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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nathan Feel Jan 03. 2019

'모던 싱글 걸', 새 시대를 열어젖히다!

[I'm in New York] ⑥ 맨해튼 5번가, <티파니에서 아침을>

1년 전, 뉴욕에 두 번째 발을 디뎠다.
5년 여동안 나를 쏟아부었던 회사를 그만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뉴욕을 만끽하겠다고 떠난 길이었다. 그전부터 뉴욕 타령을 했었다. 한 번 짧게 내디딘 뉴욕에 혹했기 때문도  있지만 그래야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직접 만든 회사에, 대표까지 한 사람이 그만둬고 그래도 되느냐고, 지금까지 이룬 것이 아깝지 않으냐고, 나이도 적지 않은데 괜찮겠느냐고 묻곤 했지만, 내 대답은 한결같았다. "Why Not?" 그게 뭐라고. 회사가 뭐라고. 일이 뭐라고. 관계가 뭐라고.
모든 사회적 관계, 의무에 스위치를 끄고(물론 한시적이었지만) 두서없이 맥락 없이 허허실실 뉴욕으로 향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그게 당시 내 마음이었다. 다시 나는 한국에 돌아와 그 후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뉴욕에 가서는 내 멋대로 뉴욕을 '(마음의) 고향'으로 삼았다. 비록 몸이 태어난 곳은 선택할 수 없었지만 마음이 태어난 곳을 고향으로 삼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 나는 뉴욕을 고향으로 못 박았다.
나는 여전히, 뉴욕을 그리고 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에 젖어있다.  


맨해튼 5 Ave를 걷다가 반가운 이름을 만났어요.
티파니(Tiffany & Co). 딱 그 자리에 멈춰섰어요. 팔자에도 없이 값비싼 주얼리 브랜드를 좋아하는 건 아니고요. 제겐 티파니, 하면 떠오르는 장면과 이름 때문이죠.(소녀시대 티파니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고요.ㅋ)


새벽 5시45분 맨해튼, 
티파니, 커피, 데니쉬 페스트리, 문 리버(Moon River), 그리고 오드리 헵번. 

맞아요, <티파니에서 아침을>. 티파니 플래그십 스토어가 딱 눈에 들어오자(이 플래그십 스토어는 전 세계 티파니 매출의 10%를 차지할 정도라죠! 우와~), 영화 속 한 장면이 펼쳐졌어요. (당연하게도) 매장에 들어갈 생각은 않고 한동안 매장 앞 거리에 멈춰 있었답니다. 물론 커피 한잔 들고서요. 홀리 골라이틀리(오드리가 연기했던 주인공)를 떠올리면서.


오드리의 대표작을 꼽으라면, 
나는 <로마의 휴일>보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입니다. 원작자인 트루먼 카포티는 오드리보다 마릴린(먼로)을 원했다지만, 오드리가 아닌 사람은 상상이 안돼요. 싫어요.~ 홀리는 오롯이 오드리만을 위한 역이었거든요. 아마 마릴린이 홀리 역할을 했다면 전혀 다른 영화가 됐겠죠.(물론 읽어보지 않은 소설 원작에는 영화와 다른 캐릭터의 홀리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영화를 보면서 홀리에게, 
더 정확하게 오드리의 홀리에게 매혹됐던 건, 몽상가적인 자유분방함 때문이었어요. 말하자면 당시 홀리는 '신여성' '신인류'였죠. 보수성으로 똘똘 뭉쳐있던 1950년대 미국. 여성, 특히 아내는 남편 부속물이었어요. 결혼한 여자는 남편이라는 감옥에 갇힌 몹쓸 시대. 홀리는 그에 저항한 캐릭터였어요. '첫 번째 싱글 걸'의 탄생! 

브라바~(알다시피 브라보는 찬사 대상이 남성일 경우에 쓰이며, 브라바는 여성일 때 쓰니까!)


오드리의 홀리는 같은 말의 다른 판본으로,
'모던 싱글 걸'이었어요. 개인임을 자각하고 여성에게 '독립'을 선사한, 사랑에 목숨 걸지도 않고, 남편 등 뒤에 안주하는 삶도 거부하는, 당시 말로는 '배드 걸'이었죠. 당시 혼자 사는 여자는 그렇게 인식됐었거든요. 홀리는 색안경의 대명사였던 싱글 걸(에 대한 인식)을 단숨에 전복시킵니다. 


이런 말이 있어요. "<티파니에서 아침을> 이전에는 나쁜 여자들만 섹스를 즐길 수 있었다." 

여성에게 자기결정권이 없었던 시대, 오드리의 홀리는 배드 걸을 굿 걸로, 더 나아가 '워너비'로 만드는 마법(!)을 부렸어요. 시쳇말로 '갓홀리'죠. 영화를 연출한 감독 빌리 와일더는 "혼자 힘으로 풍만과 육감의 시대를 바꿨다"고 표현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런 시대를 홀라당 바꾼 홀리가 머문 티파니 매장 앞에 서니,
감격스러운 거 있죠? 뿌듯하기까지 하더라니까요. 웃기죠? 티파니 주얼리를 산 것도 아니요, 홀리를 만난 것도 아닌데 매장 앞에서 혼자 히죽대는 꼴이라니. '문 리버' 콧노래까지 부르면서 말이죠. 그리고 홀리가 걸었던 맨해튼을 나도 따라 걸었습니다.


