해튼에 자리한 유명 카페 'Cafe Lalo'는 돌고 돌아 찾아갔어요.
<유브 갓 메일>에서 케슬린 켈리(맥 라이언)과 죠 폭스(톰 행크스)가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1988년 태어난 카페. 두 인물 모두 뉴욕 거리와 정취를 사랑하는 뉴요커라는 설정이기에 이곳을 찾아올 이유가 충분하죠. 두 인물이 다른 규모와 성격의 책방을 운영하는 캐릭터이기에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죠.
이 Cafe Lalo에서 치즈 케이크를 2개나 쓱싹 해치웠다죠. 정말 느끼함의 극치를 느끼면서 맛있게 먹었어요. 이 영화를 연출한 노라 애프런 감독은 지난 2012년 세상을 떠났었는데, 떠난 뒤 그의 책 <철 들면 버려야 할 판타지에 대하여>를 읽었어요. 이 책에 보면 그가 '그리워할 목록'이 있는데, 목록 중에 '맨해튼으로 향하는 다리 건너기'가 있어요. 브루클린 브릿지를 건너 맨해튼으로 향하면서 죽은 노라 감독이 그리워하겠단 생각을 했었더랬죠.
브루클린에 있는 Toby's Estate도 빼먹을 수 없네요.
<인턴>에서 앤 헤서웨이와 로버트 드 니로가 만났던 커피하우스. 플랫화이트를 마셨는데, 천장에 가 있는 기분이랄까요. 제가 좋아하는 산뜻하고 밝은 산미가 화사하게 드러나더라고요. 쿨~ 바리스타도 간지 짱~
아쉬운 건,
<비긴 어게인>에 등장한 지탄 카페도 들렀었는데, 자리가 꽉 찰 정도로 사람이 너무 많아서 발걸음을 돌려야했어요.
그 언젠가 당신과 함께 뉴욕에 올 수 있다면,
당신과 함께 이 카페들을 찾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시 <카페 소사이어티>로 돌아갈게요. 극 중에 소크라테스가 했다는 말이 인용돼요. 진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음미하지 않은 인생은 살 가치가 없다(The unexamined life is not worth living)."
고개를 끄덕일 찰나,
바로 이어지는 대사는 이렇게 말하죠.
"그러나 음미해버린 인생은 딱히 매력이 없지(But the examined one, is no bargain)."
음미, 그렇다면 나는 뉴욕을 음미하고 있을까, 물었습니다.
그건 감각을 열어야 가능한 것이고, 결국 음미는 '능력'의 문제라는 생각에 미쳤어요. 쉬이 음미하는 것이 아니라, 음미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 결국 그것은 '공부'와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뉴욕에서 읽고 있는 엄기호 선생님의 <공부 공부>가 단초를 제공해줬어요.
공부할 수 있는, 지루함을 견디는 '몸'을 만드는 한편, 단발적이고 파편화된 '재미'가 아닌 자유와 창조, 향유의 '기쁨'을 목적으로 둔다면 생을 끊임없이 음미할 수 있겠구나. 음미하면서 또 지속적으로 음미할 수 있는 기쁨을 찾는 공부. 진짜 공부.
<카페 소사이어티>를 떠올리면,
박인환 시인의 <목마와 숙녀>에 있는 한 행만 바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인생은 외롭고(詩는 원래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내가 어디에 있든,
나를 돌보는 공부를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나는 지속적으로 음미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내가 성취하고 성과를 낼 거라고 기대하는 대로 살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기대하는 대로 살 의무도 전혀 없고요. 내가 그들이 기대하는 대로 살지 않았다손 그건 내 잘못이 아닌 그들의 잘못이니까요. 다른 사람은 나를 오해할 권리가 있고, 나는 그것을 해명하지 않을 권리가 있지요. 나는 그렇게 나를 배려하고 돌보는 공부에 조금씩 집중해볼까 해요. 통속하지만,
너무 잘하려고 안간힘 쓰지 않아도 괜찮고, (별일 일어나지도 않아요)
공기처럼 가볍고 존재감 없어도 사회에 건강하게 스며들면서,
햇살처럼 맑고 빛나게(흐린 날의 햇살이면 또 어떤가요)
작은 기쁨을 잉태하는 오늘을 산다면,
그 또한 좋지 아니한가요.
그렇게 나는,
뉴욕이라는 좋은 사가독서를 하고 있어요.
평생 지워지지 않는 감정들을 품고 갑니다.
당신이라는 영화가 참 보고 싶은 뉴욕의 가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