"어떤 여성들은 등장만으로 새 시대를 열어젖힌다."
백은하 기자는 오드리의 홀리를 그렇게 묘사했습니다. 빙고!! 그야말로 혁신가죠. 대개는 시대가 여성상을 만들지만, 아주 드물게 당대의 공기를 바꾸는 여성도 있는 법이죠. 한 마디로 홀리는 당대의 아이콘이 됐어요. 의도하진 않았지만 자유와 반권위가 시대정신으로 떠오른 60년대를 열어 젖힌 아이콘. 이전에는 없던, 아니 있었으나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한 채 억압 당했던 여성(상)을 봉인에서 푼 선구자.


어쩌면, 아니 분명히, 
오드리가 홀리를 맡았기에 이런 전복도 가능했던 것은 아닐까요.
홀리는 그저 문학 작품에나 나오는 인물로 여겨질 법 했건만 오드리라는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의 배우가 배역을 맡음으로써 임팩트가 어마무시하게 커진 거죠. 오드리였기에 홀리라는 배드 싱글 걸에 대한 저항을 줄이고 현실에서도 가능하다는 인식을 심어준 것일지도 몰라요.

나는 그런 여성을 늘 좋아했던 것 같아요. 독립적이고 스스로 챙길 줄 아는, 그리하여 자기결정권을 지닌. 상관 없는 여담인 데, 여기 있으면서 소식을 들었던, 호텔 홍보와 호텔 방 딜을 제안한 최영미 시인, 아주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이러쿵저러쿵 말 많아도, 옹호와 비난의 아무말대잔치 따위는 제쳐두고, 그것이 어쩌면 새로운 문화를 낳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감을 슬쩍 가졌어요. 물론 유명 시인임에도 생활고에 시달리는, '한국에서 예술가로 산다는 것'의 슬픔을 알려주기도 했지만요.


아울러 개인 친분은 없어도, 
말과 글, 활동 등을 통해 당대에 저항하는 '신여성'들을 주목하고 있어요. 그 '배드 걸스'가 어쩌면 하늘을 뒤덮은 먹구름처럼 한국을 휘감은 여성 혐오의 시대를 전복할 수 있지 않을까, 응원하고 있어요.


홀리는 뉴욕에 매우 어울리는 캐릭터 같아요.
비록 이방인이어서 조심스럽긴 하나, 뉴욕을 걸어보니 그래요. 홀리는 뉴욕이 아니면 소화할 수 없는, 뉴욕이기에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뉴욕에 있는 홀리였기에 '첫 번째 싱글 걸'의 파급력을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은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었어요.


참, 홀리가 있었던 뉴욕 공립 도서관도 빠뜨릴 수가 없네요. 
폴이 다른 남자와 브라질로 가려는 홀리에게 사랑한다고 고백을 하는 장소가 이 도서관이에요. 제가 뉴욕에서 가장 사랑하는 공원인 브라이언트파크와 붙어 있어요. 뉴욕 공립 도서관은 제가 좋아하는 책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자크 보세 지음)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렸어요. 이렇게 아름다운 도서관이라면 책이 그냥 쏙쏙 스며들어요. 저는 뉴욕 공립 도서관을 참 좋아합니다.


언젠가 당신과 함께 하는 이런 뉴욕 풍경도 상상했어요.
Faema E61(<티파니에서 아침을>이 나온 1961년, 에스프레소 머신의 개념을 바꾼 에스프레소머신 모델명)에서 뽑아낸 커피와 데니쉬 페스트리를 먹으면서 뉴욕 공립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풍경. 그리고 당신에게 건넬 티파니도 함께(으응? 정말??). <티파니에서 아침을>과 같이 로맨틱, 성공적?

아참, <티파니에서 아침을> 마지막 장면 '키스 신'도 지울 수가 없네요.
영화를 보면서 나도 장대비 오는 날, 그렇게 비를 맞으며 키스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더랬죠. 물론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첫 번째 싱글 걸' 따위 생각하지 않고 봐도 좋아요. 반짝반짝 빛나는 오드리 헵번. 문 리버의 달콤한 선율.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영화니까요. (문 리버 https://youtu.be/uirBWk-qd9A)


그런데 말입니다. 
지금 우리는 아직 1950년대 미국과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아요. 남성이 여성을 대하는 인식이나 태도에 있어선 말이죠. 특히 남자들이 혐오를 내지르는 행태는 너무 저열하고 지질해요. 대중 매체를 통해 만나는 여성과 그 역할에 대한 묘사도 여전히 후지고요. 혐오를 부추기면서 이를 통해 먹고사는 미디어 수준도 한심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지 같아요.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홀리는 여전히 유효하고 필요합니다.
새 시대를 열어젖히는 홀리가 지금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배드 걸스가 마음껏 활보하는 세상을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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